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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eritif Nov 04. 2022

Sebastien Riffault, 세바스티앙 히포

50년 전 상세르를 재현하다

프랑스 중부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루아르 강의 동쪽에 위치한 상세르.

소비뇽 블랑의 대표적인 산지, 상세르를 떠올리면 높은 산도와 화사한 과실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나, 세바스티앙 히포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상당히 독창적인 본인만의 개성을 가진 생산자입니다.


최대한 익은 소비뇽 블랑을 수확한 후, *보트리티스의 비율을 달리하여 와인을 만들고 있으며 이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히포만의 스타일로 이어집니다.


*보트리티스

보트리티스 시네리아균(Botrytis Cinerea)이라고 알려진 균으로 귀부(Noble Rot, 귀한 부패)를 만드는 곰팡이다. 포도껍질에 이 곰팡이가 자라면 포도 내의 수분을 증발시켜 당도를 높이고, 와인에 복합적 풍미를 부여한다. 보트리티스에 감염된 포도로 최고급 스위트와인이 만들어지고 있다.



세바스티앙 히포는 50년 전 상세르를 재현하는 생산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세바스티앙 히포의 소비뇽 블랑은 상세르 지역의 다른 와인들과 전혀 다르다. 이는 말로락틱 발효(2차 발효)의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상세르에서는 상큼한 사과산을 남기기 위해 1차 발효가 끝난 시점에 SO2를 첨가해서 발효를 멈추지만, 히포는 인위적인 조작을 꺼려서 자연에 맡기기 때문에 이런 부드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50년 전 상세르의 스타일이다."

<세계의 내추럴 와인, 준코 나카하마>




상세르에 위치한 세바스티앙 히포의 도멘




히포와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후, 반가운 마음을 안고 곧장 그의 '악메닌' 밭으로 함께 향했습니다.


히포의 밭은 전체 12헥타르 규모로 모두 비오디나믹입니다. 그의 뀌베 명이자 밭 이름인 '스케벨드라'와 '옥시니' 밭은 1950년 대부터, '악메닌' 밭은 1970년 대부터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포도가 될 싹(꽃순)이 올라오고 있다


작년(2021년) 냉해 피해는 괜찮았나요?


가지치기를 일부러 천천히 해서 새순이 늦게 돋도록 유도했어요. 다행히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비가 많이 온 터라 해로운 곰팡이가 많은 해였어요. 그나마 긍정적인 상황은 밭이 구릉지역에 있어 바람이 많이 부는 덕분에 곰팡이의 피해도 다른 지역에 비해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히포는 밭에서 돌 두 덩어리를 가져오더니 돌끼리 서로 문지른 후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돌에서 탄내가 나네요?


지금 보는 악메닌 밭은 석영 토양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이 돌을 비비면 부싯돌향이 나요. 와인에서 느껴지는 살리니떼(Salinite, 염도)도 이 돌에서 기인하죠. 다른 이야기지만 이 돌이 바로 선사시대 때 무기로 사용한 그 부싯돌(석영의 일종)이에요.






곳곳에 흙과 돌로 뒤덮여 있는 걸 보니 최근에 쟁기질을 했나 봐요?


맞아요. 사실 쟁기질은 보통 4~6월에 한 번 정도 하거나 아예 생략할 때도 있어요.

너무 자주 하면 토양이 산성화되어 좋지 않거든요. 땅이 하나의 유기체라고 가정할 때, 땅을 뒤집어엎게 되면 산화가 시작되고 미생물이 죽기 때문이죠. 쟁기질을 안 하면 몇 해 동안은 포도한테 가야 할 영양분이 다른 식물에게 가게 돼요. 초반에 포도 재배에 애를 먹은 이유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포도 나무의 뿌리는 깊어지고, 질소와 같은 토양 내 환경이 서로를 정화시키고 지켜주는 역할을 해요. 곳곳에 꽃이 피면 땅속에 있던 아조또(질소)가 표면으로 올라와 버려요. 이때 가벼운 쟁기질로 아조또를 땅 밑에 넣어주는 정도로 보면 돼요.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노란 꽃들은 인위적 비료가 아닌 토양 자체가 가진 천연 비료 덕에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땅이 선순환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세바스티앙 히포의 양조장

그의 양조장으로 향했습니다. 모든 와인메이커들이 당연히 양조장의 청결을 중요시하지만, 그중에서도 인상깊은 청결도를 자랑하는 히포의 양조장을 보면 그만의 세심한 성격이 드러납니다.






