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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Nov 06. 2020

예쁜 손가방은 다음 생에

텀블러를 가까이에 두고 살면 좋아요.

우리 집 찬장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텀블러가 각양각색의 모양과 사이즈를 뽐내며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이 외출용 생수와 커피를 담는 용도로 사용된다.


생수와 커피.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라 나처럼 가방에 이고 지고 다니는 이는 유별나다는 딱지를 붙이고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 유별나게 물을 가지고 다녔는지 생각해보니 역사가 꽤 길다. 학창 시절부터 가방은 늘 무거웠으니 말이다.


나는 물 섭취량이 많은 편이라 매번 편의점이나 마트를 찾아다니기가 번거로웠다. 2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편의점이 골목마다 두 세 개씩 있지도 않았다. 운이 없으면 생수를 구할 수 없어 단 음료를 마셔야 하거나 정수기를 찾아도 일회용 컵이 없어 또 두리번거려야 했다. 뭔가 불편해야 한다면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한 지 대략 30년쯤 되었을까.


습관이란 쉽게 바뀌지 않아 지금처럼 손쉽게 편의점에서 생수를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도 나는 텀블러를 사용한다. 항상 가방에 물 한 통은 있으니, 아이들도 어디서건 “물”하면 툭하고 나오는 줄 안다.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다. 


싱글일 때는 500ml 작은 텀블러 하나만 채워서 가지고 다녀도 중간에 리필할 곳만 찾으면 하루를 버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참고로 하루 섭취하는 수분량은 순수 물만으로 2.5L 정도 된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물 좋아하는 아이 셋에 남편과 나까지 외출을 하면 500ml 텀블러 2~3개에 커피를 채운 텀블러 하나 정도가 기본이다. 여기에 막내 기저귀, 손수건, 물티슈, 여벌 옷까지 챙기면 책가방 하나가 빵빵하고도 묵직해진다. 한두 시간 공원 산책에 이 정도가 필수 짐이다.


외부에서 만나는 이들을 보면 나와는 모습이 좀 다르다. 예쁜 가방 하나 달랑. 아이랑 아빠랑 셋이서 손잡고 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셋이라서 저런 모습을 연출할 수 없는 걸까?’ 여기에 남편은 단호히 대답했다. “넌 연애할 때도 안 그랬어.” 


그렇다. 예쁜 가방 하나 달링은 연애할 때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가진 가방들은 대부분 빅사이즈가 많다. 고작 물통 하나 넣어 다녀도(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빅사이즈 가방을 척 매고 나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가 되면 도둑놈 가방처럼 묵직해져 돌아온다. 천성인 셈이다.


솔직히 외부에서 사 먹는 생수와 커피 값이 아깝다. 물 한 통에 적게는 몇 백 원에서 비싼 곳은 몇 천 원. 가족 모두 한 번씩만 마셔도 최소한 생수 두 병은 사야 한다. 부부가 한 잔씩 커피를 사 먹으면 비싼 곳에서는 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한다. 운이 나쁘면 커피 맛이 형편없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있다. 복불복에 돈을 태우는 느낌이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따라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는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라고 따끔하게 질책한다. 툰베리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10대들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125개국 2,000여 곳에서 기후변화 행동을 함께했다.
"당신들은 늙어서 죽겠지. 우리는 기후변화로 죽을 거야. 우리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죽을 거야."
나는 그들이 SNS에 올린 피켓을 보고 울컥했다. 우리는, 우리가 쓰고 버린 플라스틱에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p. 65



환경운동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물과 커피를 챙겨지는 않는다. 다만 텀블러를 생활화하면서 조금은 생수병 사용을 적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정도다. 외출 시에 구입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다. 생수, 음료, 커피, 과자, 빵. 몇 개만 떠올려도 다 일회용품이다. 외출할 때는 모든 것을 소비하는 형태로 밖에 충족할 수 없는 걸까?


