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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Jun 08. 2024

지갑을 잃어버렸다.

최근 몇 주 동안 조금씩 상태가 안 좋아졌다. 달력을 보니 3주 정도 지났다. 이번 주는 기회만 되면 낮잠을 잤다. 일터에서도, 합창단에서도 스트레스가 많은 요즘이었다. 월요일에는 합창단에서 돌아와 낮잠을 잤다. 월요일은 근무일이 아니다.  6월 6일 현충일이었던 어제도 낮잠을 잤다. 공휴일이었던 덕분에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렇게 잠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의욕적으로 하고 싶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인 것이 화근이었다.


퇴근은 했지만 바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우선 쉬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하염없이 릴스를 넘기다가 마트에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 전부터 릴스에서 눈에 들어온 또띠아 와퍼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장바구니와 지갑, 핸드폰을 챙겨 마트로 향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동네 마트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 마트들은 대부분 자정에 문을 닫았고, 심지어 24시 마트도 있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동네는 자정도 되지 않은 시간에 마트가 문을 닫아 버린다. 


주변에 열어있는 마트가 없는지 검색해 보기 위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마트 쓱 배송을 시킬까 하는 생각으로 이마트 앱을 들여다보다가, 조금 멀리에 있는 다른 마트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걸어가며 들여다본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지갑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내가 오갔던 길을 되돌아가보았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집에서 들고 나오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집에서도 지갑은 찾을 수 없었다. 지갑을 나중에 찾게 되더라도 분실신고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의 체크카드에서는 어차피 빠져나갈 돈이 얼마 없지만, 내가 일하는 법인의 체크카드도 지갑에 들어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상담사와 통화를 하는데, 급한 마음에 답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상담사의 인내심 덕분에 다행히 분실신고를 마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걸어갔던 길을 다시 살펴보러 나갔다. 분실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샅샅이 거리를 뒤져볼 수 있었다. 주차된 차의 아랫부분과 하수구까지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지갑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편의성을 추구하느라 카드 몇 장만 들어가는 얇은 카드 지갑을 들고 다녔다. 이런 상황이 생기고 나니 불편하더라도 제대로 된 지갑을 들고 다니는 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기력이 없는 몸을 애써 이끌고 나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속상했다. 왜 길을 걸어가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아서는, 상태가 좋지 않으면 가만히 누워있지 왜 밖에 나가서는, 아니면 차라리 낮잠이나 잘 것이지 왜 의욕을 부려서는 이렇게 안 좋은 상황을 만드는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이어졌다. 돌이 버릴 것 같았는데, 울어야 할지, 이미 분실신고를 했으니 보내주어야 할지, 속은 메스꺼운데 뭐라도 먹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회로에 전원은 들어와 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이 머릿속이 뿌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할 전해질이 모두 극성을 잃은 느낌이다. 늦은 시간 짝꿍이 집에 오고 그제야 눈물이 났다. 짝꿍은 자기가 한 번 더 돌아보겠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섰다. 나는 좋지 않은 상태로 문 밖을 나서는 게 괜히 꺼려져 집에서 짝꿍을 기다렸다. 짝꿍도 샅샅이 거리를 살폈지만 내 지갑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미 잃어버린 지갑은 보내주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점을 안다. 하지만 나는 자꾸 자책하는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그 자책을 막아보고자 액땜을 했다는 식으로 이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고도 한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따라 내가 쓰는 방법들이 도통 통하지가 않는다. 임시방편으로 먹는 해열진통제도, 내가 좋아하는 향의 아로마오일도, 내 기분이 나아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보통 짝꿍과의 포옹은 만방통치약이지만 오늘따라 아무런 감흥이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이 순간이, 이 상태가 지나가기를 웅크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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