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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Nov 08. 2020

죄책감은 반품하겠습니다.

택배 마음 편히 받고 싶어요.


나는 식재료만큼은 눈으로 보고 사자는 주의다. 장을 보기 전에는 시금치를 구입하려 했지만 신선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대체 상품을 찾는다. 그 날 물이 좋은 재료를 보고 메뉴를 변경하면 되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일주일에 장보기만 두세 번을 하던 주부가 집 밖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그랬듯 코로나 19로 인해 세 아이가 함께 있는 동안은 장보기가 불가능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장을 보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아이들만 두고 장을 보러 가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식자재 온라인 쇼핑이 시작되었다.


Photo by Toby Stodart on Unsplash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에 대한 많은 전망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엔 이번을 계기로 온라인 쇼핑을 이용해 본 오프라인 유저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포함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식재료의 신선함에 따라 메뉴를 선정하는 방식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수산물 코너가 좋은 마트와 야채, 과일류가 신선한 마트를 나누어 다닌다. 하지만 한 번 맞 본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에서도 여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우유가 떨어졌네. 내일 아침에 먹을 수 있게 새벽 배송으로 주문하고, 지난번에 맛있었던 이거랑 저거도 주문해야겠다.’

그렇게 오늘 아침에도 문 앞에는 새벽 배송 박스가 쌓이게 되었다.



나는 산들산들 장을 보고 집 밥을 해 먹을 시간과 여유를 원한다. 별것 없는 우리네 인생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하지만 죽도록 일한 하루의 끝, 몸과 정신은 너덜너덜해지고 장 볼 시간도 없다. 온라인 장보기를 하면 누군가 야간에 미치도록 일한 노동은 지워지고 물건만 깔끔하게 문 앞에 놓인다.  야간 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 요인이다. 새벽 배송은 편리하고 빠르고 효율적이며, 노동시간이 긴 한국 사회에 딱 맞는 스타일이라 승승장구한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p.44


쌓여있는 택배 박스를 보면 진부한 표현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맛있고 필요한 물품이 도착해서 냉장고를 채울 수 있다는 기쁨과 더불어 택배 상자에 들어간 종이, 속 포장지, 테이프에 모든 제품의 포장재를 처리해야 하는 부담감. 거기에 새벽 배송으로 야간 노동을 하게 된 누군가의 아빠, 엄마, 아들, 딸 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의 편리함이 지구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정도까지 생각이 다다르면 어플을 지워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이걸 소비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고민해야 하는 문제인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어 진다. 



주문한 물품은 몇 가지 아니지만 현관 앞이 가득하도록 재활용품이 쌓였다. 어떻게 봐도 과한 포장임은 분명하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비닐 완충재 대신 종이로 대체하고 비닐류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유통 기업의 자세다. 그럼에도 비닐류와 플라스틱이 수두룩하게 쌓인다.


독일과 인도에 가보니 무화과를 잎에 싸고 딸기는 계란판 같은 폐지에 담는 등 플라스틱에 포장된 먹거리가 흔치 않았다. 한국을 방문한 스위스 친구는 한 개씩 비닐에 담겨 있는 바나나를 보고 물었다. "바나나는 껍질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데 왜 또 비닐을 씌워? 너네는 바나나  껍질도 먹어?"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p. 41


외국 여행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햇살 좋은(꼭 그렇다. 우중충한 날씨에 시장을 갈 일이 없어서 그런가?) 날 거리에 좌판이 깔리고 사람들은 잔뜩 쌓아놓은 과일과 채소를 손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면서 흥정을 한다. 여행자라는 신분은 나를 꽤나 용감하게 만들기에 여행자를 위한 디스카운트도 요구해보고 덤이라는 문화를 전파하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맛보기 찬스도 가능하다.


우리네 시장에서 이런 모습을 찾기 힘들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갔던 시장에서는 과일이 쌓여있었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과일 한 조각씩 맛 보여주는 정이 있었다. 사과 봉지를 사면 하나는 덤으로 넣어주면서 아이들 주머니에 이건 너희가 먹어하고 하시면서 귤 하나씩을 따로 챙겨주셨는데. 방금 뽑은 가래떡이라며 손에 넘치도록 떡을 쥐어주시던 방앗간 인심은 어디로 갔을까?


