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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an 25. 2021

좋아하는 일 vs 해야 하는 일

좋아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까?

모든 병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일주일 내내 골골거리며 누워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역시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최근 생각이 많아지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들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자주 슬럼프가 오는 걸까? 좋아하는 일이라고 착각했을까? 등등.


내게는 해야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있다. 해야 하는 일에는 집안 일과 육아가 있다. 그건 회사에서 내게 맡긴 직무 같은 거다.

다행히 집안일을 하는 것을 크게 힘들어하는 편은 아니다. 요리가 죽을 만큼 힘들지도 않고 제일 싫어하던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도와주면서 많이 벗어났다. 크지 않은 집이기에 청소가 힘겹지도 않고 빨래가 좀 많긴 하지만(하루에 세탁기가 두 번 이상 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손을 덜어주니 할 만하다. 무엇보다 집안일은 혼자가 아니라 기계와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기에 업무가 심하게 몰린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럼 육아는 어떤가? 육아를 하는 시간이 정말 불행한지에 관해 곰곰이 들여다봤다. 뭐든 키우는데 젬병인 사람이라 아이를 키운다는 게 해낼 수 없는 일을 맡은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지켜본 결과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힘들다고 느끼는 건 육아가 할 수 없는 일이라서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그러한 압박감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집중하지 못했다. 육아를 할 때는 육아에 집중하고 시간을 정해서 ‘다른 일’에 집중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원인을 정확하게 모른 채 마냥 육아가 맞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육아도 중요한 업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착각한 것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되돌릴 수 없는 시기임에도 다른 것들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육아가 제일 먼저라는 당연한 사실을 터부시했다.


아이들을 키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컨디션 관리다. 잘 자고 제때 배부르고 건강하게 먹고 충분히 쉬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육아시간이 불행하다. 몸이 좋지 않아서 아이들이 버겁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꾸 아이만 탓하게 되는 것이다. 과음한 다음 날 출근하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피곤한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주말이라고 늦게까지 남편과 보내고, 늦잠을 자길 반복했다. 평일에 갑자기 원래 패턴으로 돌아오려니 몸이 버거웠을 수밖에 없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매번 반복하면서 아이들이 힘들게 하는 거라며 째려봤는지도 모른다.



Photo by Avi Richards on Unsplash



좋아하는 일만 하면 행복할까?


예전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다 행복하고 의욕이 넘치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좋아하는 일만 찾는다면 에너지가 충만해져서 지치지도 않고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내게 있어서 그 친구는 끈기, 인내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하던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는 모습에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잦은 이직과 직종 변경을 하던 나는 가질 수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하는 일은 서비스업이기에 힘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사람을 끝없이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근무 시간도 길고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객들이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기에 언젠가 그만둘 날만이 오길 기다리며 버텼다는 걸 알고 있다.

친구는 그만둘 날만을 기다리던 일을 이제 주인이 되어서 이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만두길 결정하고 보니 할 줄 아는 것도 그 일밖에 없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그 일을 좋아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창업을 결심했단다. 주인이 되어 같은 일을 하는 친구의 모습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이전에 없던 책임감이라는 무게는 있겠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는 일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는 성인이 되고 나서 만난 얼굴 중에 가장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도 버거울 수 있다.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딴짓이 하고 싶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꽤 오랜 시간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이유로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조건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이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가끔은 도망치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힘들어도 하고, 하고 싶지 않아도 하면서 좋아하는 일이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예정이다. 아프면서 자라는 거라고 했던가? 일주일 마음고생이 좋아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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