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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Feb 12. 2021

평균 회기의 법칙

생활비가 없어요.

하루 중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끝내고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 배부르게 먹고 낮잠도 잘 자고 당 충전까지 끝낸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신나서 노는 30분. 하루 일과를 끝내고 아이들이 동영상을 보는 1시간.  


운이 좋게도 아이들이 집을 비워 한 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게 된 날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만 있던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리라 마음먹고 하던 일 빠르게 끝냈을 때다. 운명 같은 알림 메시지가 울린다. (핸드폰은 항상 무음 상태이고, 남편의 연락만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지?’


[이번 달 월급 입금했어요.]


오늘이 월급날이었구나. 기쁜 마음으로 월급을 확인했다. 대부분 자동이체가 되어있어 평소에는 필요한 통장으로 나누어 넣기만 하면 되지만, 며칠 전 목돈을 쓸 일이 있어 통장마다 긁어낸 상황이라 수습이 좀 필요했다. ‘가만있자 어디에 얼마나 채워야 하나?’


대략 예산은 세워놨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분배를 끝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송금을 끝내고 나니 생활비 통장에 돈이 모자란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잠깐 훑어보았지만 계산에 구멍은 쉽게 찾을 수가 없고, 돈은 부족하다. 이체가 끝나고 남는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다섯 식구가 이슬만 먹고 산다면이야 문제가 아니지만 앞으로 한 달간 먹을거리를 장만할 돈을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엔 설 명절이 있지 않는가! 대책이 필요했다.


분배한 금액을 다시 확인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모자라는 금액을 충당할 수 있는 곳을 뒤지고, 최소한 생활비를 마련해본다. 숫자와 씨름하는데 젬병인 여자는 귀한 한 시간에 한 시간을 더해서야 사태를 수습했다. 허무함과 두통만 남은 상처뿐인 두 시간이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선다. 문득 ‘평균 회기의 법칙’이란 말이 떠올랐다. 결국 운 좋게 얻어지는 책을 읽을 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매사가 그렇다. 살림을 해보면 적금이 만기 될 때쯤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손해 봐서 속 쓰린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덤을 얻는 경우가 따라온다. 어제 운 좋게 평소보다 두 배로 책을 읽었다면 오늘은 바빠서 책을 열어볼 시간도 나지 않는 법이다. 


돈을 더 버는 것도, 책을 더 읽는 것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면 행복이나 슬픔도 비슷한 걸까?


나는 꽤 오랜 시간 특별하게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누구나 그늘을 가지고 있다는 건 모른 채, 내게 드리워진 그림자만 바라보며 빛처럼 돋보이는 사람을 열망했다. 덕분에 위아래로 요동치는 삶을 살았다. 

반면에 남편은 단단한 땅에 두 발을 딛고 걷는 것 같은 삶을 살았다. 힘들고 지치면 쉬면 되고, 가끔 돌부리가 나타나도 돌아가면 그뿐인 안정적인 인생이었다고 했다. 


요동치는 삶을 산 여자와 평탄한 인생을 산 남자가 만나 아이를 낳았다. 첫째는 엄마가 가졌던 삶을 반영하듯 큰 커브를 그리며 행복과 좌절을 골고루 맛보게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셋째까지 함께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그리는 인생 곡선도 아빠의 것과 비슷하게 잔잔해져만 갔다. 


오르고 내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게 나 하나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데다 무수히 많은 사람과 만나는 일이라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곳곳에 생긴다. 

오늘 하루 예상치 못한 변수로 애써 만든 한 시간을 날렸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이만큼을 채워줄 시간은 내일 또 생길 것이고, 그 시간의 평균이 우상향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평균 회기의 법칙은 삶이 꼭대기에 있을 때 자만하지 말고 바닥에 있을 때 좌절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꼭 지금이 아니어도 머지않은 미래는 좋은 쪽일 거라는 믿음으로 지금보다 딱 한 발짝만 위로 향하게 살아보자. 비록 이번 달 생활비를 0원에서 시작하더라도 다음 달의 월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희망을 져버릴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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