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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Jul 05. 2024

머리를 잘랐다.

월요일 오후, 머리를 잘랐다. 원래는 집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는데, 작년에 이사를 가면서 미용실이 멀어졌다. 몇 년 동안 같은 곳에서 머리를 잘랐더니, 계절에 따라서 길이감도 알맞게 맞춰 주신다. 여름에는 머리를 짧게 쳐올려서 좀 더 시원하게, 겨울에는 머리를 좀 더 남겨서 따뜻하게 말이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편도 아니기에,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실이 편하다. 다행히도 매주 근처에 갈 일이 있는 덕분에, 미용실에 가는 일이 아주 불편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집 바로 앞에 있을 때만큼 머리를 자주 자르지 못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미용실에 방문했다. 이발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만큼 짧은 머리이기에 한 달에 한 번은 미용실에 가야 한다. 달력을 보니 거의 두 달 만에 방문했다. 기온이 높으면 추울 때에 비해 머리가 금방금방 자라난다. 안 그래도 더운 여름날, 머리를 두 달 동안 안 잘랐더니 얼마나 답답하던지! 미용사 선생님은 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시원하게 쳐야겠네’라며 쓱싹쓱싹 머리를 잘라주셨다. 시원하게 잘린 머리를 보며 흡족했고, 더운 여름 건강히 지내시라며 덕담을 나누고는 미용실을 나섰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에는 합창단 연습이 있다. 어린이 합창단으로 시작한 합창과의 인연은 다양한 합창단으로 이어져 구립여성합창단에 정착했다. 연습시간을 보면 알겠지만 단원들은 대부분 가정주부이거나 일을 하더라도 오전 시간을 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이로만 따지면 나는 단원들보다는 단원들 자녀들과 더 가깝다. 그러니 내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한동안은 들으리라, 각오는 했다. 잔소리하는 그렇지만 말대꾸는 내 성질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가 서른 명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노래를 하기 위해 감수하기로 했다.


단원들은 왜 화장을 하지 않는지, 왜 머리를 기르지 않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어떤 이는 ‘무례한 줄 알지만은’이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어지간히도 할 말이 없었나 보다 싶으면서도, 무례한 줄 알면 안 하면 되는 것을 굳이 해야 했을까 싶어 불쾌했다. 단원들에게는 한 번의 물음이었지만 나에게는 매 번 같은 질문에 매 번 같은 대답을 해야 했다. 그런 질문이 불쾌하다고 내색하기보다는 그냥 웃어 보이려고 했다. 그래도 관심의 표현이겠거니 생각하며, 그 나이의 여성들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겠거니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게 일 년이 넘어가니 단원들은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궁금한 사람들은 다들 한 번 즈음 물어봤거니와, 일 년 동안 내가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꾸미는 일에 그렇게 품을 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파악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여전히 나의 머리에 간섭했다. ‘머리 잘랐네?’ 수준의 관심이 아닌 ‘머리 좀 기르지?’라는 간섭. 유난히 나의 머리에 관심이 많은 단원이다. 이번에도 웃어넘기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물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솔직히 내가 머리를 기르든지 말든지 남이사.


몇 년 전부터 명절이 다가오면 일명 ‘잔소리 메뉴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장하고, 뉴스 기사로도 소개되고 있다. 친척 어르신들의 참견이 오죽 스트레스였으면 ‘잔소리 메뉴판’이 만들어졌을까. 이번 설 명절을 앞두고 화제가 된 ‘잔소리 메뉴판’에는 ‘좀 꾸미고 다녀봐!’와 ‘결혼 슬슬 해야지?’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각각 3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쓰여있다. ‘머리가 좀 휑해졌다?’는 말은 100만 원이다. 스트레스에 따라 가격이 매겨진 듯하다. 부가세 10%는 별도이고 현금이나 계좌이체만 가능하다. 2만 원당 치킨 기프티콘 1장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유머까지 담았다. 내가 합창단에 입단해서 들었던 머리나 화장 등 외모와 관련된 지적과 결혼에 관한 물음을 모두 합치면 부가세를 포함하여 천만 원은 거뜬하겠다. 


이런 현상은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유난은 아니다.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속담은 자신과 관계도 없는 일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짓을 나무라는 말이다. 이런 속담이 전해 내려져오는 것을 보면, 구하지 않은 조언을 조심하는 태도는 우리의 선조님들도 당부하셨던 일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제 당당히 합창단에 메뉴판을 들고 가볼까 싶다. 앞으로 나에게 알건 모르건 무례를 저지르면 조용히 메뉴판을 내밀어야지. 그렇게 차곡차곡 모으면 내 집 마련은 금방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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