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짝꿍이 내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상대라면 주거, 경제, 정서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혼인신고를 통해 서로에게 부부로서 법적 대리인 및 보호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제도적인 측면이 있다. 실질적으로 함께 거주하며 생활의 공동체를 이루는 측면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결혼식을 열어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예식을 치르는 일이 있다.
‘그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책의 결말을 믿지도 않고, 결혼식에 대한 환상도 없는 나였다.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은, 귀찮은 일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보고 결정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남들 다 하는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악명 높은 결혼식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결혼식 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와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2015년 EBS 다큐프라임에서 발표한 <결혼의 진화>에서는 높아져만 가는 결혼식 비용을 문제 삼는다. 2024년 KBS 시사기획 창이 발표한 ‘우리의 험난한 평균 결혼식’에서는 웨딩 시장이 가진 복잡한 문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격이 공개되어있지 않다는 큰 문제가 있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예식장, 사진 촬영, 신랑신부와 혼주의 예복, 헤어와 메이크업 등 예식에 필요한 것들은 물론, 결혼식 전반의 과정에서 예비부부의 결정을 돕는 웨딩플래너의 비용도 공개되어있지 않고, 부르는 게 값이다. 게다가 당연히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에도 추가금이 계속해서 붙는 문제도 있다. 촬영사진의 원본과 보정본을 받는 데에도 추가금이 붙는다. 게다가 드레스를 보러 가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직접 그림을 그려서 드레스를 비교해야 한다. 이런 웨딩 업계의 관행은 기이할 정도이다.
게임이론으로 보는 웨딩시장
시장에서의 거래는 일종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게임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컴퓨터 게임과는 다른 개념이다. 경제학에서 게임은 여러 사람이 모여 전략적인 결정을 내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각자가 내리는 결정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의 결정을 예상하며 전략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가위바위보는 내가 가위를 냈을 때에 상대방이 어떤 수를 내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상대방이 바위를 낸다면 내가 지지만, 보를 내면 내가 이기고, 똑같이 가위를 내면 무승부가 난다. 가위바위보의 승패는 어느 정도 운에 맡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낼지 예상하는 치열한 심리전이 동반된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염두에 두고 판단을 한다. 이렇게 각자가 두뇌싸움을 할 때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는지 연구하는 분야가 게임 이론이다. 게임의 참여자들이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고 상대방을 배신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신뢰하며 서로에게 협력할 수도 있다. 게임이론에서는 특히 배신이 더 큰 이득을 가져다주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호 협력이 형성되는지에 주목한다.
동네에 과일 가게가 새로 문을 열었다. 이때 과일 가게 주인은 과일 상자를 품질이 좋지 않은 과일로 채우고, 제일 위에만 좋은 과일로 덮어서 마치 좋은 과일로만 상자를 채운 것처럼 소비자를 속일 수 있다. 안 좋은 과일을 좋은 과일인 것처럼 속여서 팔면 처음 잠깐은 이득을 보겠지만, 곧 손님이 끊길 것이다. 한 번 속은 손님은 돌아오지 않을 테고, 곧 동네에 소문이 돌아 과일 가게에 가본 적 없는 손님도 굳이 발걸음을 하지 않을 테다. 이렇게 과일 가게 주인이 소비자를 배신하면 소비자는 과일 가게에 안 좋은 평을 하고, 다른 과일 가게를 찾아 거래하는 식으로 거짓말을 한 과일 가게 주인을 응징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골길을 가다가 발견한 과일 가게에서 배신을 당했다면 이 때는 인생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어차피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데다가, 동네 과일 가게처럼 응징할 수도 없다. 반대로 소비자도 공급자를 배신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천 원짜리 물을 사 먹는데, 100원짜리 동전을 8개만 내어놓고 잽싸게 도망친다고 해보자. 이렇게 되면 다시는 그 편의점을 갈 수 없게 된다. 과일 가게 사례에서도 편의점 사례에서도 서로 한 번 보고 말 때에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계속해서 거래가 일어나는 사이라면 배신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는 웨딩시장 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역갑질을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배짱장사를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웨딩업계에서 예비 신혼부부는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쩌다 한 번 구입하는 상품이라고 해서 모든 공급자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평판이라는 장치가 작용한다.
앞서 과일 가게 사장이 거짓말을 하면 소비자는 다시는 그 가게를 방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알려서 다른 사람도 피해를 입지 않게 한다. 반대로 품질이 좋은 과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면 또 그대로 소문이 나서 가게는 더 장사가 잘 될 테다. 이러한 평판은 특히 온라인에 누적된 평점과 리뷰 등으로 쉽고 빠르게 판단이 가능해졌다. 처음 들어보는 음식점이더라도 평점을 조회해서 방문해도 괜찮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경우라면 리뷰를 더 열심히 찾아보고 어떤 게 나에게 맞을지 고심해서 고른다. 중요한 약속이나 특별한 일정을 위한 식사자리를 잘못된 식당을 골라서 망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또 비싼 물건을 구입할 때에도 리뷰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컴퓨터나 태블릿 등은 한 번 사면 몇 년은 쓸 뿐만 아니라 가격도 비싸다. 그렇기에 전자기기를 살 때에는 특히나 다른 여러 기종과 비교하며 리뷰를 엄청나게 찾아보고, 고심 끝에 큰돈을 지출한다.
그런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비용도 상당히 많이 지출하는 데다, 두고두고 회자될 결혼식을 위한 소비에서, 공급자가 소비자를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배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년까지 웨딩업계의 표준 약관을 만들고, 가격정보 공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공급자와 소비자 간에 상호 협력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리의 결정
어지러운 형국에 휩쓸리지는 않고 싶었다. 다행히도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우선, 학교 교우회관에서 운영하는 예식장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다. 교우회관 웨딩홀은 예식 일정이 두 시간 간격으로 잡혀있어 시간이 여유로운 데에다가 졸업생에게는 식장 대여비가 300만 원 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인 예식장이 해결되었고 예물이나 예단 같은 것도 하지 않기로 하니 굳이 플래너를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일명 스드메 역시 교우회관 웨딩홀과 협약을 맺은 곳에서 최대 200만 원의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학교 커뮤니티에 웨딩 후기를 올리면 피아노 삼중주 예식 연주를 무료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교우회관의 저렴한 비용은 어쩌면 졸업 한 뒤에도 누릴 수 있는 학생복지이면서 동시에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평판의 효과를 보는 일이다.
그러니 이 혼란 가운데에서도 소비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셀프 웨딩’으로 검색하면 많은 글이 나온다. 몇 편에 나누어 결혼 준비과정을 상세히 공유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글에서는 결혼 준비를 하며 작성한 체크리스트 등을 파일로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이렇게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서 스스로의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
앞서 소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노력에 정부는 예비부부가 결혼식 과정에서 부담하는 과도한 비용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4년 기존 공공예식장 91개소에 48개소를 추가로 개방하고, 2027년 말까지 200개소 이상 개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평소 웨딩홀로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기자재를 준비하는 데에 더 많은 비용이 들고, 하객들이 식사할 공간이 마땅치 않은 문제 등이 있다.
웨딩 시장이 공정성을 회복하기까지는 아직 여러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어떤 시장도 공급자나 소비자 한쪽에 지나치게 기운 채로 유지될 수는 없다. 시장의 균형이 기울었다면, 적절한 균형을 찾아서 시장은 이동한다.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와중에, 시장의 균형이 조속히 회복되어서 보다 적은 사람들이 고통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