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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혜 Mar 29. 2016

졸업시험 통과 후 면접만 스무 번!?

정말이지 매일매일 모든 수업시간이 긴장되고 challenging 했던 2년간의 힘든 통역대학원 과정이 거의 끝나고 드디어 졸업시험 일자가 다가왔다. 이론시험이 아닌 실기시험이라 시험 당일에 감기라도 걸리면 동시통역 시험은 망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한 달쯤 전부터는 컨디션 조절에도 굉장히 신경을 썼다. 동시통역 시험을 보는 날 다른 학과 학생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각자 연습을 하는 바람에 여러 언어가 마구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오히려 더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연설문을 접고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그때 한 동기 오빠가 “다혜야,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하면 좋을까?”하며 들고 있던 연설문을 내게 보여주었다. 동기 오빠가 가리킨 문장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인용구였다. 연설문에는 우리나라의 속담이나 사자성어가 인용되는 경우가 많아 그 의미를 영어로 옮길 때 많은 애를 먹는다. 나는 “이런 거 시험에 안 나와” 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통역 부스에 들어가 준비를 했다. 한-영 동시통역은 연설문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수 없이 하자는 생각으로 차분히 통역을 해나갔다. 그러다 한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거짓말처럼 아까 동기 오빠가 보여주었던 그 문장이 나온 것이었다! 이런... 아까 잠깐 생각이라도 해볼걸. 그 오빠는 이 문장이 시험에 나올 줄 어떻게 알았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1~2초가 지나가고 말았다. 동시통역을 하는 도중에 1~2초를 침묵하는 것은 굉장히 긴 pause이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A brief encounter leads to a long-lasting relationship...”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다행히 큰 실수 없이 넘긴 것 같다. 사실 너무 긴장한 상태라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계속 무언가 말을 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와서 먼저 시험을 보고 기다리고 있던 동기들이 있는 곳으로 갔지만 다들 착잡한 심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나 역시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오히려 시험을 보기 전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순차통역 시험 또한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 특히 커다란 강의실에 지도교수님과 원어민 교수님이 앉아 계시고, 그 앞에 혼자 앉아서 한국어 텍스트를 들으며 노트 테이킹을 하고 영어로 통역을 하는 시험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손이 떨리는 긴장되는 세팅이었다. 노트 테이킹을 하는 동안 내 손이 떨리는 것을 눈으로 보며 정말 힘겹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부단히 도 애썼던 게 생각난다. 다행히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최선을 다해서 통역했고, 마지막에 “Thank you”라고 말하고 펜을 내려놓는 순간 내 눈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첫 올림픽 출전 경기에서 경기가 끝나고 나서 결과도 확인하기 전에 눈물을 흘렸을 때와 같은 심정이었을까. 그동안 이날만을 위해서 매일매일 더 이상 열심히 하라고 해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후회 없이 연습했고, 그 노력들을 시험시간에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동안의 힘든 시간들이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후련함에 흘렀던 눈물이었을 것이다.  


결과가 발표되던 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1초에 한 번씩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댔다. 동기들은 한둘씩 합격 또는 불합격 소식을 전해왔는데 내 이메일 계정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나는 한 시간이 지나도 이메일을 받지 못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분명히 시험 결과를 이메일로 발송했다고 하는데 나는 받지 못해서 초조함이 더해갔다. 알고 보니 스팸 메일함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클릭했고 전과목 pass 임을 확인하는 순간 내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나는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했고 

“엄마, 나 합격했어”


라고 말하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그 대학원 과정 2년만큼 매일매일 성실하게 공부하고 연습하며 내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합격을 확인한 후 가슴이 벅차도록 뿌듯하고 나 자신이 대견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였다. 이제 처음으로 취업이라는 걸 해야 하는 시간이 왔는데, 나는 이력서를 넣는 곳마다 서류는 쉽게 통과되었는데 번역시험, 통역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꼭 최종면접 단계에서 불합격되었다. 차라리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더라면 번역시험과 통역 시험을 준비하고 긴장되는 시험을 보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 소모는 덜 했을 텐데 거의 최종까지는 항상 갔기 때문에 매번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쳐야만 했다. 동기들은 거의 다 취업을 했을 2월이 한참 지난 때에도 나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때쯤 되니 다들 취업을 해서 나와 함께 스터디를 해줄 동기도 없었다. 졸업시험만 통과하면 모든 게 술술 잘 풀리고 멋진 통역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처음에는 관심 있는 회사나 기관만 골라서 지원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정부기관, 일반 기업, 각종 연구소, 학교를 가리지 않고 분야도 막론하고 통역사 채용공고가 나는 곳은 무조건 다 이력서를 넣고 시험을 보러 다녔다.


