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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eritif Jan 06. 2023

Philippe Jambon, 필립 장봉

보졸레와 마꽁 사이, '샤슬라(Chasselas)' 지역에서 와인메이킹을 하고 있는 필립 장봉.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와인 메이커로서, '와인에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와 '완전히 숙성이 될 때까지 병입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두 가지 원칙을 고수합니다.


장봉의 밭에서 나온 와인들은 워낙 생산량이 적고 가격대가 높아 친구들의 도멘을 통해 만든 '윈 트랑슈' 시리즈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추럴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인물로 손꼽는 필립 장봉. 그를 만나고 왔습니다.



돼지 와인으로 알려진 필립 장봉의 '윈 트랑슈' 시리즈

‘돼지 와인’으로도 알려진 윈 트랑슈 시리즈는 필립 장봉이 양조 과정을 돕고 포도밭 경작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의 도멘에서 탄생한 와인입니다.

‘햄’을 뜻하는 장봉(Jambon)과 ‘조각, 햄을 자르는 단위’를 의미하는 트랑슈(Tranche)에서 주는 느낌을 살려 레이블의 익살스러운 돼지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보졸레와 마꽁 사이 샤슬라에 위치한 필립 장봉의 도멘






장봉에게 윈 트랑슈 시리즈를 상징하는 '돼지' 심볼이 있는 앞치마를 보여주니 사뭇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장봉은 멀리서 온 다경 팀에게 특별히 이벤트를 준비했다며, 바로 와인 한 병을 가져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는 것. 게스트를 위한 장봉만의 인사법입니다. 짧고 굵은 테이스팅 후,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만난 장봉은 좋은 소식이 있다며 양조장을 향해 앞섰습니다.





양조장을 리뉴얼했네요?


새로운 공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전보다 훨씬 쾌적해졌죠? 그동안 시설을 살짝 다듬었어요. 그전에 아시다시피 제 양조 환경이 쉬운 환경은 아니었는데, 이제 좀 더 양조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상단의 좌측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이 전부였던 그의 양조장이 두세 배로 커졌습니다. 1997년부터 메이킹을 이어오던 그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던 셈입니다. 채광은 잃지 않으면서도 4 중창과 15cm 두께 이상의 문을 설치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도록 고안했다고 합니다.



쾌적해진 양조장 한가운데 돼지 그림이 그려진 오크통이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신문지로 꽁꽁 싸맨 10여 병의 와인들이 놓여 있었죠. 장봉은 이 병들을 신문지로 꽁꽁 싸매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며 덧붙입니다.



이 와인들은 오늘 저희에게 소개해 주실 와인들인가요?


맞아요. 조금 전까지 신문지로 하나하나 감쌌답니다. 이 와인들을 모두 테이스팅하고 다 같이 제 포도밭에 다녀올 거예요. 그리고 다시 와서 테이스팅을 하고 서로 결과를 공유해 보죠!




블라인드에 진심인 이 사람.

두꺼운 안경 너머로 사뭇 진지한 눈빛과 달리 입가에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띤 장봉과 함께 모두가 일제히 진지하게 테이스팅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1차 테이스팅을 마치고 그의 밭으로 향했습니다. 머릿속 한편에는 방금 테이스팅한 와인들은 어떤 와인들이었을까에 대한 생각이 함께 맴돈 채.



이 지역 샤슬라(Chasselas)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로부터 왼쪽은 마꽁, 오른쪽은 보졸레예요. 지퍼처럼 길이 지그재그로 생겨서 눈으로 보면 두 개의 지역이 서로 얽히고 얽힌 것처럼 보이죠. 마꽁은 석회질 위주의 토양으로 샤르도네가 잘 자라고, 오른쪽은 화강암이 많아 가메가 잘 자라요. 그런데 제가 있는 이 지역은 두 지역의 매력이 골고루 섞여 있기 때문에 저에게는 이 지역이 가장 최고라고 생각해요.


곳곳에 냉해 피해가 심한데 장봉의 밭은 어땠나요?

