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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Oct 15. 2024

인플루언서, 공항, 지역발전의 공통점

전통적으로 물리학자들은 물질세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물질세계에서의 상호작용은 단순하다. 얼음의 어느 부분을 확대해 보아도 물 분자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육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물질세계에서의 상호작용은 균일하다. 반면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균일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아도 누구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지내지만, 또 어떤 이는 집에 머무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며 2-3의 친구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분자와 사람들이 다른 점은 또 있다. 물 분자의 상호작용은 양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사람의 상호작용은 꼭 양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SNS(Social Network Service,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를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페이스북은 친구를 신청하면 두 사람이 서로의 친구 목록에 추가된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은 팔로우 또는 구독의 개념으로 내가 누군가를 팔로우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나를 팔로우하리라는 법은 없다. 사람들의 상호작용은 꼭 양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


물질세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일은 잘 들여다보면 된다. 물질은 사람보다 작아서 조금 애를 써서 들여다보아야 하기는 하지만, 사람처럼 발이 달려있지는 않아서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두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데에는 품이 조금 더 많이 든다. SNS는 이런 어려움을 손쉽게 해결해 준다. 누가 누구와 친구인지, 더 나아가서는 누가 친구가 많은지까지도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다.


유튜브의 구독자 순위


유튜브에서는 자체적으로 높은 구독자를 가진 채널을 선정하여 동영상 플레이 버튼이 새겨진 버튼을 수여한다. 메달의 색깔은 구독자 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구독자가 10만 명(100K) 이상이면 실버 버튼을, 100만 명(1M) 이상이면 골드, 1000만 명(10M) 이상이면 다이아몬드, 마지막으로 1억 명(100M) 이상이면 레드 다이아몬드 버튼을 받는다. 단순히 구독자 수만 충족했다고 버튼을 받지는 않고, 타인의 영상을 무단으로 복제하는 등 사회적 가치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메달 수여가 반려된다.


2024년 현재, 한국에서는 아직 1억 명의 구독자를 달성하여 레드 다이아몬드 플레이 버튼을 받은 유튜버는 없다. 한국 채널 중에는 주로 K-pop에 관한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글로벌 팬층을 보유한 K-pop 가수 및 소속사 채널이 가장 높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다. 이런 채널들이 성장하면 언젠가 한국에서도 레드 다이아몬드 플레이 버튼을 받은 채널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유튜브에서 메달을 수여하는 기준이 우리가 보통 수를 셀 때와는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우리는 보통 물건의 개수를 셀 때 하나, 둘, 셋 하고 센다. 그래프를 그릴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프에서 눈금 한 칸을 옮겨가면 덧셈이나 뺼셈으로 수가 변한다. 1, 2, 3 이든, 10, 20, 30 이든, 동일한 값을 더하거나 빼는 식이다. 그런데 메달을 수여하는 기준은 곱셈으로 수가 증가한다. 10, 100, 1000 이런 식이다. 이러한 메달 수여 기준은 SNS를 비롯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연결망의 특성을 반영한다.


시험 점수나 사람의 키, 몸무게 등은 보통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른다. 가운데에 평균값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이고, 값이 무한정 커지지 않는다. 약 165cm인 평균값 근처에 가장 많은 사람이 분포하고, 양 끝으로 갈수록 해당 키나 점수를 가진 사람의 수가 감소한다. 시험점수는 아무리 높아도 100점이라는 한계가 있고, 사람의 키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평균의 두 배인 330cm를 넘기 힘들다. 반대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인이 아무리 키가 작더라도 평균의 절반인 80cm는 넘기기 마련이다.


20~69세 한국인 4545명(여성 2525명, 남성 2020명)의 키 분포도. (왼쪽) 성별 구분 없이 그린 그래프, (오른쪽) 성별을 구분하여 그린 그래프. 성별을 구분할 때에 정규분포의 특징인 종모양이 더욱 뚜력하게 나타난다. 전체 평균은 대략 165cm로 평균의 두 배인 330cm, 반대로 절반인 80cm의 키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데이터 출처: 사이즈코리아 8차 인체치수조사).


2018년도 기네스 등재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큰(251cm) 사람과 작은(62.8cm) 사람의 만남(출처: VCG)


2023년 8월 10일 기준 유튜브 구독자 수 상위 100명의 구독자 수 분포도. (왼쪽) x축의 눈금 간격은 0.5억 명으로, y축의 눈금 간격은 10명으로 일정하다. 일반적으로 그래프를 그리는 이러한 방식으로는 유튜브 구독자 수 분포의 특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른쪽) x축과 y축의 눈금 간격은 2배씩 늘어난다. 성인의 키와는 다르게 유튜브 구독자 수는 2배, 4배, 8배나 차이가 날 수 있다(데이터 출처: socialtraker).


