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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혜 Mar 28. 2016

때로는 무모함이 이긴다.

학교 수업 과제 중의 하나가 실재 회사와 컨택을 해서 그 회사의 운영, 인사, 마케팅 등 전반적인 사항들을 조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나만의 사업을 구상해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과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는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영국 땅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어느 회사를 어떻게 컨택하지? 친구들은 다들 아빠 회사, 삼촌 회사 등 저마다 아는 사람을 통해 미팅 약속을 잡고 과제를 시작했지만 나는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벌써 미팅을 마치고 자기의 사업구상에 들어가는 친구들이 한둘씩 생겼다. 나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 여전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주 주말 프랑스어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 몇 명과 런던으로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다. 과제가 걱정되었지만 이미 한참 전부터 예매를 해 놓았던 공연이었고 잠시 과제 걱정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런던에 도착해서 피카딜리 서커스를 걸어가던 중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 Mason, 영국의 대표적인 티브랜드) 본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저거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Fortnum and Mason

포트넘 앤 메이슨은 영국의 대표적인 티브랜드로 그 본사 건물은 층층마다 초콜릿, 각종 티, 잼, 햄퍼에서부터 시작해서 인테리어 소품까지 다양한 상품이 전시가 되어 있는 마치 하나의 백화점 같았고, 영국의 중산층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브랜드였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전화를 걸어 미팅을 잡아야 하는 수많은 고객들의 연락처가 적혀있는 리스트에서 제일 위에 있는 최고 VIP 고객에게 무작정 전화를 거는 마음이 그랬을까.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회사 홈페이지에서 홍보부쯤으로 보이는 부서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이메일을 보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그 주 일요일에 카메라와 노트를 챙겨 이번엔 혼자 런던행 기차를 탔다. 빅토리아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포트넘 앤 메이슨 건물로 가서 매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그 회사의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품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사진을 찍고 어떤 고객들이 주로 그 상품을 사가는지를 살펴보는 등 내 나름대로의 시장조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날 보고 느낀 점들을 잊어버릴까 봐 흔들리는 기차에서 멀미가 나는 것을 참아가며 부지런히 노트를 정리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그날 찍었던 사진을 인화해서 색색깔의 종이에 꾸며서 붙이고 설명도 곁들여서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우체국에 가서 본사로 그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며칠이 흘렀다. 쉬는 시간에 학교 캔틴에서 언제나처럼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반 친구인 엘리엇이 내 전화기를 들고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Chloe, you got it!”


이라고 외치는 엘리엇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방금 나 대신 전화를 받았는데 포트넘 앤 메이슨의 인사담당자 비서가 나와 미팅 약속을 잡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전화를 했다. 그 비서는 인사담당자와 미팅이 가능한 시간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나는 비로소 미팅을 잡는 데 성공했다. 


약속한 날짜에 본사 사무실로가 리셉션에서 인사담당자와 미팅 약속을 했다고 설명하니 사무실 안쪽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기대에 부풀어 잠시 기다린 후 드디어 그 인사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악수를 하고 명 함을 주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다. 내 생에 첫 비즈니스 미팅이었다. 내가 보낸 포트폴리오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하시며 이번 과제뿐만 아니라 내가 영국에 있는 동안 필요한 도움을 최대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거의 두 시간에 걸친 미팅 내내 내가 이해하기 쉽게 비즈니스 개념을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해주셨고 그 다음날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 보낸다며 과제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여러 가지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시기까지 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부모님, 친구, 선생님 등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순전히 내 힘으로 나의 지원군을 만든 소중한 경험이었다.  






[법과 영어 연구소 아우디오 랩]

https://www.instagram.com/audiolab.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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