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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Dec 09. 2020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

feat.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나는 바보야~~ 엉엉 엉엉...”


화장실에서 누나와 동생과 함께 씻던(이라 쓰고 노는 중이라 읽는) 둘째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보다 ‘바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뼈아픈 후회를 하며 한참 동안 아이를 꼭 안고 어르고 달래고 설득한다. 다행히 아이는 금방 다 잊고 다시 놀이(?)에 동참하지만 엄마는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바보 (명사)
1.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


‘바라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따위의 케케묵은 농담은 그만두자. 바보의 사전적 의미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혹여 해당한다 하더라도 부모가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어쩌다 내뱉었는지. 아이를 키우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게 이 말을 내뱉은 날이다.


제법 오래된 일이다. 둘째가 양손에 장난감을 들고 옷을 벗을 수 없다며 칭얼거렸다. 내 설명이 어려웠을까? 장난감을 한 손으로 옮기고 반대 편 소매를 빼라고 알려주길 몇 번. 계속 장난감을 옮겨 든 손을 빼려고 하며 안 된다고 짜증을 부렸다. 말 못 하는 막내도 하는 일을 계속 반대로 하니 얄팍한 인내심이 바닥났다. 순간 “바보냐?” 내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나갔다. 너무 순식간에 나온 말에 뭐라고 대처도 못하고 있는 중에 듣고 있던 신랑도 애한테 바보냐가 뭐냐며 핀잔을 줬다. 얼결에 뱉은 말이 강렬했던지 첫째도 흉내 내며 놀리는 바람에 둘째는 ‘바보’라는 말이 자신에게 해당한다고 기억해 버렸다. 


그 ‘바보냐’ 사건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후유증이 심각하다. 둘째는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혹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무리에 끼워주지 않는 느낌을 받으면 “나는 바보야~”라며 울음을 터트린다.


지나고 나면 늘 후회하는 것이 부모라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욱하며 내뱉는 말이 없도록 더 조심하게 되었다. 어떻게 아이에게서 ‘바보’라는 단어를 지워줄 수 있는 건지. 뱉어버린 말을 물릴 수가 없음에 후회만 가득하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은 부정적인 신호를 차단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혹은 하고 싶은 한 분야에 ‘깊은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300쪽이 넘는 책을 한 줄로 요약하고 보니 10년 동안 책을 쓴 저자에게는 매우 미안하다. 이 간단해 보이는 명제를 발견하고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사례를 찾고 검증하고 실험하는 노력을 했다. 이런 책을 읽으면 ‘책은 긴 시간을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압축하여 얻는 방법’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혼자서는 할 엄두도 내기 힘든 이런 작업을 누군가 수고스럽게  해 주어 그저 읽고 깨닫고 행동을 변화하면 되니 감사할 따름이다. 


요약한 이 한 줄만 읽어도 ‘나는 지금부터 그렇게 할 수 있겠어!’ 한다면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정적 신호는 어떻게 차단하는지, 어떤 신호를 차단하고 어떤 신호를 받는 환경에 있어야 하는지 더 알고 싶다면 읽어보길 권한다. 신호를 차단하고 난 후 어떻게 몰입해야 하는지도 책에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무수히 많은 사례를 통해. 그러니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연구할수록 노력하려는 개인의 소박한 의지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긍정적 환경의 신호들이 그들을 순환적으로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p. 44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신호를 주고받는다. 주어진 신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때로는 정곡으로 때로는 빗맞으며 사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아닐까. 이제는 주어지는 신호를 분류하자. 차단할 것은 차단하고 필요한 신호가 가득한 곳으로 옮겨갈 줄도 알아야 한다. 운이 좋으면 노벨문학상을 받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니 그걸 가능케 하는 신호가 가득한 곳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작품 활동에 크게 지장을 받을 만큼 충격적인 그림이다. 평가를 위해 보는 것도 너무 힘이 드니, 너는 이제부터 미술 시간에 일체 활동을 하지 마라.”를 말을 들었다. 어린 시절 전국 대회에서 최우수 그림상도 받고, 시상식이 티브이에 생중계되는 큰 대회 수상경력도 있었는데, 그 순간 과거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결국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부정적 신호를 평생 안고 예술 분야는 내 것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살아왔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예술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셈이다.


