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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Jul 28. 2019

나는 당신의 절대적 행복을 응원한다

절대적인 행복을 좇는 모든 불나방들에게

작년 초겨울쯤이었던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쁘게 흘러가던 하루의 중턱이었다.


카톡!

오-랜 친구가 보낸 ‘너 요즘은 잘 지내냐’는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고교 시절 내내 함께 했던지라 안부를 묻는 게 오히려 새삼스럽던 우리가 어느덧 멀리서 안부를 묻는 직장인이라니. 지나온 시간이 문득 생경하게 느껴졌다. 곧장 전화기를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지 않은 신호음 끝 들려오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


꺄!!!! 이게 얼마만의 통화야!!!!!



다소 요란스러운, 즐거운 비명을 서두로 우리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즐겁던 그 시절 그 여고생들로 돌아갔다.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연스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뭐, 나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각국으로 비행을 다니고 있으며 지금은 막 한중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노라고 답했다. 수화기 너머, 비슷한 류의 식상한 답을 기다리고 있던 나를 놀라게 한 친구의 한 마디.


-있지, 나 사실... 회사 그만뒀어.


-뭐어어어어어????!!!!!!!


아니, 잘 다니던 회사를, 잘 나가던 네가 그만두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직을 생각하나?

업종을 바꾸려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관둬도 되나?’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물론, 그녀가 퇴사를 마음먹기까지 겪은 일들을 듣고 나니 그 결정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 편이 불안했다.


-그럼 너는 이제 뭐 하려고?


-음, 일단 당분간은 쉬면서 이직 준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서로의 ‘앞으로’를 응원하며 전화 통화를 마무리했다. 퇴사한 당사자의 목소리가 유달리 씩씩했던 덕일까, 얼마 안가 보란 듯이 이직하겠구나 싶은 생각에 쓸데없는 걱정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똑 부러진 너는 어떻게든 너의 길을 찾아낼 테니까.



 

그로부터 한 달쯤 흘렀을까.

오랜만에 너를 만났다. 얼굴이 좋아져 있었다. 성공적인 이직을 한 걸까.


-야, 요새는 어떻게 지냈어?


-음, 내가 하고 싶었던 거 다 해보고 있어.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내 방 셀프 리모델링해보고, 무엇보다 요즘 나 춤춰!


-응? 춤?


뒤이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웬 춤?”이란 질문을 도로 집어넣었다. 생각해보니 ‘왜?’가 붙을 질문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예전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 고교 시절, 너는 매 쉬는 시간마다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머리 몇 가닥을 손에 돌돌 감고 수학 문제를 풀곤 했다. 나는 그때 어렴풋 네가 수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다가온 반대항 학예회 날, 얌전하던 네가 친구들을 전두 지휘하며 파워풀한 춤사위를 선보이기 전까지는.

 작은 체구로 야무지게 춤을 추던 너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 수학 문제를 풀던 너는 무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의 너는 그저 화려한 무대와 사람들의 환호가 더 어울리는, 그래, 어엿한 한 명의 댄서였다.




-와, 춤이라니, 대박이다. 너야 고등학교 때부터 춤으로는 어디서 빠지지 않았지!


-하하하, 야 그건 좀 오버고 춤추는 걸 좋아하긴 했지. 그래서 지금이라도 한 번 해보려고.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니까 어차피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오게 될 것 같아서. 



친구의 한 마디가 머리를 땡 울렸다. 와, 이 친구, 제대로 된 불나방이구나. 자기가 어떤 빛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구나. 듣자 하니 지금껏 모은 돈으로 단순 취미반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는 학원에 등록했다고.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또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친구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춤을 배워서 최종적으로는 뭘 하고 싶어?


-아직은 잘 모르겠어. 무대에 설 수 있으면 감사한 거고. 일단은 다양한 장르의 안무를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 때까지 좀 배워보고 싶어.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소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친구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뭐, 사실 무모할게 뭐가 있나.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게 눈 앞에 너무나도 또렷이 보이는데 참고 살아야 할 이유는 또 뭔가. 세상 사람들이 정해놓은 보편적 행복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절대적 행복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그 누가 ‘무모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너의 행복을 바라며 그때 나는 마음먹었다, 너의 든든한 1 호팬이 되기로.




 그 후로 친구는 간간히 춤 연습 영상을 보내왔다. 어제보다 오늘 더 아름다운 춤을 춰내는, 영상 속 사뭇 진지한 친구를 보며 나도 함께 행복했다. 마음이 지칠 때면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보기도 했다. 즐거워 보이는 몸짓 하나하나가 내게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6개월이 흘렀다.


-나 작은 단막극 올라가게 됐어!


 너무나 반가운 연락이었다.

7월 28일 3시, 7시, 예인 아트홀. 연극명 Good doctor.

해외 체류 중인지라 노력의 결과물을 직접 볼 수 없는 게 너무나도 아쉽지만 1호 팬으로서 멀리서나마 빈다.

 너의 성공적인 공연을, 앞으로의 화려한 날갯짓을!




* 공연은 무료로 진행됩니다! 누구든 시간이 되시거든 구경 가주셔도 좋아요 =) 나중에 공연이 있거든 또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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