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다해 Jul 04. 2024

글쓰기 공백기

오랜만에 여유롭게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집에 와서는 수채물감을 가지고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요즘 그림 수업을 듣고 있다. 유난히 미술을 어려워했던 나에게는 그림을 요령껏 그려내는 일이 오랜 숙원이었다.


처음에는 펜화로 시작해서, 색연필을 거쳐 지금은 수채를 배우고 있다. 어차피 무언가 대단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은 아니고, 가볍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도구들을 익히고 있다.


그렇게 다루기 어려웠던 수채물감이 이제는 다룰만하게 느껴진다. 물에 풀어지는 안료를 물에 개어서 종이 위에 얹으면, 물이 증발되면 종이에 안료가 남는다는 설명이 무척이나 와닿았다. 그렇게 안료를 종이 위에 안착시킨다는 기분으로 붓을 다루니 수채물감을 다루기 훨씬 수월해졌다.


이번 그림 수업의 숙제는 같은 색을 세 단계로 여리게 칠하기였다. 처음에는 붓에 물감을 한가득 묻혀 진하게 색을 칠했다. 그러다가 점차 물을 많이 타서 여리게 칠하는 법을 터득했다. 아무리 물이 많아도 종이에는 색이 나타났다. 완급조절이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는 색깔이 불명한 크레파스로 빈틈없이 종이를 채워야 흡족했다. 이제는 수체물감의 투명한 매력을 알게 된 기분이다.


수채화 종이는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물감의 안료가 종이에 안착하려면 종이가 울퉁불퉁한 게 좋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종이 위에 고운 입자의 안료를 얹고 나면 색연필이 더 잘 발색된다. 고운 입자의 안료가 미세한 마찰을 많이 만들어내어 색연필이 더 곱게 긁어내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를 사포로 문지르는 느낌이랄까. 의외의 곳에서 물리원리를 발견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온전히 내가 그리려는 무언가의 형태와 색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느 물감과 어느 물감을 섞어야  내가 원하는 색이 나올지에 골몰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런 몰입의 시간은 나의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신체 건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연필을 쥐고 책상에 앉아 집중하다 보면 으레 자연스레 등과 어깨가 구부러지고 책상으로 머리를 파묻게 되듯이,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이다.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에는 글을 열심히 썼다. 시험기간에는 교과서가 아닌 텍스트는 모두 재미있듯이, 글쓰기 숙제를 하려고 앉으면 왜 이렇게 다른 주제로 글을 쓰는 일이 재미나게 느껴지던지! 글쓰기 수업이 끝나자 글을 쓰는 일도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가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오랜 숙원을 이루는데 의의를 두고, 최소한 수업을 듣는 기간 동안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아, 그동안 글쓰기는 잠시 미뤄두고 :-)

작가의 이전글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