유통되는 모든 식재료가 비닐로 쌓여 유통되면서 환경 호르몬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환경에 해를 끼친다. 껍질을 먹는 것도 아니고 씻어서 섭취할 수 있는 것들까지 모두 랩으로 비닐로 밀봉하여 유통한다. 마트에서는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면서 물이 흐를 수 있는 수산물이나 축산물은 두 겹, 세 겹, 네 겹을 둘러 랩핑 한 모습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해서 비닐 사용을 줄었을까? 비닐봉지는 다르게 재사용이라도 할 수 있지만 랩핑 된 비닐은 재활용도 못하는데. 둘둘 말아놓은 랩을 뜯으려 고군분투하며 한 장의 비닐봉지가 그리운 건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제로 웨이스트 샵 '더피커'주인장은, 서로 말을 거는 관계가 있는 시장이 플라스틱 프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알맹이만 사려면 손님은 용기에 담아주는지 물어보고, 상인은 무게를 재고 물건을 담는 동안 이야기를 건네며 거래 시간이 늘어난다. p.43


마트에 재료를 담을 통을 가져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실제로 마트 수산물 코너의 총각과 친해졌지만 이미 진열 과정에서부터 랩핑이 필수인 관계로 랩핑 전의 수산물을 따로 구입하려면 새로운 박스를 여는 순간이어야만 가능하단다. 그나마 얼음 위에 놓인 생선을 구입해서 손질했을 경우에는 가져간 통에 담아 올 수 있다. 문제는 계산대다. 당황해하는 직원이 수산물 바코드가 붙은 통을 보면서 이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마저 밀려든다.


가까이 시장이 없는 도심에 사는 주부는 장바구니를 풀면서 분리수거를 시작한다. 폐비닐류, 재활용 가능한 비닐류,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살뜰히 분리하고 씻어 말리는 수고로움까지 얹어 재활용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런데 여태껏 분리수거를 잘못하고 있었단다. 총제적 난국이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사실 이렇게 끝도 없는 질문만 하다 보면 포기하게 되고 마는 것이 환경 문제인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기에 나부터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플라스틱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은 나 몰라라'하고 만들어진 물건이 많다.(중략) 집에 있는 플라스틱 통을 모아보니 몸통부터 캡과 펌프까지 최소 3종류를 사용한 제품이 부지기수다. 누가 폴리스티렌 재질 요구르트 병에 붙은 알루미늄 뚜껑을 매번 뜯어내고 버릴까. 스티로폼도 문제다. 회나 고기를 신선하게 보이려고 빨간 선이 그어진 스티로폼 접시에 받쳐놓은데, 스티로폼은 오직 흰색만 재활용된다. p.70


이런 실정으로 인해 한국은 폐플라스틱을 수입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제는 소비자라도 나서서 재활용을 기준으로 두고 생산부터 유통까지 하는 기업들을 찾아 소비하고 독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뽁뽁이가 완충재로 사용되고 비닐 테이프로 둘둘 감싼 택배 박스들이 배송되어 온다. 희망을 찾아보자면 몇몇 기업은 이미 재활용 택배 박스를 사용하고 있고 비닐 완충재 대신 종이 완충재로 바꾸는 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테이프가 붙어있는 박스는 재활용이 되지 않는단 이유로 마트에서의 테이프 사용은 전면 금지되기도 했다. 


정책적으로 변화하니 박스 테이프 대신 종이 끈을 묶고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점점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지면서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이란 것도 깨닫는다.


이 글은 온라인 쇼핑을 끊을 수 없는 주부의 한탄 섞인 호소문이다. 배송받는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어서. 제발 택배를 받으면서 죄책감까지 배송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를 좀 구해줄 순 없을까? 제조과정에서부터 유통까지 변화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저자는 책을 통해 손편지를 써보라고 한다. 못 쓰는 글씨지만 어찌어찌 기업마다 편지라도 써야 할 판이다.

 



기업을 운영하시는 여러분. 어려운 시기에 사업을 이어가시느라 노고가 많으시지요. 함께 힘든 시기지만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귀하들의 노력으로 저는 비교적 평안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귀사가 제공하는 제품이 저렴하고 배송도 좋아 자주 이용 있습니다만, 매번 배송받을 때마다 쌓이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테이프와 비닐 완충재로 인해 환경을 해치는 일에 가담했다는 죄책감도 함께 배송받고 있어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모든 시스템을 바꾸기에는 쉽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 사에서도 조금씩 친환경 배송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고 계시겠지요? 저는 이왕이면 제가 즐겨 이용하고 좋아하는 귀사의 제품을 계속 이용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시도해주시면 어떨까 부탁드려보는 바입니다.



실제로 편지를 쓴다면 이런 정도가 되려나? 글을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하되 기분 나쁘지 않게 요청하기란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잘 마무리하여 곱게 쓴 손편지를 보내봐야겠다. 나는 더 이상 죄책감을 함께 배송받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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