잘 피해 갔어요. 저는 가지치기를 안 하고 계속 위로 뻗어 나가도록 자라게 두어요. 그 후에 늦게 자란 새 가지만 사용해요. 먼저 자라난 가지가 냉해 피해를 입더라도 아래에 새 가지가 있는 상태이니 수확에 피해가 가진 않아요. 정답은 없어요. 각자의 밭과 상황에 맞는 방법을 따르는 거죠.



장봉의 밭 곳곳에 핀 마가렛꽃


장봉의 가니베(Ganivets) 밭과 발타이(Batailles) 밭으로 향했습니다. 풀숲 사이 포도나무가 보일 듯 말 듯 숨어있었습니다.


1.5헥타르 규모의 밭이라... 매우 작은 규모인데, 밭 규모를 늘리고자 하는 마음도 있으세요?


없어요. 예전에 한 투자자가 와서 밭을 사줄 테니 와인을 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딱 현재의 규모가 맞다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제 자신을 알기 때문에 큰 욕심은 없어요.



화강토

장봉은 밭에서 돌 하나를 집어 보여줍니다. 이 돌은 화강토로 이루어져 있는데, 검은색 망간을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포도나무의 뿌리가 이 돌들을 만나며 철분을 흡수합니다.



양조장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된 블라인드. 서너 시간 동안 이어진 한참의 테이스팅 후, 하나씩 하나씩 뀌베가 공개되었습니다. 장봉 블랑 2003년부터 2013년 빈티지를 모두 섞는 등 전혀 예측하지 못한 그의 시도에 팀원 모두 허탈한 웃음과 감탄의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독한 실험 정신은 결국 장봉의 와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력한 개성과 힘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요? 그에게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아직 숙성 중인 와인은 볼라틸이 되게 튀어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볼라틸은 결국 꽃향기처럼 향기롭게 변해요. 이건 디캔터로도 해결할 수 없죠. 급하게 다가서면 안 돼요. 천천히 지켜본다면 분명 선물처럼 바뀌어 있을 거예요.


이전에 컨벤셔널 와인 업계에서 꽤 이름을 날린 소믈리에였잖아요. 그런데 현재 이렇게 내추럴 와인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추럴 와인은 매번 달라져서 좋아요. 사람처럼 그때마다 컨디션이 달라지죠.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좋은 포도와 문제가 없는 양조라면 우리는 기다리면 된다는 거예요.



긴 테이스팅의 대장정을 마친 후, 다 같이 장봉의 아내 까트린이 준비한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의 꽃을 피웠습니다. 식사가 마무리될 때쯤, 진짜 마지막이라며 하나의 와인을 더 가져왔습니다. 역시 신문지에 가린 채.


이번 블라인드 와인은 윈 트랑슈 맞죠? 

(눈썹을 들썩이며) 쉽게 맞추면 안 되는데…


장봉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신문지를 걷어냅니다. 이후 모두 속았다는 듯이 웃음만 나왔습니다.

장봉에게 방문하기 직전 노 꽁트롤(No Control)을 이끄는 뱅상 마리가 장봉에게 전해달라던 뱅상의 와인, '퓨전(Fusion) 21'이었던 것이죠.

역시나 예상할 수 없는 장봉의 재치 덕분에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했던 밤이었습니다. 앞으로의 장봉은 어떤 실험을 하게 되고 어떤 재치를 우리에게 보여줄까요? 이전에 그랬듯, 지금도 앞으로도 늘 그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Philippe Jambon

필립 장봉


내추럴 와인 생산자 중에서 전설급으로 불리고 있는 필립 장봉은 부르고뉴의 샤슬라(Chasselas) 지역에서 1997년에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로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나, 2003 년부터 부르고뉴 마꽁(Macon) 지역 포도밭을 조금씩 매입한 후 와인을 만들어 출시하였습니다.


실험 정신으로 가득한 그는 2004년 빈티지의 샤르도네와 2011년 빈티지의 가메를 블렌딩하여 와인을 만드는 등 와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맛'을 제외한 모든 기존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장봉은 '와인에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와 '완전히 숙성이 될 때까지 병입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철학을 고수하며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오랜 기간 나무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황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 오히려 양조에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의 그는 양조학과 출신으로 프랑스 내 훌륭한 정식 양조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 그 교육 방식을 따르고 있지 않는 최고의 내추럴 와인 생산자이자 다경와인을 대표하는 생산자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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