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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Oct 15. 2024

통계물리학의 세상에 초대합니다.

나의 전공을 ‘물리학’이라고 소개하면 흔히 ‘어려운 거 하시네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사람마다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크게는 수학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장벽이 있겠다. 하지만 물리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여러 이유를 걷어내고 본다면, 여타 학문들이 그러하듯이 물리학도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 자신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것은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가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물리학의 특징을 꼽아보자면, 물리학은 세상을 단순하게 본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이론은 가능한 단순해야 하지만, 너무 단순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세상을 이해하는 물리학적인 모델에는 불필요한 요소가 없이 단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너무 단순해서 중요한 요소를 빠트리면 안 된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손바닥을 밀쳐서 먼저 발이 움직이는 사람이 지는 놀이를 생각해 보자. 이 놀이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주 많을 테다.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은 얼마나 강한 팔 힘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다리는 얼마나 잘 버티는지, 키는 큰지 작은지 등 고려할 만한 요소가 아주 많다. 하지만 물리학자는 이 문제를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단순한 문제로 본다. 


작용과 반작용 법칙은 내가 상대방을 세게 밀면(작용), 그만큼 강한 힘으로 나도 뒤로 밀려난다는(반작용) 현상을 나타낸다. 결국 손 밀치기 게임에서는 버티면 이긴다. 버틸 때에는 상대방이 나를 밀치는 힘도 버텨야겠지만, 내가 상대방을 밀어내는 힘에도 버텨야 한다. 그러니 작용과 반작용을 모두 버텨야 하는 셈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법칙을 수식으로 나타내기를 좋아한다. ‘작용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이 있고, 그 힘은 동일한 크기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풀어서 쓸 수도 있지만, 여러 번 같은 내용을 말하기에는 너무 귀찮은 일이다. 버스 카드 충전은 ‘버카충’으로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는 ‘자만추’로 줄인다. ‘별 걸 다 줄이네’라는 말도 줄여서 ‘별다줄’이라고 한다. 물리학자도 같은 마음이다.


법칙을 수식으로 나타내면 같은 내용을 여러 번 길게 말할 필요도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계산’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물리학의 법칙은 모두 그 법칙을 나타내는 수식이 있다. 앞서 소개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포함하여, 질량이 있는 물체에 힘을 가하면 운동에 변화가 생긴다는 가속도의 질량이 있는 두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 법칙 등 모두 법칙을 나타내는 수식이 있다.


물리학을 공부할 때에는 법칙에 관련된 수식을 기억하고 계산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칙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물리학의 의미에 집중해보려 한다. 특히 통계물리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물리학과 일상의 접점을 만들어내보려 한다. 각자의 이유로 물리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물리학을 조금이나마 가깝게 느끼기를 바란다.


통계물리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통계물리학은 물리학이다. 앞에 붙은 ‘통계’ 때문에 통계학이라고 오해를 많이 받지만, 통계물리학의 본체는 물리학이다. 다만 평균이나 분포 등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통계물리학이라고 부른다.


학교에서 배웠던 물리학을 떠올려보면 이런 식이다. 물체 하나를 놓고 밀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배운다. 다음으로는 물체 두 개를 부딪혔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배운다. 웬만하면 등장하는 물체의 수가 3개를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다르다. 방 안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많은 수의 공기 분자가 떠돌아다니고 있다. 기체 분자는 하나 둘 세기에는 너무 많아서 아보가드로 수라는 단위로 센다. 사과를 셀 때에는 하나, 둘 이렇게 세지만 개수가 너무 많으면 상자 단위로 세는 것과 같다. 1 아보가드로 수는 6.02 X 10^23개의 기체 분자를 말한다. 마치 사과 1 상자는 대략 10~12개의 사과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기체 분자가 많다 보니,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기체 분자의 집단적인 특성을 살펴본다. 기체 분자의 평균 속도라던가, 속도의 분포 등을 이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수의 입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은 수단으로 사용되는 ‘통계’가 앞에 붙어 ‘통계물리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통계물리학이 연구하는 대상의 첫 번째 특징은 그 수가 몹시도 많다는 데에 있다.


통계물리학이 연구하는 대상의 두 번째 특징은 그 많은 수의 입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데에 있다. 입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따라 입자들의 집단적인 특성이 변하게 된다. 가장 친숙한 예로 물의 상태변화가 있다.


물은 온도가 높아지면 고체 상태인 얼음에서 액체 상태인 물을 거쳐 기체 상태인 수증기로 변한다. 온도를 낮춰도 마찬가지로 물의 상태가 변한다. 사실 얼음이든 물이든 수증기이든 구성하는 분자는 H2O로 동일하다. 수소 원자 두 개가 산소 원자 하나와 결합한 형태이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온도에 따라서 물의 상태가 달라지는 걸까?


답은 물 분자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있다. 고체 상태에서 물 분자들은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육각형 구조를 만들어낸다. 물 분자들이 서로 단단하게 결합하기 때문에, 딱딱한 고체 상태로 존재한다. 더불어 육각형 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중간에 빈 공간이 생겨나면서, 같은 개수의 물 분자라도 액체 상태일 때보다 고체 상태일 때 부피가 늘어난다. 


액체 상태에서 물은 고체 상태에 비해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기체 상태만큼 막무가내도 아니다. 서로 적당히 뭉쳐있으려고 하면서도,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액체 상태에서는 고체 상태에 비해서 분자 간의 연결이 약한 셈이고, 기체 상태에서는 분자들이 거의 서로 신경 쓰지 않는 수준에 이른다. 이처럼 물의 상태는 온도에 따라 물 분자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통계물리학은 아주 많은 입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할 때 거시적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연구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상호작용’으로 아무리 많은 입자가 있더라도 입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없다면 무언가 재미난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수 천 개의 사과가 상자에 가지런히 담겨서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흡족하기는 하겠지만, 무언가 새로이 알아내서 설명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물질세계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까지


전통적으로 통계물리학은 물질세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와 같이 물질이 존재하는 형태가 변하는 현상 등을 연구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통계물리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음식점에 가서 같이 간 사람이 무얼 먹을지 궁금해하고, 갤럭시를 쓰다가도 친구를 보고 아이폰으로 갈아탄다. 누군가 새로 나온 영화나 예능, 드라마가 재미있다고 하면 따라서 보기도 한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내가 코로나에 걸리기도 하고, 내가 코로나를 퍼트리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새로운 소식을 담은 뉴스나, 질병이 퍼지기도 하고, 새로 나온 영화나 예능이 유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또 주며 살아간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떠오른다. 먼저 누가 누구와 영향을 주고받는지, 즉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의 문제이다. 비교적 간단한 물분자로 돌아가보자. 물분자는 총 네 개의 다른 물분자와 손을 잡을 수 있다. 모든 물 분자는 친구가 4명인 셈이다. 얼음의 어느 부분을 확대해서 보더라도, 물 분자가 만들어내는 결정구조는 동일하다. 즉, 물 분자의 연결은 균일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는 동아리나 동호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지만, 누구는 집순이여서 두 세명의 친구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연결은 균일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연결구조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두 번째 문제는 이러한 연결 구조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질병이나 정보가 퍼지기도 하고, 유행이 퍼지기도 한다. 또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아이폰이냐 갤럭시냐와 같은 선택의 문제에서도 우리는 주변 사람의 의견을 참고한다.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남겨놓은 후기를 보면서 어떤 물건을 살지 또는 어떤 가게에 갈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도 물리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어떤 특징이 있으며, 그러한 특징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더불어 그러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물리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하나씩 소개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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