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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다해 Sep 14. 2024

화는 그때그때 내자

명절이 되면 친척 어른들로부터 듣게 될 잔소리에 미리부터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오죽하면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 각종 커뮤니티에 돌아다닐까. ‘살 좀 빼라’와 ‘애인 있니?’는 10만 원, ‘결혼해야지?’는 30만 원, ‘애는 언제 낳지?’는 50만 원, ‘둘째는?’은 100만 원이다. 감사하게도 나의 친가와 외가 식구들은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지지 않았다. 나의 친척 어르신들이 특별히 생각이 깨어있는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익히 보아온 나의 성질머리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않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합창단에 입단한 1년 동안 내가 평생 들을 명절 잔소리는 모두 들은 기분이었다.


어린이합창단을 시작으로 여러 합창단을 거쳐, 지금의 합창단에 정착했다. 그 옛날 어머니합창단으로 창단되어, 지금까지도 주로 가정주부로 구성된 이 합창단에는 약 30명의 단원들이 있다. 연습 시간은 평일 오전으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오기 딱 좋은 시간대라고 할 수 있겠다. 결혼을 안 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두 명뿐이고, 서른 초반의 나는 이 합창단에서 부정할 수 없는 막내를 담당하고 있다. 단원들 자녀의 나이는 초등학생부터 내 또래이다. 합창단 회칙에는 만 60세까지 단원을 활동기한을 정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 28년이나 남았다.


엄마뻘의 단원들은 내 또래라면 굳이 신경 쓰지도, 물어보지도 않을 질문들을 던졌다. 화장은 왜 안 하니, 머리는 왜 안 기르니, 결혼은 안 하니 등의 질문들 말이다. 집에서 우리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면 신경질을 확 내며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버릇없게 굴었겠지만, 집 밖의 엄마뻘 어른들에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마주치고 말 사이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볼 사이가 아니던가.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은 내 성질을 죽이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1년이 넘어가자, 다행히도 그런 질문은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떤 단원은 유난히 나의 머리에 관심을 가졌고, 결국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기에 이르렀다. ‘머리 좀 기르지?’


머리를 왜 기르지 않느냐는 물음은 내 또래들은 굳이 묻지 않는 말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넓게 써서 관심으로 여길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머리를 기르라는 말은 달랐다. 이건 간섭이었다. 게다가 이미 1년 동안 물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그렇게 웃으며 답해주었으면 ‘쟤는 원래 저런 앤 가보다’할 법도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한테 하듯이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버릇없이 구는 건 우리 엄마니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은 간사해서 누울 자리를 봐가며 다리를 뻗는 법이다.


머리를 비롯해서 외모에 관한 질문들을 들었을 때에 바로 내 불편함을 표현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크게 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감정을 속으로 삭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불편한 질문에 답을 했더니, 그동안 참아왔던 부정적인 감정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기분이 몹시도 상했고,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있는 대로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상대방은 나의 불편함을 모르고 있었으니, 내가 갑자기 화를 내면 상대방은 당황스러울 테다. 게다가 상대방은 무엇이 문제인지 여전히 모르기 십상이다.


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


‘착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는 말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착한 사람’은 이미 화를 냈을 법한 상황에서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고 해서 기분이 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분이 상하는 상대에게 몇 번의 기회를 주고 나서야 화를 낸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던 사람이 화를 내니 당황스럽기도 하겠고, 그동안 화를 내지 않고 있던 감정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무섭게 화를 내는 게 아닐까 싶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상태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 화를 내지 않는 상태에서 화를 내는 상태로의 변화이다.


상태변화는 연속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불연속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기분이 상하면 바로 화를 내는 사람은 상태변화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연속적인 상태변화에서는 기분이 상한 만큼만 화를 낸다. 마치 수도꼭지가 돌아간 각도만큼만 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수도꼭지가 잠겨있으면 물이 나오지 않지만, 수도꼭지를 조금 돌리면 물이 졸졸 흘러나오고 많이 돌리면 콸콸 쏟아져내린다. 수도꼭지를 아주 조금씩 잠그다 보면 물이 거의 나올 듯 말 듯하다가 어느 순간 물이 뚝 끊긴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만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다시 조금씩 새어 나온다. 연속 상태변화는 상태가 변하기는 하지만, 변화가 서서히 나타난다.


불연속 상태변화의 대표적인 경우는 물의 상태변화이다. 물을 가열하면 100℃라는 임계점을 기준으로 액체 상태의 물과 기체 상태의 물이 분명하게 구분된다. 냄비를 가열해서 물의 온도를 높인다고 해서 물이 바로 기체로 변하지는 않는다. 냄비가 뜨거워도 99℃도에서 물은 여전히 액체 상태인 것처럼, 착한 사람은 화가 났어도 아직은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다 온도가 100℃에 이르면 드디어 물이 끓어 기체가 되듯이. 착한 사람도 화가 난다. 99℃와 100℃는 겨우 1℃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물의 부피는 1,700배나 증가한다. 마치 상한 기분을 참다가 어느 순간 화가 무섭게 터져 나온 것과 같다.


그러니 여러모로 화는 그때 그때 내는 것이 좋다. 기분이 상한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을 위해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위해서도 말이다. 바로바로 불편함을 표현하면, 상대방이 잘못한 만큼만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면 상대방도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보다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다. 마치 수도꼭지에서 물이 찔끔 나오다가 말듯이 기분 나쁜 일도 소소하게 지나갈 테다. 그렇게 서로 기분 상하는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하며,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방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고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할 테다. 불편한 사람에게는 댐에 물이 쌓이듯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인다. 그러다가 댐에 작은 균열이 생기면, 물은 엄청난 압력으로 작은 틈을 뚫고 댐이 무너져 내린다. 그때 그때 화를 낼 때와는 다르게, 상황이 어려워진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 입장에서는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기분일 테고, 갑자기 화를 낸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잘못한 것 같은 상황이 되어버려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다. 


화를 낸 다음에는


문제는 무엇이 좋은지 알고 있다고 해서, 인생이 그렇게 살아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나는 불편한 일이 있으면 바로 티 내지 않고 우선 참는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끝나면 좋으련만, 뒤끝이 있는 나는 또 마음에 쌓아둔다. 그러다가 내가 화를 내는 임계점을 넘으면 그제야 화를 터뜨린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터트렸을 때에 결국은 상대방과 멀어졌다. 그래서 어차피 멀어질 거, 그냥 내가 조용히 멀어지는 방법을 택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화를 내든 갑자기 멀어지나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겠지만, 굳이 서로 감정 상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자기 방어적인 태도인 것이다. 


싫으면 안 보고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으련만, 때로는 불편한 사람 또는 불편한 상황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합창단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하기 위해 불편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단원들을 감수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 밖에도 꿈꾸던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직장 동료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나랑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또 내 친구와는 친해서 자꾸 셋이서 만나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지니의 요술램프가 있다면 이런 불편한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해 줄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불편한 사람을 마주치지 않게끔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지니가 없다.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는 불편한 일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속으로만 끙끙 앓던 나날을 지나, 이제는 내가 불편함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까지고 참으며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 부딪히기로 마음을 먹었다. 쉬운 일부터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 내가 불편한 사람을 부르는 지인에게는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다.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에게도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그러나 합창단에서처럼 호의와 관심을 가장했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미묘한 상황에서는 아직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더 인생에서 구르다 보면 어느덧 지혜를 장착한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지니를 찾지 않고도 불편한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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