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증폭기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비슷한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 발달 과정을 순차적으로 지나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까닭은 꼭 거쳐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올해 여섯 살이 된 둘째는 요즘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감정을 온몸으로 익히는 중이다.
엄마에게 혼이라도 나면 으레 “엄마는 나 싫어해?”라고 묻는다. 같은 질문을 몇 년 전 첫째에게 처음 받았을 때는 말로 표현을 다 못할 만큼 놀랐다.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아이가 느낄 만큼 행동에 문제가 있었나 싶어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한 번 겪고 나니 ‘엄마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요.’라는 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때는 한껏 과장된 목소리로 그럴 리가 없다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너'라는 말을 지칠 때까지 퍼부어준다. 예전보다는 여유롭게 대처하지만 항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신나게 과자를 먹었다. 식탁에 남은 포장지를 종이와 비닐류로 분류하고 청소기로 마무리를 했다. 씻고 나온 아이는 정리된 식탁을 바라보면서 묻는다.
“엄마, 초콜릿 과자 박스 어디 있어요?”
“정리했지.”
“아앙~~~~~~~”
숨 쉴 틈도 설명을 덧붙일 시간도 없다. 마냥 주저앉아 온 몸으로 짜증과 분노를 토해낸다. 한참을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내뱉던 아이가 오열하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색칠해야 한단 말이야아~~~~~~”
초콜릿 과자도 좋지만 포장 박스에 그려진 색칠용 그림도 과자를 산 목적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정리한 포장 박스는 다시 가져오면 되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은 설명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마치 지구 상 존재하는 모든 슬픔과 억울함을 자신이 매개체가 되어 언제든 내뿜을 준비만 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을 토해낸다.
나는 이 시기를 감정을 익히는 때라 여기고 ‘감정 증폭기’라고 읽는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당한지 알 수 없는 아이는 티끌만 한 감정도 태산만큼 증폭해서 표현한다. 이 시기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사뭇 소름이 끼치는 원망을 받기도 하고, 내가 원인이 아닌 이유에도 화산이 폭발하는 듯 한 분노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Photo by Marcos Paulo Prado on Unsplash
감정 증폭기는 여섯 살 무렵에만 있는 걸까?
또래 집단에서 내몰렸을 때, 나만 소속되지 못했다는 외로움이 견딜 수 없이 크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가슴 아픈 짝사랑에 세상에 나만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은 감정에 휩싸여서 몇 년을 가시를 세우고 살았던 적도 있다. 온통 부조리함으로 가득 찬 세상에 나만 피해를 보는 것 같아 울분에 차 있던 시절도 있었다.
사전에 나오는 수많은 감정들을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한 번은 겪는다. 대체 누가 모든 감정을 처음부터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수 있을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감정을 다 겪어 본 건 아니다. 여전히 두렵고 짐작만 가는 감정들도 많이 남아있다. 새로운 감정들이 찾아오면 또다시 감정 증폭기가 작동할지도 모른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어쩌면 매번 겪을 때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도 있지 않을까.
감정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져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때 역시 지금 여섯 살의 아이가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감정을 지나는 것처럼 과하게 반응하게 될 거라 짐작된다.
인생이란 어쩌면 모든 감정을 온몸으로 익혀가는 과정이 아닐까? 조금만 우아하게 지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너무 과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