그렇지만 SNS의 세상에서는 이러한 제약이 없다. 나의 개인 유튜브 채널은 팔로워가 20을 채 넘지 않는다. 팔로워를 수를 사람의 키로 바꿔서 생각해 보면, 나의 키는 20cm인 셈이다. 하지만 유튜브의 세상에서는 팔로워가 10만 명이 넘어 키가 1km가 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키가 250cm를 넘어도 기네스 북에 등재되는 현실과는 무척 다르다. 그러니깐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양상은 우리가 키나 몸무게를 재고, 시험 점수를 매기는 방식과는 다른 기준으로 측정되어야 한다.


시험 점수나 키, 몸무게를 얘기할 때에는 앞자리가 중요하다.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 점점 몸무게가 늘더니 앞자리가 바뀌어버렸다. 지금까지 늘어난 무게가 더 크지만, 그건 보이지 않고 최근 며칠 동안 아주 살짝 늘어난 무게만 보인다. 딱 그만큼만 안 넘었으면 앞자리가 바뀌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아쉬워한다. 키도 그렇다. 이왕이면 키는 클수록 좋기야 하겠다만, 158cm이나 159cm는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159cm와 160cm는 다르다. 십의 자리가 바뀌는 건 아주 큰 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10이라는 동일한 크기의 구간으로 키, 몸무게 등을 나누고 비교한다. 


하지만 유튜브 팔로워를 동일한 크기의 간격으로 나누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팔로워가 20명인 사람과 10만 명인 사람을 비교하는데 10이라는 숫자 간격은 딱히 쓸모가 없다. 숫자 간격이 너무 작아서 문제라면, 1000만큼 간격을 늘려보자. 그렇다고 해도 팔로워 10만 명(1M)인 사람에게 1000이라는 숫자는 새발의 피만 한 수준이다.

이렇게 값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날 때에는 수의 규모에 맞게 간격을 늘려나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처음 간격이 10이었다면, 그다음 간격은 100, 그다음 간격은 1000으로 10을 곱해나가면서 간격을 늘려나간다. 이 세상에 평균 키의 두 배나 되는 키를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만, 유튜브의 세상에는 팔로워의 수가 몇 백배 차이 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렇기에 유튜브에서 팔로워 수에 따라 메달을 수여하는 기준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일정한 수를 곱해 간격을 키워나간다. 이렇듯 상을 수여하고, 값을 비교하는 기준을 정할 때에는 해당 값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먼저 파악해야 적합한 기준을 만들 수 있다.


거듭제곱법칙


유튜브의 팔로워 수처럼 값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서, 몇십 배, 몇 백 배의 차이가 나는 일이 흔한 것은 거듭제곱분포가 가지는 특징이다. 정규분포를 따르는 키, 몸무게, 시험 성적 등과는 달리 유튜브 팔로워 수는 거듭제곱분포를 따른다. 사실 이러한 거듭제곱 분포는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의 빈도를 따져보면 거듭제곱분포가 나타난다. 너, 나, 우리 등과 같은 단어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공항마다 운행하는 노선의 수도 거듭제곱 분포를 따른다. 울산공항처럼 서울/김포공항을 향하는 항공 노선이 하나뿐인 공항이 있는 반면, 인천국제공항에서는 2024년도 10월 기준 178개의 도시로 향하는 항공 노선이 운영되어 동북아시아의 허브(hub) 공항으로 불리고 있다. 


거듭제곱분포의 또 다른 특징은 파레토 법칙으로 나타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브레도 파레토의 이름을 딴 이 법칙은 20%의 원인에서 80%의 결과가 발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 매출의 80%가 20%의 상품에서 발생한다던가, 전체 조회수의 80%를 상위 20% 영상이 차지한다던가, 국가 인구의 80%가 20%의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과밀화를 설명하기도 한다. 20대 80이라는 숫자보다도 중요한 점은 소수가 전체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소수가 전체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결과는 ‘부익부’ 원리로 만들어진다. 공항을 새로 지을 때에 모든 공항에 취항하는 노선을 만들 수는 없다. 그중에 몇 군데만 골라야 한다면 우선은 큰 공항을 오가는 항공 노선을 만드는 편이 낫다. 이용객 입장에서는 일단 큰 공항에 가면 비행기를 갈아타서 원하는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미 인구가 많은 곳에 새로운 인구가 몰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곳에는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편의 및 문화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기 더 좋다고 생각하기 쉽다.


‘부익부’ 원리가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선택이 몰리더라도 거기에 별다른 제약이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우리가 특정한 단어를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현상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사 전달의 명확성과 효율성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인구 과밀화로 인한 지역발전의 불균형이라든지, ‘부익부’에 따른 ‘빈익빈’ 현상으로 불평등이 극심해진다던지 하는 것은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거듭제곱법칙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거듭제곱분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다. 거듭제곱분포와 이러한 분포가 나타나는 원리를 이해한 뒤에,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20%의 상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할 때, 나머지 80%의 상품을 판매 목록에서 제외할지 아니면 20%의 매출을 만들어내는 고객들의 니즈에 맞게 더 변형할지 선택할 수 있다.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균형적인 지역 발전을 꾀할 수도 있는 일이다. 물리학이라는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결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은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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