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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Oct 12. 2020

공개적으로 할 말 다하기

글쓰기의 이점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요즘 새로운 글쓰기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 주는 제시된 첫 문장을 가지고 무엇이든 써 보이는 기간이다. 장르는 소설, 시, 에세이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처음 주제를 마주했을 때에는 에세이를 쓸 것 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을 쓰고 있었다.


결혼 전,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부를 다닌 적이 있다. 졸업 여부를 궁금해하지 마시길. 소설가, 극작가, 방송 작가, 동화 작가 등 무엇인지는 몰라도 다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덜컥 등록부터 했다. 

소설을 쓰는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등장인물의 이야기 속에 나의 경험을 슬쩍 녹여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그렇게 과제를 제출하고는 생각했다. '실제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더욱 현실감이 있다고 하겠지? 너무 현실을 많이 반영했다고 하진 않을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돌아온 피드백은 '너무 현실성이 없는 에피소드가 들어가면서 몰입을 방해하네요. 조연의 이야기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조연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써보세요.'였다.


그랬다. 소설에 나올 법한 현실과 실제로 겪는 현실은 다른 것이다. 그때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건 딱 소설이네.' 싶은 스토리가 인정받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판에 박힌 듯, 어디선가 읽었을 법한 이야기를 각색해서 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소설, 영화, 드라마 작가의 길을 포기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할 거면 뭐하러 작가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표절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출처를 정확히 찾기가 어렵다는 것 정도랄까. 그렇게 소설도 드라마도 비슷한 이야기만 써내다가 끝나버린 만학도의 꿈이 있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표현의 기술> p.251



플롯도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쓰는 글이 오늘로 삼 일째다.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중이다. 어떻게 써도 상관없는 소설이 주는 묘한 희열이 있다. 


노력해도 눈에 띄게 발전하지 않는 글쓰기로 인해 느끼는 좌절감. 솔직하게 표현하면 질타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용기. 이런 감정들을 '이건 다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라는 말과 함께 표출할 수 있게 됐다. 

점수가 주어지지 않는 습작이 주는 위안이 있다. 누군가를 비꼬고 싶었던 마음을 인물에 투영하고, 부정하고 싶었던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해야 하는 말이라 어쩔 수 없다며 변명할 수 있다. 점점 이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Photo by Matthew LeJune on Unsplash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라며 일기를 권하기도 하고, 꿈 이야기 쓰기를 권하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쓰면서 감정을 토해내 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래 놓고 아이에게 일기 쓰기를 권했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꿈 이야기를 쓰면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보라고도 한다. 내 꿈은 주로 쫓기고 도망치는 꿈이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몇 달 동안 글을 썼지만 글 쓰기의 장점을 문장으로 읽기만 했다. 좋다니까 좋은 거겠지.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도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차이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이젠 글을 안 쓰면 꽤나 허전할 것 같기도 하다. 내일 또 글을 쓸 수 있다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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