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하루 15분 인문학 지혜 독서법
학교를 몇 번 가보지도 못하고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난 첫째의 하루는 놀이로 가득하다.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고, 점토를 만지고, 블록을 맞춘다. 가끔 줄넘기나 훌라후프를 하고 문을 지나다닐 때마다 문틀 사이를 오르며 기행인지 운동인지 알 수 없는 행위를 한다. 이제 2학년인데, 이래도 될까 싶은 때가 있다.
학원을 보낼 수도 없거니와 사교육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는 편이다. 그저 하루 종일 삼 남매가 부대끼며 노는 것이 전부다. 매일 학습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매일 밖에서 뛰어놀면 몸이라도 건강해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만큼 허송세월이 아닌가 가끔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학습 공백을 우려한다. 물론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아는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 능률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 아이는 어느 쪽일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더 밀도 있는 시간을 같이 보냈을까? 가끔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스러운 마음이 든다. 큰 아이 한 명만 있었다면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하지 않았을까? 부질없지만 그런 생각도 한다.
이 와중에 엄마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시간을 더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솔직히 여기서 아이 학습에 더욱 시간을 내려면 무엇이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게 잠이 될 확률이 제일 높기에 나는 그런 선택지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저 가능한 만큼 일주일에 한두 번 책을 읽고, 두세 번 정도 수학 개념을 익히고, 아주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아이들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을 알고,
다른 사람을 알고,
세상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공부가 바로 인문학 공부다.
<하루 15분 인문학 지혜 독서법>
아이 교육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매일 함께 공부하지 않는 엄마라 미안하다. 죄책감을 덮으려 빠르게 변화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증이 인다. 엄마는 의욕이 넘치고 아이는 따라가기가 버겁다. 결국 엄마가 화를 내는 것으로 상황이 끝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와 아이 사이의 균형점을 찾았다. 생활에 적용해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처음부터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요즘 읽는 책에 대해 슬쩍 알려준다.
"엄마 뭐 읽어?"
"어, 이 책은 쌩쌩이랑 같이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야."
"아~ 나는 글쓰기 싫은데."
"맞아, 글쓰기가 좀 어렵지. 엄마도 매일 쓰지만 어렵고 힘들어."
이렇게 대화는 끝이 난다. 어느 날 아이가 한자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쓰는지 관심을 보일 때가 있다. (방금 이야기했던 책 속에 한자를 익히면 아이의 어휘력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때를 경계해야 한다. 절대 아이의 관심을 바로 이용하고 싶은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 '한자 공부를 해보고 싶어?' 정도의 물음이면 적당하다. 아이가 동의하면 혼자(지만 엄마와 함께 해야 하는) 교재를 골라 책장에 꽂아준다. 아이는 그 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당장 한자를 통달한 것처럼 굴지만 실제로는 한 장도 보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 마음에 분노가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마치 그런 책을 사준 적이 없는 것처럼 잊고 지내는 것이 좋다. 그러다 몇 달이 지나면 어느 날 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나 이거 해보고 싶어!" 이제 시작할 수 있는 때가 됐다.
물론 하루 반짝 공부하고는 다시 가지고 오는 일은 없다. 아이에겐 분명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어려웠던 기억을 잊어버리고 다시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 엄마는 마치 처음인 것처럼 기쁘게 함께해 준다. 시간의 힘은 위대하다.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지난번보다 쉬워졌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면서 며칠 정도 공부를 한다. 그리고 다시 어려움에 부딪힌다. 이런 패턴을 반복하는 데 있어 엄마가 할 역할은 한 번씩 상기시켜주는 정도면 된다.
© mreulogist, 출처 Unsplash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효과는 좋다. 엄마가 끌고 가는 공부가 아니라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공부이기에 거부감은 생기지 않는다. 나는 학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성이라 생각한다. 설사 엄마가 옆구리를 찔렀거나 '수학'이냐 '독서'냐는 선택지 밖에 없는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방법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엄마가 속이 좀 많이 터진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적극적으로 서포트할 준비를 해두는 것 까지다.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알아보고 대처하면 늦을 수도 있다. 아이가 가졌던 열의는 자고 나면 식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필요할 것 같은 분야를 먼저 탐색하고 환경 조성하기까지만 한다. 나머지는 아이의 선택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어른과 같은 선택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아이와 함께 읽을 탈무드를 준비해 두고 기다리는 중이다. 읽고 싶어 할 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아이를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내 공부를 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 한 달 뒤가 아니면 내년에는 하고 싶어 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책을 읽긴 했지만 현실에 바로 적용하지 못하는 오늘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당장이라도 아이를 앞에 앉히고 탈무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과도한 욕심임을 알기에 오늘도 그냥 기다리는 중이다.
딸아, 엄마는 준비가 되어있단다. 언제든 읽고 싶을 때가 오면 같이 읽자.
부디 이 마음으로 잊지 말고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