운이 좋게도 학업성적이 크게 나쁘지 않았고, 미술을 못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 관계로  삶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받은 신호가 ‘미술’이 아니라 ‘수학’이거나 ‘국어’였다면 덤덤히 그 시절을 지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지금도) 학업성적으로 모범생 여부를 결정짓고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면 공부만 하는 것이 다니다. 학교 친구가 오늘도 나를 잘 받아주는지, 교복은 제대로 입고 나왔는지, 내가 몇 점 성적대인지, 저 선생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따위의 복잡한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p. 72


이제 학교에 입학한 첫째를 보면서 외부의 신호가 주는 힘이 절실히 느껴진다. 그날따라 어깨가 처져있다 싶으면 ‘친구들은 재밌게 놀면서 나를 끼워주진 않았어.’라고 한다. 어쩐 일로 하교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싶으면 ‘누구랑 누구가 내 옆에 와서 말을 걸고 예쁘다고 말했어.’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친구를 붙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로나로 집에 있는 동안 아이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고작 한 달 동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가 혹여나 부정적인 신호에 상처 받고 더욱 움츠러들까 걱정되는 마음에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거다.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화면에 보이는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인지 스스로 알아챘으면 했다. 자신의 빛나는 부분을 바라보며 빛을 내는 아이가 되길 바라면서 영상을 만들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등교가 매일로 바뀌고 아이는 빠르게 적응했다. 간혹 받은 부정적인 신호에도 크게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를 하나, 둘 사귀더니 요즘은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를 말하느라 입이 아플 지경이다. 친구와 함께해서 재밌는 놀이를 찾아내고 그중 자신이 특히 잘하는 것을 자랑할 줄도 알게 되었다.



어떤 신호도 영원하지 않다. 그 변화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이 내 안의 변화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p. 125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중 가장 가변성이 큰 것을 들라면 사람이 아닐까? 그림은 잘 그렸지만 음악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어느 사인가 전문가에 가까운 음악인이 된 경우도 있고, 법조인으로 평생 살고자 했지만 수행에 뜻이 깊어 구도자들을 이끄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무엇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유재석이 가수라는 부캐를 그렇게 잘 소화할지 누가 알았을까? 중요한 것은 무수히 쏟아지는 부정적 신호를 모조리 차단하고 평균을 강요하는 시선으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벗어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Photo by Alexander Jawfox on Unsplash


현재 나의 최상위 목표는 아이의 완전한 독립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수히 많겠지만 그중 필수로 꼽는 자질을 ‘자존감’이라고 불리는 내면의 단단함이라 여긴다. 올 한 해 첫째의 학교생활을 보면서 조금은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의 내면이 단단함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안정감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부정적 신호와 필요 없는 시선에 시달릴 테지만 아이는 자신의 빛나는 모습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 보인다. 


모든 것을 차단하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한 아이들은 그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본질적인 영역까지 두드린다. 그 오로라는 대단하다. p.167


“엄마, 나는 커서 뭐가 될까?”

“쌩쌩이는 쌩쌩이가 되면 되지.”

“아이돌도 하고 싶고, 선생님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데 다 할 수 있을까?”

“그게 뭐가 됐건 쌩쌩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쌩쌩이가 될 수 있어.”


가능하면 아이의 미래를 직업에 한정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든 사람이 아이에게 꿈을 직업과 연관시켜 이야기하고 있으니 엄마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 무엇을 하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건 아이는 아이 자신인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이런 엄마의 마음이 훗날 아이에게 쏟아질 쓸모없는 신호를 차단하는 힘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평범하다는 신호는 우리를 지금도 계속 평범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그 익숙한 신호를 차단하지 않는다. p. 96


“쌩쌩아. 너는 특별해. 왜냐하면 쌩쌩이니까. 그걸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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