2023년에 한국 시장에 출시할 히포의 옥시니 (Auksinis) 19를 비롯해 그의 여러 뀌베들을 테이스팅했습니다. 와인의 생동감이 입안에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역시 히포'라는 코멘트와 함께 저마다 살아있는 에너지를 마신 기분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수입사가 방문 후 각자의 언어로 인사를 남겼습니다.






레이블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이 그림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20년 전 한 와인바에서 어떤 화가가 그려줬어요. 상세르의 전경을 수채화처럼 표현했죠. 각 뀌베별 뉘앙스를 색으로 저마다 다르게 나타냈답니다.





쏠레타스 (Sauletas) 2010-2018

모든 테이스팅을 마치니 히포가 쏠레타스 2010 빈티지부터 2018 빈티지까지 총 8종의 *버티컬 테이스팅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팀원 모두 신나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무려 버티컬 테이스팅이라니!


*버티컬 테이스팅

같은 생산자의 와인을 빈티지별로 동시에 시음하는 것



모든 빈티지를 시음하며 다같이 선호하는 빈티지와 취향을 공유했습니다. 와인 이야기만으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릅니다.



로컬 치즈도 함께 곁들였습니다.

사각뿔 형태의 치즈는 '풀리니 생 피에르(Pouligny Saint Pierre)', 아래 세 치즈는 왼쪽부터 '꿀로미에(Coulommiers)', '블루치즈(Bleu Cheese)', '미몰레트(Mimolette)'입니다.






어느덧 정오가 지나가고, 떠나야 할 시간. 그는 급하게 양조장으로 달려가더니, 매그넘 와인을 가져옵니다.



어떤 와인인가요?!


옥시니 (Auksinis) 2017 매그넘이에요. 다음 일정에서 만나게 될 생산자에게 전달해 주시겠어요? 그렇게 서로 전달하고 돌고 돌아 저에게도 누군가의 와인을 전달해 주세요! 그리고 그 와인과 함께 오늘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돌고 돌아 그와 함께 마실 와인은 어떤 와인일까요? 다음 만남이 기다려집니다.





Sebastien Riffault


1990년대 말부터 Sancerre(상세르) 지역의 와인이 부흥을 맞이하고 있을 때, 세계적 트렌드는 소비뇽블랑의 과실향에만 치우쳤고 때때로 떼루아의 특성이 잊혀지기도 했습니다. 세바스티앙 히포는 이러한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에 반대하며 본인만의 표현력을 가지고 한발 앞서나가는 와인메이커입니다.


현재 아버지 에띠엔느(Etienne)와 일을 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포도밭 전체와 경작 방식을 유기농으로 바꾸는 일이었고, 끊임없는 노력 끝에 소유한 모든 밭을 비오디나믹 방식으로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현재 약 5ha에서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 포도나무는 50년 이상의 수령이기도 합니다. 퀄리티를 위해서라면 전형적인 원리원칙마저 모두 거부하는 성격의 세바스티앙은 뀌베마다 귀부균의 비율을 조절하여 만들고 있으며, 그의 와인 중 까트홍(Quarterons)을 제외한 와인 악메닌(Akmenine), 옥시니(Auksinis), 스케벨드라(Skeveldra), 쏠레타스(Sauletas) 등은 2년 동안 탱크 숙성 및 발효를 거친 뒤, 1년 간 오래된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칩니다. 다경 와인과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생산자로, 히포는 많은 내추럴 와인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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