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노래하고 있는 합창단은 단원 모두가 여성으로 이루어진 여성합창단이다. 연습시간은 평일 오전으로, 일을 하지 않거나 평일 시간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단원들이 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다. 연습이 끝나고 나면 함께 점심을 먹고,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러 간다. 오후에 일이 있는 사람은 먼저 일어나기도 한다. 사실 커피를 마시러 가서만 이야기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연습 시작 전에도, 쉬는 시간에도, 밥을 먹으면서도 소소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런 대화의 흐름은 합창단에서 소문을 퍼트리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소문이 퍼지는 위력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
하루는 한 단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합창단에 불편한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어렵게 느껴졌다. 나의 꾸밈에 유독 관심이 많은 단원이었다. 상대방에게는 관심의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런 표현들이 불편했다. 머리는 왜 안 기르는지, 왜 화장을 안 하고 안 꾸미는지 등을 물어왔다. 본인과 다르게 살아가는 내가 신기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호의적으로 답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싶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그런 이야기를 그만해 달라고 얘기했다. 좋은 의도였으니 이해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앞으로 그만하겠다는 대답이었다.
한 번 더 말을 꺼내보았지만, 여전히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우선은 말을 아끼고, 답답한 마음에 다른 단원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이야기가 흘러 흘러 당사자에게까지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졌다. 내가 조언을 구한 단원이 다른 단원에게 이야기를 슬쩍 흘린 것은 연습 시작을 채 30분도 채 남기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단원들 사이에는 이야기가 돌았고, 결국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에게까지 이야기가 흘러들어 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소문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그 무엇보다도 빠르게 퍼져나간다. 합창단의 연습이나 공연 일정 또는 공연에서 착용할 복장에 대한 지침에 대한 공지 등은 한 번 말해서는 잘 전달이 안 된다. 합창단 회장이 단원들 앞에서 한 번 공지하고, 또 공지용 단톡에도 올린다. 거기에 일정이 다가오면 또 한 번 구두로든 카톡으로든 공지를 한다. 공지는 이렇게나 여러 번 반복해서 알려도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반면에,, 소문은 애쓰지 않아도 순식간에 또 강력하게 퍼져나가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사람 마음은 정보를 골라먹는다. 공식적인 뉴스나, 유용한 정보는 분명 알아두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왠지 보기가 귀찮다. 개인적으로 구독하는 뉴스레터만 한 손으로 다 셀 수 없지만,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은 채로 메일함에 쌓여가고 있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내 인생에 도움이 되거나, 내 교양을 쌓는 데에 이로우리라 생각하고 구독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열어보기 귀찮다. 하지만 유명한 누군가에 관한 루머나 가십에는 이목이 집중된다. 학교폭력 등 잘못을 저질렀던 과거가 재조명되거나,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사생활 논란이 생겼기는 경우도 있다. 해당 사건을 살펴보다 보면, 당사자와 관련 인물에 대해서 또 그 관련 인물까지도 검색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혼자 검색하는 데에 그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소문이나 루머를 주변에 공유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의 활동을 관찰하다 보면, 공신력 있는 뉴스와 루머는 퍼져나가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이제는 X라고 불리는 트위터(twitter)는 주로 짧은 글을 통해 빠르게 소식을 전달하며 소통하는 SNS이다. 트위터에서 사람들은 짧은 메시지인 트윗(tweet)을 작성하고, 팔로워들에게 트윗이 보인다. 누군가 내가 동의하는 의견을 올리거나 내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정보를 올리면, 나는 해당 트윗을 공유(retweet, 리트윗)하여 내 팔로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트위터에서는 이러한 리트윗 기능을 통해 정보나 의견 등이 빠르게 확산된다.
트위터에서 퍼져나가는 정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여부가 검증된 진짜 뉴스와 사실 여부가 검증되지 않은 루머이다. 진짜 뉴스는 주로 언론사 등에서 운영하는 계정을 통해 처음 언급된다. 이들 계정은 보통 많은 팔로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짜 뉴스는 한 번 발표될 때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또 공유된다. 진짜 뉴스는 주로 언론사, 기자, 전문가 등 공신력 있는 계정을 통해서 퍼져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후속 보도를 통해 재조명되는 뉴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뉴스는 처음 발표되고 10일이 지나면 트위터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반면에 루머는 보다 적은 팔로워를 가진 계정들을 통해 공유되며, 그렇기에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보이거나 공유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러 번에 걸쳐 다시 언급된다.
소문의 쓸모
합창단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정보가 퍼져나간다. 공지는 회장이나 지휘자 같이 합창단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알리고, 또 모든 단원들에게 동시에 알려진다. 하지만 소문은 그렇지 않다. 가까운 사이의 몇몇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 퍼져나간다. 처음에 A그룹에서 퍼진 소문이 조금 지나서는 B그룹에서 퍼지고, 그다음에는 C그룹에서 퍼지는 식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돌고 돌아, 나에게 머리 좀 기르라고 했던 단원의 귀에까지 소문이 들어가는 데에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연습 중 쉬는 시간에는 한 단원이 내게 다가와 중재를 시도했다.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과 가깝게 지내는 단원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퍼진 소문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 단원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게 이렇게 순식간에 퍼질 줄이야.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덕을 보기도 했다. 소문이 퍼진 덕분에 내가 머리 길이나 화장 등 외모에 관한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단원들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합창단에서 명절 잔소리를 좀 덜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합창단 생활이 좀 더 수월해졌다.
소문은 안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은 누군가에게 대한 험담을 담고 있다.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둔갑하기도 한다. 거기에 소문이 와전되면서 깊은 갈등이나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문에 관심을 가지거나 퍼트리는 일을 지양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소문의 쓸모를 재발견한 기분이다.
우선 소문 덕분에 빠르게 나에 대한 정보를 퍼트릴 수 있었다. 내가 모든 이들에게 1:1로 정중한 말투로 불편함을 알렸다면 너무나도 지난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대신에 소문을 날라준 이들 덕분에 내가 열 번 말할 일이 한 번으로 줄었다. 그러니 소문은 집단 내에서 의사소통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도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소문은 집단의 분위기를 익히는 데에도 요긴하다. 소문에는 온갖 종류의 정보들이 담겨있어서, 소문을 잘 들어두면 섣불리 다른 사람에게 실수할 일도 줄어든다. 아무래도 소문을 들은 합창단원은 나에게 말할 때 조금은 더 신경 쓰게 되었을 테다. 소문을 통해 집단 내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힌트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소문은 구성원의 결속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다른 이에게는 전하지 않는 말을 전하는 일은 상대 방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소문을 공유하는 일은 집단에 녹아들고 소속감을 강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응집력이 과하면 배타적으로 변질되어 새로운 사람이 적응하기 어렵거나, 하나의 집단이 여러 그룹으로 쪼개지는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소문에는 여러모로 부정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지도 않다. 나도 모르게 소문에 끌리면서도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좀 더 나은 인간이 되라고 셀프 꾸중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소문의 쓸모를 재발견하니,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소문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참고자료
Kwon S, Cha M, Jung K (2017) Rumor Detection over Varying Time Windows. PLoS ONE 12(1): e0168344. doi:10.1371/journal. Pone.0168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