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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Mar 07. 2021

꿈과 현실

어중간한 인간이고 말았다.

남편과 결혼을 앞두고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직업 특성상 어쩌면 마흔이 넘으면 일을 하기 힘들 수도 있어.”

“괜찮아. 그럼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지으면서 살지 뭐.”



남편은 심각하게 고민하고 꺼낸 이야기였을 텐데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대답하는 바람에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고맙게도 남편은 당시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 자신이 하는 고민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 꼬집지 않았다.



대화를 하던 우리는 서른 중반이었고, 지금은 마흔을 몇 해 전에 넘겼다. 남편은 여전히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고, 변함없이 서울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전원에서 사는 삶을 꿈꾼 적이 있다. 초록 생물들이 가득하고 맑은 공기가 있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그리며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현실은 벌레라면 기절할 정도로 무서워하고 농사는커녕 집에서 기르는 화초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말이다.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 ‘골드’라는 말이 붙어도 어울릴 법한 화려한 싱글로 사는 내가 될 거라 믿었다. 사랑 따위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쿨내 진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 없이는 한순간도 못 사는 아이 셋 키우는 전업주부가 되어 있을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남들이 모두 ‘네’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라는 광고가 있었다. 나도 그렇게 뾰족한 송곳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네’라고 할 때 그 소리에 묻히길 바라는 비겁하리만큼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아침형 인간이고 싶지만 닷새를 노력해도 하루 만에 금방 올빼미가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늘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서 오늘도 읽을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운동을 즐기는 건강미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지금 앉은 의자에서 꼼짝도 하기 싫어서 화장실 가기도 미루는 게으름뱅이다.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었지만 채식을 선망하는 육식주의자가 되었다.



꿈과 현실이 너무도 일치하는 게 없어 모든 게 다 어중간하다. 어중간한 내가 싫어서 글을 썼는데, 쓰고 보니 어중간한 인간인 게 명확해졌다.



이상을 실현할 용기와 실행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용기와 배짱을 가졌으면 좋겠다. 결국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하고 방황만 하다 끝까지 어중간하게 살다 가는 건 아닌지, 어중간한 인간이어서 싫은 건지 싫은 내가 어중간한 건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Photo by Jaime Handley on Unsplash




어떤 꿈은 환상이었고,

어떤 꿈은 동경이었고,

어떤 꿈은 걱정이었고,

어떤 꿈은 타협이었고,

어떤 꿈은 좌절이었고,

어떤 꿈은 희망이었고,

어떤 꿈은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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