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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Nov 11. 2020

죄인은 아니니까요.

일회용 기저귀도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여보, 오늘 쓰레기 버리는 날이에요.”

일주일에 세 번. 쓰레기 버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 일반용 쓰레기 배출 때문이다. 지금은 날이 추워져 상황이 나아진 편이지만 여름철에는 이틀을 넘기면 날파리가 꼬이는 통에 쓰레기 배출일을 놓치면 집 안이 난리가 난다. 10L를 꽉 채우지 못해도 안녕을 고해야 한다. 베란다에 내어놔도 고약한 냄새와 날파리의 공격은 벗어나기 힘들다.


코로나 19로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으면서 생긴 불편함 중 하나가 엄청난 쓰레기 양과 더불어 냄새, 날파리의 공격이었다. 막내의 대변 기저귀가 주요 원인이다. 일회용 기저귀는 사용의 편리함에 비해 무척 많은 쓰레기의 원인이 되고 더불어 불쾌한 냄새와 날파리의 생성을 유발한다. 일회용 기저귀가 무조건 좋지만은 않은 이유다.


첫째를 출산하고 집에 돌아오던 날. 너무도 당연하게 집에는 천기저귀만 준비되어 있었다. 철없는 엄마는 ‘나는 천 생리대 쓰면서 아이는 일회용 기저귀를 쓰다니. 나쁘잖아!’라고 생각했다. 퇴소하면서 받아온 일회용 기저귀를 모두 사용한 후 천 기저귀를 두 개 정도 사용했을까? 남편은 가까운 마트로 급히 차를 몰았다. 준비되지 못한 신생아용 일회용 기저귀를 구입하기 위해서.




Photo by Corryne Wooten on Unsplash


신생아는 특히 천기저귀를 사용하기 힘들다. 아직 태변도 다 보지 못한 상태에 무른 변을 수시로 보기 때문에 아이도 엄마도 익숙한 상태가 아니라면 권하지 않는다. (참고로 둘째쯤 되면 가능하기도 하다.) 더구나 첫째는 태변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변비를 겪어 병원을 다니는 중이었으니 천기저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엄마 덕에 아이도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가 셋이니 기저귀 이야기만 해도 한 시간은 떠들 수 있다. 길어져 봐야 더 재미있을 이야기가 없으니 요약하자면 우여곡절 끝에 첫째와 둘째는 외출 시 등의 상황만 제외하고는 천기저귀로 키울 수 있었다.  


그렇게 익숙해졌다면서 왜 막내는 일회용 기저귀만 사용하고 있는가? 구질구질한 변명을 좀 하자면, 막내는 셋 중 유달리 발육상태가 좋았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바람직한 유형의 아이. 처음에는 막내도 천기저귀와 일회용 기저귀를 복합적으로 사용했다. 이미 마련되어있는 천기저귀가 있으니 고민 없이 병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대략 15개월을 넘어설 때부터 일회용 기저귀가 박스로 연일 문 앞에 놓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천기저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소변량으로 쉬야를 할 때마다 바닥에 물웅덩이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 이유다. 물론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흡수력이 약해진 천기저귀 탓도 있겠지만, 놀이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참다가 몰아서 소변을 보는 덕에 종종 천기저귀로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가지고 있던 천기저귀는 모두 처분하고 오로지 일회용 기저귀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누나나 형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이제쯤 대소변을 가릴 수 있을 법도 한데, 성격이 느긋한 건지 아이는 배변 후 신호는 주지만 배변 전 신호는 아직 민감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시작할 때 같이 하기로 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어찌 되었건 지금 일회용 기저귀만 쓰다 보니 25개월 아들은 우리 집 일반 쓰레기 배출의 1/3 지분을 차지하고 계신다.


폐기물부담금이 많이 올랐다고 해도 여전히 쓰레기를 처리하는 실제 비용엔 못 미친다. 예를 들어 일회용 기저귀 하나당 폐기물 부담금은 5.5원인데 실제 매립에는 13.72원 이 들어 약 30퍼센트만 충당되는 실정이다. 폐기물 부담금이 실제 비용보다 낮게 책정되면 기업과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게 된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153



이런 사실은 사용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넘어 죄인을 만들어 버린다. 선택의 여지없이 일회용 기저귀를 써야 하는 사람들은 그저 사용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이렇게 팩트로 때리지 않아도 쓰레기봉투에 기저귀를 버릴 때마다 양심에 돌덩이가 올려진 느낌이다. 잘 썩지도 않을 재질인데, 이렇게 많이 버려서 어쩌나... 싶은 생각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물론 지금도 기저귀 가격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폐기물부담금이 제대로 측정되어 반영된다면 사용자의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우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지 않을까?


폐기물 부담금이 제대로 반영되고 기업과 소비자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죄인이 되고자 하지 않았으니 소비자를 죄인으로 만들지 말아줬으면 한다.



가사 노동에 있어서 남자보다는 고양이 손이 낫고, 고양이 손보다는 일회용품이 더 낫다는 농담이 있다. 지구를 위해서 생리대도 빨아 쓰고 유기농 식자재로 집밥도 해 먹고 페트병에 붙은 라벨을 뜯어 분리 배출하고,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불평등한 가사 노동에 더해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말로 들린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p.182


일회용 기저귀만 사용하는 것이 잘못하는 일은 아니다. 사실 20년 가까이 천 생리대를 써왔고, 무려 7년을 천기저귀로 아이를 키웠다. 이쯤 되니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소변 기저귀, 대변 기저귀를 나누어 뒤처리를 해야 한다. 뺄래는 세탁기가 한다지만 대변 기저귀는 애벌 손빨래가 필수다. 아이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엄마 자신의 생리현상도 제때 해소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데 아이 똥기저귀까지 손빨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각자의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것 까지 비난하기보다 일회용 기저귀를 좀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고 소비자와 기업이 사용하는 것에 있어 충분한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꾸만 누군가에게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희생과 선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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