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은 이유를 몰랐다. 대학원에 다니던 어느 날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상에 앉아 있어도 해야 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캠퍼스를 하염없이 돌아다니다가 연구실로 돌아오곤 했다. 내가 의심했던 병은 대학교 1학년에 앓았던 갑상선 항진증의 재발이었다. 호르몬제를 6개월간 복용하고 완치되기는 했지만, 재발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10년가량이나 지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증상이 그때와 비슷했다.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해보아도, 전체적인 검사를 해보아도 뭐가 나오는 게 없었다. 내 진료를 보았던 의사 선생님은 몇 차례의 검사에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자,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최근에 갑자기 화가 솟구칠 때가 있는지 물었다. 마침 얼마 전, 꿈에서 엄청난 분노를 느끼면서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꿈에서의 분노는 잠이 깬 다음에도 생생하게 이어졌고, 하루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내 답변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몸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벼운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필요할 때 한 알씩 먹으라고 했다.
당시에는 내 상태가 정신과에 방문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진료를 봤던 의사 선생님이 정신과 방문을 권하지도 않았고, 정신과에 방문하는 건 훨씬 더 증상이 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처방받은 약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정신과가 아닌 곳에서도 처방할 수 있는 가벼운 수준의 약물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약을 먹은 다음 날, 약을 먹지 않으면 기존의 증상이 더 심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가, 먹지 않았다가, 그래도 내 힘으로 삶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지만 무얼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구덩이가 너무 깊은 나머지 내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조금만 기어오르려고 해도 금세 힘이 풀려버렸다. 제자리걸음을 한참하고 나서야,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정신과적 소견을 들은 이후 실제로 정신과를 방문하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맞는 약을 찾기까지
여러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걱정은 ‘의사가 나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였다. 학교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글을 올려 병원을 추천받았다. 학교 근처는 피하고 싶었다. 혹시라도 조교를 맡았던 학생을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추천받은 병원은 1시간 거리에, 가본 적이 없는 동네에 있었다. 예민한 기질로 새로운 장소에 가기 어려워하는 편이라, 잔뜩 긴장됐다. 병원을 추천받은 지 3개월이 지나서야 큰 용기를 내고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와 면담하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의사와 면담하며 복용할 약을 정했다. 맞는 약을 찾기까지는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내게 맞는 약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맞는 약을 찾았지만,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5~6가지 약을 시도해 보았는데, 유난히 예민한 기질이어서 아주 소량을 복용해도 부작용이 바로 그리고 크게 나타났다. 단순히 약이 효과가 없어서 감정 조절에 도움이 안 되기도 했고, 두근거리거나 속이 메스껍고 불편한 증상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약은 복용 후 오히려 기분이 너무나도 안 좋아졌고, 기분이 마구 날뛰었다. 정말 무슨 일을 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리로 된 20만 원짜리 러쉬 향수병을 깨부수는 일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세로토닌 계열의 약을 먹자, 온몸에 비 오듯 땀이 났다. 의사 선생님은 세로토닌 중독에 해당하는 증상이라고 했다.
정신과 약을 한 번에 모아서 먹으면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다가 멈춰버리거나, 몸에 탈수가 일어나거나, 어디에 머리를 박아서 죽거나. 이런 험난한 과정을 겪다 보니 맞는 약을 찾지 못하게 될까 봐, 평생 이렇게 나아지지 못한 채로 살아야 할까 봐 두려웠다. 그렇지만 의사 선생님은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약이 많다며 나를 격려해 줬다. 다행히도 결국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삶에 일어난 변화
병원을 처음으로 방문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이제는 2~3개월 간격으로 약을 받아온다. 약이 남아있어도 유난히 상태가 좋지 않으면 병원 상담을 잡는다. 상담 예약일을 기다리다 보면 힘든 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힘든 순간을 잘 버텨냈더라도, 의사를 찾아가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고한다. 의사 선생님이 내 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여 나의 치료 과정에 의사 선생님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지 않았던 순간을 공식화한다.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얼마 전 병원을 다녀왔을 때 간단한 검사 했다.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은 지 1년 정도 지났으니, 처음 왔을 때에 비해서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 확인 해 보기 위함이다. 아직 검사 결과를 듣지 못했지만, 검사지에서 두 가지 질문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눈물이 많아졌다’는 질문과 ‘든든하다’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 설문하다 보면 비슷한 어조의 질문이 무작위로 다시 등장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두 질문에는 일관되게 동일한 답을 했다.
얼핏 보면 서로 반대되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든든하다’는 답변을 할 때에는 나의 짝꿍이 떠올랐다. 내가 힘들고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짝꿍에게 ‘쓰담쓰담’ 해달라고 한다. 옆에 있으면 물리적으로 껴안고 보듬보듬해준다. 통화를 할 때에는 말로 ‘쓰담쓰담’이라고 해준다. 직접 쓰다듬지 않아도 말에서 전달되는 위안이 있다.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짝꿍은 ‘다 괜찮아’라고 해준다. 짝꿍이 옆에서 계속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이제는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정신과 약을 먹기 전에는 머릿속에 구름이 끼어있는 기분이었다. 내 기분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멍했다. 울적하다고 느낄 때가 있기는 했어도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앉아 밤새 드라마를 볼 때도 있었다. 눈물도 오히려 잘 나오지 않았다. 분명 기분이 좋지 않고 울고 싶은 마음은 드는데,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요즘에는 상태가 좋지 않으면 곧잘 운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면서 내 신체도 감정에 반응하게 된 듯하다. 그래서 얼핏 보면 ‘눈물이 많아졌다’는 부정적인 신호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 신호로 보인다.
병원에 다닌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병원에 다니기 전 몇 년은 기억이 흐릿하다.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고, 떠오른다고 해도 연도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기억이 생생하다. 단순히 더 최근의 기억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안개가 조금씩 걷힌 기분이다. 지금은 반드시 우울증이 낫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대로도 살만하기 때문이겠지만,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때마다 잘 견뎌낸 경험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