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지내는 동안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모두들 잘해주셨지만 지금까지도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손으로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을 정도로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분들이 있다. 바로 Jan & Rob 그리고 Prilla & Richard 부부이다. 이 분들은 쉽게 말하자면 동네 이웃 주민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특히 Jan 아주머니의 엄마인 Betsy 할머니는 정말 소녀 같은 분이셨다. 종종 나에게 전화를 해서
“Chloe, I’m gonna make some strawberry crumble this Thursday. Will you come over?”
하고 물으시고는 나를 초대해주신 당일에는 집 앞 큰길까지 나와서 날 기다렸다가 같이 집으로 데리고 가고는 하셨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집에 들어서면 옅은 핑크색 벽지와 카펫, 레이스로 짠 테이블보, 꽃무늬가 수놓아진 이불이 포개져있는 침대, 벽에 걸어둔 손수 만든 손녀의 원피스 등등 모든 것이 따뜻하고 아늑했다. Betsy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크럼블은 정말 세상에서 최고로 달콤하고 맛있었다. 차를 마시며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외교부에서 일을 시작한 뒤에 유럽 출장 끝에 영국에 갈 기회가 있어 Lewes를 다시 찾았다. 며칠간 Jan 아주머니와 Rob 아저씨의 집에서 지내면서 Lewes 곳곳을 산책하며 옛날 얘기도 하고, 시내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시외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했다. 나에게 제2의 고향 같은 영국에 다시 오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는데, 내가 좋아하는 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꿈만 같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Betsy 할머니가 나를 꼭 안아주시며 “Chloe, I can’t go to Korea. You should come back.”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바로 다음 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번씩 Betsy 할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헤어지면서 내게 하셨던 그 말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Jan 아주머니, Rob 아저씨, Prilla 아주머니, Richard 아저씨 모두 각자 하던 일에서 은퇴를 하고 매년 르완다에 가서 봉사에 전념하고 계신다. 특히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 처음엔 규모가 작았지만 점점 이 분들의 선행이 알려지게 되면서 후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도 계속 이메일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매년 르완다에 가서 어떤 일을 했는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주시곤 했다. Rob 아저씨는 civil engineer 셨는데, 한 번은 르완다에서 에이즈로 아빠를 잃은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나무로 바이킹 배를 만들었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배를 만든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실제로 아이들이 탈 수 있는 커다란 바이킹을 만든 것이었다! 또 물이 귀해 멀리까지 물을 길러 가야 하는 걸 보고, 빗물을 끌어다 저장해서 생활용 수로 쓸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관개시설 같은 것을 만들 기획을 하셨다. 매년 조금씩 그 사업이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알려주셨고 종종 사진도 보내주셨다. Rob 아저씨가 르완다에 봉사활동을 하러 몇 번 가본 뒤 드디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며 크게 기뻐하며 내게 메일을 보내셨던 게 기억이 난다.
의사로 오랫동안 일을 하셨던 Richard 아저씨는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약을 보급해주고,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시는 등 여러 가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신다. 매년 더운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사진 속의 이분들의 얼굴엔 항상 웃음이 가득하다. 직접 만날 때에는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또 영국인 특유의 유머도 잊지 않으시는 멋진 분들이시다. 내가 이분들을 떠올릴 때마다 무엇보다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의사로서 그리고 civil engineer로서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계시다는 것이다. 나도 이다음에 꼭 한번 이분들과 함께 르완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Rob 아저씨와 Richard 아저씨한테서 배운 것처럼, 나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 나만 성공하기보다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보람된 일이 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나 자신부터 굳건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고 싶은 또 다른 동기가 생긴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인 것 같다. 소중한 인연이 모여 내 인생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지.
[법과 영어 연구소 아우디오 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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