Photo by Daniel Norris on Unsplash


생수병이나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은 일회용기에 담겨있긴 하지만 재활용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를 읽고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투명한 페트병이 아니면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제대로 재활용이 되려면 라벨도 깨끗이 분리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 라벨을 붙여놓기로 유명하다. 결국 기업이 바뀌지 않으면 소비라도 적게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업이 그러는 걸 개인이 뭐 어쩌라는 거냐고 되묻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기업 차원에서의 개선이 필요함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적게 쓰고 안 쓰고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청색 탄산수 페트병을 예전처럼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을 지, 바짝 찌그러뜨려 종량제  봉투에 버릴지 고민하는 처지가 되었다. 
내 안의 철딱서니 없는 낙관주의자가 '유색 페트병은 재활용 안 되지만 혹시 몰라'라고 속삭이면 분리수거함에 넣는다. 반면 이성적인 현실주의자는 어차피 재활용도 안되는데 그냥 종량제봉투에 버리라고 한다.  허약한 나의 결정 장애 때문만은 아니다. 잘못은 애초에 재활용이 안 되는 개떡같은 포장재를 제조하고 사용하는 기업에 있다. p. 67


나 역시 급하면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 먹는다. 단지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텀블러에 물을 담아 준비해서 나간다. 매번 이 아니라도 좋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면 한 번 만 해보자. 조금 불편할 수 있다. 일단 챙겨나갈 때 가방이 무겁다. 자칫하면 물이 샐 수 있으니 잘 살피지 않으면 가방 속 다른 물건들이 젖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 먹은 통을 챙겨서 계속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것도 꽤나 번거롭다. 그래도 한 번만 해보자. 


번거로울 듯 하지만 텀블러를 챙겨 다니면 좋은 점도 있다. 생수만 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수 사는 김에 두리번거리면서 함께 구입하는 껌도 젤리도 초콜릿도 구입할 일이 없다. 충동구매 횟수가 줄어드니 고당도의 간식도 적게 먹고 돈도 적게 쓴다. 

또 하나. 가방이 무거워서라도 물을 챙겨 먹게 된다. 다 먹은 텀블러에 커피나 정수기 물을 채울 때 ‘의왼데?’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챙길 수 있다. 이 기회에 의식 있는 사람의 대열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떤가?


여기에 텀블러를 고르는 몇 가지 팁을 덧붙여보자면.


플라스틱 텀블러는 정말 잘 고르시기 바란다. 사은품으로 주는 텀블러를 잘못 사용하면 물을 챙겨나간 만큼 가방 속 내용물이 다 젖을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비닐에 싸면 또 비닐봉지를 사용해야 하니 사용 전에 내용물이 새지는 않는지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혹시 방수 기능을 가진 주머니를 가지고 계시다면 활용해도 좋다. 

뚜껑에 고무패킹이 있는 제품은 장단점이 있다. 패킹 덕에 내용물이 새지 않을 것 같지만 패킹 때문에 새는 경우도 많다. 잘 살펴보면 패킹 없이 마감이 잘 된 제품들도 많다. 

그래서 이왕이면 스테인리스로 된 텀블러를 사용하시길 권한다. 생각보다 무게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기술이 많이 좋아졌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찬 음료뿐 아니라 뜨거운 음료까지 다용도로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활용도가 더 좋다. 




가족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지금. 주부인 필자는 찬장의 텀블러를 다시 정렬해야 한다. 큰 아이 학교에 하나, 필자가 하루 종일 마시는 음료 컵으로 하나, 막내 전용 빨대컵까지 모두 제자리를 벗어났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놀이터에서 마실 물을 몇 통까지 챙겨두고 듬성듬성 비어버린 텀블러 자리를 다시 가지런히 모아둔다. 내일은 주말이니 또 잔뜩 사용하게 될 것이니 세척이 잘 되어있는지, 금이 간 것은 없는지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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