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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Oct 23. 2024

대화가 꼬일 때는 춤을

나의 첫 인생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어린 시절 영화를 녹화한 테이프가 닳도록 여러번 돌려봤다. 어쩌면 춤추고 노래하는 일을 좋아하게된 데에는 이 영화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싶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뮤지컬 영화로, 오스트리아의 수녀 지망생인 마리아가 본 트랩 대령 가족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본 트랩 대령은 아내를 잃은 전직 해군 장교로 일곱 자녀들을 군인을 대하듯이 엄격한 규율로 통제한다.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본 트랩 대령 가족에게 웃음과 행복을 되찾아 준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마리아는 1949년 <트랩가 합창단 이야기>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1959년 회고록을 기반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흥행하면서 1965년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했다. 도레미 송을 비롯한 명곡들은 물론이고, 오스트리아의 건물과 자연 등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브루크에 가면 버스를 타고 촬영 장소를 방문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가 있다. 게다가 떼창은 한국인만의 문화가 아니었다. 인종과 국가에 관계 없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이자 자연스럽게 버스 떼창이 이어졌다. 


본 트랩 대령은 원래 오스트리아의 유명 인사인 엘사 슈뢰더와 재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아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 마리아에게 점차 마음이 생겼다. 마리아도 대령에게 애정이 생겼지만,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두려움을 느끼고 수도원으로 떠나버린다. 마리아는 수녀 지망생이었고, 본 트랩 대령은 재혼 상대가 있었으니 두려울 만도 했다. 그러나 마리아가 갑자기 떠난 뒤 트랩 대령은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고, 두 사람은 결국 결혼하게 된다.


마리아는 대령과 함께 춤을 추다가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만큼,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레트, <타이타닉>의 로즈와 잭도 춤을 추다가 서로를 향한 감정을 깨닫는다. 춤을 출 때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들이 이렇게 춤을 추다가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게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함께 춤을 추면 우리 뇌도 발을 맞춘다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면 두 사람의 뇌에서는 신경 세포의 동기화가 이루어진다. 함께 춤을 추기 위해서는 서로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동작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 뇌는 마치 우리가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반응한다. 상대방이 팔을 들어 올리면, 팔을 들어 올릴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이 상대방 뿐만 아니라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는 나의 뇌에서도 함께 활성화된다. 그렇게 춤을 추는 두 사람의 뇌는 동기화 된다.


두 사람의 뇌가 동기화 되면서 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춤을 출 때에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다음 동작을 예측하며 나의 동작을 맞춘다. 그렇게 내 동작이 상대방과 맞아들어갈 때, 우리는 쾌감을 느끼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쾌감을 느낄 때에 분비되는 도파민은 사랑에 빠질 때에도 분비된다. 그러니 춤이 서로를 향한 감정에 눈을 뜨게끔 부추기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동기화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을 수도 있겠지만, ‘싱크로율’이라는 단어는 한 번 즈음을 들어봤을테다. ‘싱크로율’은 무언가 찰떡같이 맞아떨어질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한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가 놀랍도록 닮았거나, 원작 만화나 소설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질 때 ‘싱크로율 100%’라는 식으로 사용한다.


‘싱크로율’은 사실 영어와 한자의 합성어이다. 우리말로 ‘동기화’라고 번역되는 영어단어 synchronization[싱크로니제이션]과 비율을 나타내는 율(率)을 합쳤다. 동기화라고 하면 흔히 딱 맞아 떨어지는 무언가를 표현한다. 수강신청이나 공연 티케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강신청 사이트 또는 티케팅 사이트의 서버 시계를 띄워놓고 대기한다. 수강신청이나 티케팅이 오픈되는 시간에 맞추어 마우스를 열심히 클릭한다. 웹사이트 서버 시계와 나의 시간을 ‘동기화’한 것이다. 


옆 사람과 함께하면, 어느 덧 전체가 발을 맞춘다.


조르조 파리시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복잡한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밝혀낸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파리시가 처음으로 ‘상호작용’을 연구했던 계기는 바로 철새인 유럽 찌르레기의  집단적인 움직임이었다. 철새는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지역으로 이동했다가, 날이 풀리면 다시 돌아와 생활한다. 이런 철새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큰 덩어리가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철새들의 움직임이 동기화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파리시는 찌르레기 떼의 움직임이 국소적인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즉, 개별 새들이 전체 무리의 움직임을 모두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가까운 몇몇 새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이다. 보통 한 마리의 새는 약 6-7마리의 인접한 새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마리도 채 안되는 주변 찌르레기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수백에서 수천 마리에 이르는 무리의 움직임이 동기화되는데에는 충분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국소적인 상호작용으로 집단적인 현상을 만들어낸다. 사람이 아주 많은 지하철 환승구간에서는 쉽사리 앞지르거나 걸음을 늦추기 쉽지 않다. 공간이 비좁기 때문에 옆에 사람과 어느 정도 발 맞추어 걸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환승 통로 전체에 걸쳐 어떤 일정한 흐름이 만들어진다. 어느 누가 통제하지 않아도 앞으로 가는 물결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물결 사이에 일정한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박수를 칠 때, 처음에는 박수 소리가 제각각이었다가 어느 순간 모두가 일정한 박자로 박수를 치는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박수 소리는 동기화된다. 나도 모르게 옆 사람의 박수 소리에 맞추어 내가 박수를 치는 박자를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체의 박수 소리가 조금씩 맞아들어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동일한 박자로 박수를 치며, 청중의 박수 소리는 동기화 된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우리 일상 곳곳에 녹아든 동기화를 보고 있자면, 새삼 우리에게는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함께 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일이 무척 익숙하다는 생각도 함께 떠오른다. 삶을 유지하는데에 필수적인 동기화도 있기는 하지만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동기화 현상을 보고 있지면,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들도 많다.


철새 무리가 움직임을 동기화하며 커다란 덩어리로 보이는데에는 생존과 직결된 이유가 있다. 몸집이 커 보이게 만들어 포식자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게다가 지하철 환승 구간처럼 혼잡한 공간에서 우리 발걸음이 동기화되지 않는다면, 매일 출퇴근 시간 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부딪히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을테다.


하지만 무작위로 시작된 박수소리가 점차 맞아 들어가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도, 필요성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박수를 치다보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도 어느새 다 함께 같은 박자로 박수를 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변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기 때문일테다.


우리가 주변과 함께 살아간다는 점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쉽지 않게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다. 옆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던가, 입만 열면 싸운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때에는 뇌파가 6~7초 간격을 두고 동기화된다. 그러니 터무니 없지만 동기화 현상을 역으로 이용해보면 어떨까? 


함께 춤을 추면 제일 좋겠고, 그게 아니더라도 박수를 함께 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숱한 영화에서 춤을 추다가 사랑에 눈을 떴듯이, 박수를 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될수도 있겠다는 재미난 생각을 해본다. 



* 철새의 움직임: https://www.youtube.com/watch?v=bb9ZTbYGRdc

* <뇌는 춤 추고 싶다> 장동선, 줄리아 크리스텐슨

* <동시성의 과학, 싱크> 스티븐 스트로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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