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은 무음 모드

하루만 이렇게 지내보길 권해드립니다.

by 로지

15~17시간 무음 모드. 내 핸드폰의 현재 상태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무음 모드로 지낸다. 소리로 되어 있는 시간은 아이들 하원~ 잠자리 들기 전 6~8시간 정도가 전부. 예전엔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긴급하게 연락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집에 전화기가 없으니)에 최소 진동모드 거나 소리로 되어있었고, 차량(살고 있는 곳이 이중주차 시스템이다) 문제로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밤에도 진동으로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든 사이 울리는 진동으로 깊은 수면을 방해받다니!!!


우리는 기계나 SNS에 의해 제어된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그 배후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 제어되고 있는 거죠. 그 '누군가'는 SNS 친구이기도 하고 정보기관이기도 하며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거대 IT 기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제어를 당하기 위해 돈을 내서라도 어떻게든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초예측, 부의 미래> P.151


인증용으로 시작한 인스타그램에서는 친구들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린다. 그 알람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들어가 보고는 어느새 몇십 분째 핸드폰을 보고 있다. 혹시나 중요한 공지 사항(이런 게 정말 있는 건가 싶지만)을 놓칠까 가입되어 있는 카페의 알람이 울리면 일일이 반응해서 확인해 본다. 키워드와 몇몇 게시판 글만 알람 설정을 해놓았지만 하루에 몇십 개의 알람이 울리기 일쑤다. 카톡은 밤 10시~ 아침 6시까지 확인하지 않으면 일별로 다르지만 60~500개의 알람이 와있다. 그중 정말 그 시간에 꼭 확인해야 하는 알람은 대체 몇 개일까?

브런치 글에 라이킷! 하신 분들의 메시지는 자꾸만 반응에 민감한 글을 쓰게 만든다. 처음 글을 쓰겠다고 한 목표와 꼭 일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이킷! 반응이 줄어들면 '글을 못썼나?'하고 반응에 신경 쓰기 마련이다. 목적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지는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사람과의 연결이 없는 세계에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음 모드의 생활을 해 보면서 느낀 점은 핸드폰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얽매이지 않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무음 모드도 처음엔 신경이 쓰인다. 혹시 바로 확인하지 못한 중요한 알림이 있지 않을까 수시로 핸드폰을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 집중이 잘되거나 혹은 강제적으로 너무 정신없어서 (예컨대 아이들 셋 다 정신을 쏙 빼놓는 날) 핸드폰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어도 별 다른 문제가 없었음을 자각하게 되면 집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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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무음 모드, 아이와 집중해서 보내는 시간도 무음 모드, 수면시간도 무음 모드이다. 물론 이로 인한 손해도 분명히 있다. 함께 하는 이들과 실시간 나누는 유대감 형성이라든지 실시간 반응하지 않는 카톡에 화내는 지인이라던지 이런 것들 말이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전업주부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직장인이 어떻게 대부분의 시간을 무음으로 보내겠는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지금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시간이 깨어지고 쪼개져서 버려지는 것보다 중요한 걸까?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한 24시간이다. 그중 누구는 빌 게이츠가 되고 누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해야 하는 많은 것들의 우선순위를 세워보자. 제시간에 끼니 챙겨 먹기. 약속한 시간만큼 책 읽기. 매일 꾸준히 운동하기. 성장을 위한 글쓰기. 아이들과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 확보. 마지막으로 최소한 8시간 수면시간. 이상은 내가 무음 모드를 두고 우선시하는 것들이다.




<초예측 부의 미래>에서 마르쿠스 가브리엘(<왜 세계는 존재하는 않는가>를 펴낸 독일의 철학과 교수>는 소셜 미디어를 '가장 더러운 카지노'라고 말한다.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우리가 이런 기업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매일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주고받거나 뉴스를 읽거나 검색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데, 이 모든 행위는 부가 가치를 가진 데이터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노동'에 가깝습니다.
<초예측, 부의 미래> p.152


그는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를 클릭하는 행위를 '도박'에 참여하는 것이라 표현한다. 팔로우를 모으고 게시물 조회 수를 올려 '잭팟'을 터뜨리는 사람들(인플루언서, 유명 유투버 등)은 큰돈을 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이익을 얻는 것은 도박 참가자가 아니라 도박판의 운영 관리자다. 카지노와 비교하니 정말 와 닿는 말이다.

지금 이 글도 '누군가'의 지배하에 있는 플랫폼에 쓰고 있고 읽고 있다. 라이킷! 을 받고 싶은 욕망을 눌러야 하고 그러면서도 어떻게 공감을 더 이끌어낼까 고민한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GAFA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노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당장 글쓰기부터 멈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결국 라이킷! 을 많이 받으면 나는 기분이 좋고, '누군가'는 데이터와 광고 수익 등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적당히. 이익이 되는 만큼. 삶이 파괴되지 않을 만큼. 최소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를 할 수 있는 만큼.

일정 시간을 내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이 노예가 되어버린지도 모르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게임이나 컴퓨터의 사용시간을 제한하는 것처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범위에서 움직인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핸드폰을 끄는 것이 무리라면(나같이 핸드폰 없이는 길도 못 찾는 사람도 있으니까) 무음 모드를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지? 기계에 의해 제어당하는 느낌이 아닌 기계를 이용하면서 삶을 주도하는 느낌을 한 번쯤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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