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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Jul 20. 2019

브런치, 작가만 되면 끝인 줄 알았지

‘힘 빼고 걷기’ 매거진, 한 발 늦은 에필로그


브런치의 메일이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우스 커서를 옮겼다. 클릭, 클릭.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커다란 두 마디가 눈에 띄었다.

기대했으나, 사실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니.


“아니, 내가 무려 ‘작가님’ 이라니!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고 그다음은 웃음이 헤실헤실 새어 나왔고 나중에는 만세를 불렀다. 행복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과 이 기쁨을 나눴다.

작. 가. 님

평생 들어볼 수 있을까 했던 말 한마디가 왕관처럼 머리 위에 씌워졌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브런치 작가를 지원하기에 앞서 나만의 글을 써보겠다고 단단히 각오했었지만 막상 ‘작가님’이 되고 나니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작가명은 뭐라고 정할까? 프로필에 나를 어떤 식으로 소개하면 좋지? 머릿속에 흩어진 기억들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꺼내 엮어야 할까?


크고 작은 질문들이 동동 떠올랐다.

하지만 그 수많은 질문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내 안에 있었다. 바로 부담감.


작가라면 좀 그럴싸한 글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글이 읽힐만한 가치가 있을까.


‘작가님’이란 생경한 부담에 나는 글을 쓰기도 전에 자기 검열하기에 바빴다. 제대로 된 글이 나올 리가 없었다. 무엇을 써도 마음에 차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부족한 글에 발행하기 버튼이 가당찮기나 한가. 초라한 문장 앞에 나는 한 없이 작아졌다. 글을 쓸 수 없는 작가라- 왕관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오랜만에 다이어리나 써볼까 싶어 펜 몇 개를 집어 들고 침대에 배를 대고 누웠다. 펼쳐본 다이어리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엘에이 호텔에서 시차도 잊은 채 밤새 빼곡히 써내려 나갔던, ‘내가 브런치를 하고 싶은 이유’였다.

구깃한 종이에는 글을 썼다 지운 흔적들이 가득했지만 어딘가 행복해 보였다. 글을 쓰던 당시의 내가 행복했었구나 싶었다. 문득, 우스웠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내가 무언가 끄적이는 것조차 두려워지다니. 왕관을 씌워줬더니 왕관에 눌려 납작해져 버린 꼴이었다.

 

힘을 좀 빼야겠구나-


누리끼리한 종이 한 장이 일깨워준 단순한 진리였다. 왕관은 잘못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왕관은 없었다. 문제는 낯선 부담에 스스로 눈을 가려버린 내 마음에 있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되려 완벽한 사람이 되어 완벽한 글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욕심이었다.




그 길로 다시 조금씩 글을 썼다.

가벼운 마음으로 매거진도 엮었다.

여행한 나라를 사진과 함께 간단히 소개하는 ‘지구 산책’과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힘 빼고 적어보는 에세이집, ‘힘 빼고 걷기’

이외에도 앞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내 안의 말들을 하나하나 적어나가 볼 예정이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랴, 매서운 자기 검열은 이쯤 해두고 나에게 좀 솔직해져볼까 한다. 가끔 내 발걸음이 그대들에게 닿아 하루가 조금 더 풍성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터벅터벅 걸어가 보려 한다.


이제 막 브런치의 작가가 되어 나와 같은 부담을 느낄지도 모를 그네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힘 빼고 같이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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