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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Oct 14. 2020

책으로 현실 도피

언제 완독 하지?

'몸이 편하지 않다. 평소답지 않게 아랫배가 무겁게 신경 쓰인다. 늘 근육통이 자리하던 위쪽 등이 아니라 허리와 가까운 쪽 등이 아프다. 비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불편함인가 하고 만사를 제쳐두고 자리를 편다. 이럴 땐 쉬는 게 최고다.'


핫팩을 여기저기 옮겨가며 통증에 반응하면서 잠을 청했다. 기절하듯 잠에 들었지만 밤새 불편함에 뒤척였다. 이상하다. 날짜가 좀 남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여보야 혹시 운동을 바꿔서 근육통 위치가 바뀐 거 아니야?"

"!!!!!!!"


한동안 이어오던 운동에서 패턴을 살짝 바꿨다. 아랫배 근육 운동이 부족했던 것 같아 한 세트를 넣고, 무너진 플랭크 자세를 바로잡았다. 원 플러스 원처럼 새로운 통증이 찾아온 것이다.




Photo by Suad Kamardeen on Unsplash



벌써 다섯 번째 한 달이 끝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완독하지 못한 채 쌓여있는 책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번 기수에 저 책들 다 읽기는 글렀다. 현실 도피가 필요하다. 밀리의 서재를 뒤적인다. 새로운 책을 발굴하는 것으로 쌓인 책을 외면해본다. 발굴에 성공하면 완독할 책 목록이 늘어난다는 건 모른 척하겠다.


새로운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해법을 찾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내가 하지 못하면 남의 힘을 빌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책을 읽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 도피에 대한 그럴듯한 근거를 찾을 수 있길 바라며 뒤적이다 보물을 발견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64414008


밀리에서 오디오북으로 이 책을 소개한 김영하 작가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가 그 글을 쓰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전문 작가도 글을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말을 듣는데, 막 펼쳐 들기만 했을 뿐인 책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모도가 다 힘들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너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시기가 있다. 내게는 오늘이 그 시기인 가보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때로는 골치가 아프거나 지겨울 때도 있고,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날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날도 있다. 성공한 작가들은 결코 이토록 지겹고 절망스러운 시간들을 겪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환상이다. 그들 역시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그간의 노력은 헛되고 보잘것없게 느끼며, 깊은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글이 잘 풀리기 시작할 때 최고의 도취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들은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 소망하는 목표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가슴속 깊은 곳에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면, 당신의 글을 완성할 길은 반드시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수없이 많다. <쓰기의 감각> p.90


읽다가 잠시 책을 놓았다. 고작 단락 하나에 작가라는 이름이 주는 희로애락과 동기, 목표가 모두 들어있다. 복잡해 보이는 이야기를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작가에게 존경을 표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복잡한 심정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당연하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인물의 구체적인 그림을 마련하지 않았으니 제대로 그릴 수 없다. 그간의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라 준비가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끔은 글을 쓰는 사람이 내가 아닌 것 같을 때도 있다. '신들린 듯'이라는 표현이 딱 맞게 자판 위에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태어나기도 하고, 짐작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도 자연스럽다. 쾌감이 인다.


문창과에서의 기억을 꺼냈다. 그때도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작정 글을 쓰는 방법을 찾았다. 일단 써봤으면 좋았을까? 그럴 용기도 배짱도 없어 배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언젠가 나의 글을 완성할 길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작가의 단호한 확신에 더욱 기대고 싶어진다.


<쓰기의 감각>을 쓴 작가는 자신의 책으로 위대한 작가 반열에 들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지은 저서 중 최소한 내가 알만큼 유명한 책은 없었다.(내가 아는 책은 몇 권 안 되니 커트라인이 너무 높은가?) 그럼에도 작가 지망생이나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실력 있는 지도자로 통한다고 한다. 운동선수로는 빛을 못 봤지만 코치나 감독이 되어 재능을 드러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또 한 번 알게 된다. 


몸이 불편할 땐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빠르게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글을 쓰다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땐 잠시 쉬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눈을 돌려도 좋다. 책을 읽다 도피가 필요하면 다른 책으로 도망가도 된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하지만 연결되는 점이 있다. 다각도로 바라보고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한 곳에 고여있지 말고, 나에게 국한하지 말고 물 흐르듯 여러 삶과 환경을 경험해 보아야 한다. 새로운 근육통과 새롭게 만난 책으로 한 뼘쯤 넓어진 나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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