한 정부기관 면접에서 “상사가 불합리한 지시를 하면 어떻게 대처하겠냐”는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태어나서 면접이라는 걸 처음 본 나는 그 질문이 나의 자세를 평가하기 위한 것임을 눈치챘을 리 없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상사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취지로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다. 모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80: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최종면접까지 갔는데, 면접에서 그 전날 본 TV 프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정말 용기 내서“I have a dream”이라는 노래를 불러 어필해보려 했지만 결국 떨어지고 친구들에게 놀림거리만 되었던 적도 있다. 대학원 재학 시절 제주도에서 열린 ASEM 재무장관회의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니 기획재정부 시험은 합격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어리석게 생각했다가 번역시험에서 떨어져서 펑펑 울었던 일 등등 면접과 관련해서 겪었던 창피한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 법무부 국제형사과도 있었다. 거의 스무 번째 면접이어서 사실 심리적으로 많이 지쳐있던 때였고, 내가 그 전에 전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분야여서 지원하지 말까 하고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더 이상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또 예상했듯이 최종면접 단계까지 갔다. 면접위원은 총 다섯 분이었고 지원자들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그룹으로 들어갔다. 지원자 각자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 난 뒤 이제부터는 주어진 질문에 영어로 대답을 해보라고 했다.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뭔지, 외국에서 살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얘기해 보라는 등 별로 어려운 주제는 아니어서 나보다 먼저 대답한 다른 지원자들은 다들 자신 있게 각자의 이야기를 영어로 했다. 내 차례가 왔다. 크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한 면접위원이 내게는


“인간이 왜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다. 나는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한국어를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인간이 왜 범죄를 저지르냐고? 세상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어떡하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러다 또 떨어지겠다... 또 망했구나... 그 몇 초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통역사들은 다른 사람의 말(source language)을 다른 언어(target language)로 옮기는데 익숙하고, 그 과정에서 통역사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화자의 말과 의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그 의미를 정확히 화자의 의도대로 전달하는 훈련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창의적인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물론 잘하는 통역사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TV 대담프로를 보더라도, 한 사람이 이런 주장을 펼치면 “아 그렇구나”하고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이 반대 주장을 펼치면 나는 이번에도 “아 저 분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게 끝이다. 그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쓴 칼럼을 한국어 또는 영어로 읽어주고 다른 언어로 통역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데, 내 생각을 말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내... 생각? 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통역사한테 왜 이런 걸 시키는 거지? 하며 속상해하던 찰나 며칠 전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번뜩 생각이 났다. 정확히 그 부족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원주민들은 욕심이 없어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다. 남자들이 사냥을 해오면 부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이 나눠서 먹고, 그중 한 사람이 삐쳐있을 때에는 다 같이 몰려가서 간지럼을 태워 달래던 모습을 생각해냈다. 그런 부족민들 사이에서 범죄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었다. 과연 그 이야기가 질문에 적합한 사례일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부족민들의 성향에 대해 간단히 영어로 설명한 다음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바로 남의 것을 탐내는 greed(탐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내 생각(?)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이미 이번 면접도 떨어진 거라고 체념한 상태여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쨌든 창피당하지 않고 무사히 면접이 끝난걸 다행으로 여기고 별 기대 없이 집으로 왔다. 합격자 발표날이 다가왔고 결과는 역시나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거의 스무 곳 가까이 시험을 보고 최종단계에서 떨어진 터라 이제는 슬프지도 않았다. 공고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며 하루하루 인터넷만 바라보며 지내던 중 전화를 한통 받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라는 곳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법무부 국제형사과 면접시험에서 내게 문제의 그 질문을 하셨던 면접위원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국제형사사법센터 센터장님이셨던 것이었다. 그 시험에서 1등 한 지원자가 법무부 국제형사과 에디터가 되었고, 내가 그 시험에서 2등을 해서 그 센터장님께서 나를 데려오고 싶어 하셨던 것이었다. 나는 형사정책, 형법, 사회학, 범죄학 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은 그 센터장님과 당시 형사정책연구원에 파견 나와 계셨던 고등검찰청 소속 검사님, 그리고 형법 박사님 한 분이 보셨다. 거기서도 간단한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간 후 과제가 주어졌다. 한국 검사들의 청렴도 개선방안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다음날 바로 합격했다는 전화가 왔고 졸업시험 후 거의 3개월 만에야 드디어 job을 갖게 되었고 통역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법과 영어 연구소 아우디오 랩]

https://www.instagram.com/audiolab.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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