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한 고등학교에 물리학 특강을 다녀왔다. 이 날은 학교에서 몇 가지 특강이 동시에 열렸고, 학생들은 각자 원하는 주제를 선택해서 강의를 들었다. 강사 대기실에 가장 먼저 도착했는데, 그날 열리는 특강과 강사 목록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일로 몇 번 마주쳤는데, 정작 대화는 많이 해보지 못한 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특강이 끝나고 잠시 카페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다. 대화가 그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오후 4시에 시작된 대화는 카페 마감 시간인 7시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이어졌고, 식당 마감인 9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깊이 있고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대학생 때까지는 친한 친구들을 만나 인생에 대한 고민 등을 곧잘 나누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점차 각자 삶의 궤적이 달라지기도 했고, 변리사 시험 준비나 대학원 입학 등 몇 년 간 사회와 단절된 채로 살아오다 보니 점차 그런 속 깊은 대화를 할 기회가 없어졌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고민의 많은 부분이 해소되기도 했고, 또 고민거리가 생기더라도 주로 남자친구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렇기에 남자친구가 아닌 존재와 그렇게 오랫동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커리어, 연애, 인생살이 등 참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민이라는 아이는 참 이상하다. 어떤 주제가 고민일 때에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이유만 잔뜩 보인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말로 표현하면 사실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막상 고민을 안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정신적인 고통과 막막함을 안겨준다. 그런 고민의 과정이 무색하게도 고민의 해결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던 시간과 다르게 나도 모르게 문제가 해결되어 있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샌가 문제가 해결되어 버려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던 과거가 아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인생에서 가진 여러 고민 중에 어떤 문제는 여전히 고민 중인 것도 있고, 어떤 문제는 일정 부분 해소되었거나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간 문제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와중에도 공통된 점은 내 마음이 여러모로 편해졌다는 점이다. 인생에 대한 고민은 어차피 삶이 이어지는 이상 계속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20대나 30대나 50대가 되어서도 한평생 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20대에는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막막했고, 30대가 되어보니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또 길이 생긴다는 점을 경험으로 터득했다. 그렇기에 40대, 50대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이제는 와닿는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처럼 능력을 한정 짓는 용도로 쓰는 ‘때’가 아니라, 어떤 문제는 아무리 고민하고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다가 어느 순간 해결되는 시기가 온다는 의미로서 말이다. 내 인생에 내가 원하는, 나랑 잘 맞는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에 결혼을 앞둔 언니들이 해준 이야기이다. ‘적당한 때가 올 거야’ 그 말이 당시에는 와닿지 않았지만, 내게 맞는 인연을 만나고 나니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인생의 동반자라는 고민의 한 갈래에서 인생 선배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경험해보고 나니 다른 고민에 있어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지금 당장 지지부진해 보여도 적당한 때가 찾아온다는 그런 마음,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꼭 맞지 않더라도 또 다른 길이 열릴 거라는 그런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적당한 때에는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여러 일이나 시기가 아다리가 맞아 들어가서 나도 모르게 휘리릭 문제가 해결되어 있기도 한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잃으면 안 되겠지만, 또 그 방향으로 바로 풀리지 않더라도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배웠다.
아무래도 상대방보다는 내가 몇 년 더 살았고, 몇 년 더 고민해 봤기 때문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깨달았다. 옛날에 나에게 귀한 조언을 해주고, 나에게 귀한 관심을 보여준 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어떻게 해도 보답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 마음을 내가 품고 잘 살아가는 수밖에. 그렇지만 그렇게 나만을 위한 삶으로는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에게 내 인생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니, 나에게 귀한 마음을 전해주었던 사람들에게 직접 보답을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이에게 내가 받았던 귀한 마음을 전해줄 수 있었다. 직접 호혜가 아닌 간접 호혜이자 베풂의 선순환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꼭 등가교환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쌀 500g을 받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채소 1kg으로 전해주기도 하고, 또 내가 생각한 가치가 물 1kg라도 상대방이 받는 가치는 또 다를 수 있다.
상대방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기가 최근에 고민하던 정말 많은 부분이 해소되었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 역시 과거의 나에서 내가 얼마만큼 자라났고 또 편안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여러모로 오랜만에 나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여유를 가지고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시간이 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등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전해주러 갔을 뿐인데, 나의 고민의 시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음에 또한 그렇게 귀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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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노다해(https://linktr.ee/dahae.roh)
대학원에서 통계물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Engineers and Scientists for Change)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과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단법인이다. 주로 회계/세무를 담당하지만, 사무국 규모가 작아 거의 모든 일에 손을 대고 있다. 부캐로는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한다. 과학 강연, 과학 글쓰기, 과학책 번역을 하고, 과학 타로도 만든다. 과학과 과학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