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독자달성을 앞두고 브런치와 독자들에게 전하는 감사
요즘은 짧게든 길게든 꾸준히 글을 쓴다. 감사할 따름이다.
혹자는 별게 다 감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내 말을 좀 들어보시라. 나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울고 웃으며 사계절을 훌쩍 넘는 시간을 보냈으니.
브런치를 막 시작했을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겸연쩍은 웃음이 터지곤 한다. 어쩜 그리 빈번히도 휘청였는지.
당시, 그저 글 쓰는 게 좋아 소소하게 써낸 글들이 생각보다 일찍,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글은 순식간에 만뷰, 십만뷰를 넘어섰고 모든 상황이 얼떨떨하면서도 행복했다. 이에 '더 좋은 글을 써야지, 더 따뜻한 글을 쓸 거야' 되뇌며 하루가 멀다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 쓸수록 이유 모를 괴리감이 몰려왔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어떤 글을 써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 문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스스로를 괴롭혔달까. 그렇다고 일전에 써낸 글들이 뭐 그리 대단한 역작도 아니었건만 바람 같은 관심에도 픽 쓰러지고 마는 갈대 같은 멘탈이란. 모두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되레 물이 들어오자마자 노를 내팽개치고 그대로 줄행랑쳤다. 제대로 된 개인기 하나 준비 못한 채 등 떠밀려 무대에 오른 개그맨이 된 기분이 꼭 이런 느낌일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는 브런치를 괜히 시작했다고도 생각했다. 브런치가 허락한 그 ‘작가' 왕관만 아니었어도 이전처럼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복에 겨운 미운 생각도 했었다. 지금에야 '아서라, 뭔 놈의 브런치 탓이냐' 하고 정신 번쩍 들게 꿀밤이라도 세게 한 대 때려줄걸 싶지만 당시의 나는 제대로 된 인과관계를 판단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불안이 만든 편협한 세계에 침전되어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기 바빴다.
한동안 글태기의 바다에서 허우적 대던 중, 당시 글을 매개체로 소통하던 지인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요새 글은 잘 쓰고 있냐는 언니의 물음에 나는 우물쭈물 변명을 늘어놓았다.
"언니, 나는 요즘 글을 못 쓰겠어. 비행도 바빠서 쓸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 자식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기분이랄까. 내 자식은 내 눈에만 예쁠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뭘 써야 할지 갈피도 못 잡겠고."
"너 승무원이 어떤 직업인지 알리고 싶어서 글 쓰기 시작해보겠다고 했던 거 아니야? 아니, 꼭 그게 아니더라도 네가 쓰고 싶은 그 무엇이든 그냥 써보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브런치에서 너한테 '이런 글을 써줘야만 작가 시켜줄 거예요!' 한 것도 아닌걸. 그리고 네 자식이 왜 부끄러워,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왜 되레 네가 부끄러워해.”
조곤조곤 이어지는 그녀의 팩트 폭격에 튀어나올 순번을 기다리던 변명들이 꼬리를 감췄다.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말이 없었다. 문제도 내 안에, 답도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가는 나의 비겁함을 들춰보기 두려웠을 뿐.
우연한 만남은 새로운 시작의 도화선이 되어주었다. 그 길로 나는 더딜지언정,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물락거리던 글감이 끝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에라 모르겠다, 일단 꾸준히 써나가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끔은 망설이고 가끔은 휘청이며 내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었는지 다시금 짚어나갔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문우들이 곁에서 함께 걷고 있었고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던 완벽에 대한 강박 또한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 꾸준한 발걸음은 나를 오늘, 지금, 이 순간으로 이끌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요즘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다채로운 글 쓰기를 시도한다. 어느 날은 승무원이, 어느 날은 시인이, 어느 날은 자동차 에디터가 되어도 본다. 브런치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나의 '글쓰기 정체성'을 깨달아가며 나는 오늘도 나만의 속도로 작가가 되어간다.
최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사진작가 헤일리는 이렇게 말했다.
똑같은 풍경이라도 그 사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찍었는지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저는 일상 속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작은 들꽃도, 노을 지는 하늘도, 그 흔한 텅 빈 벤치마저도 진심을 담아 바라보면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저는 사소한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숨 가삐 흘러가는 세상 속에도 여전히 이렇게 소소하고 소중한 찰나가 존재함을, 제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instagram haley_p0717
사진을 향한 소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녀의 가치관은 큰 울림을 준다. 그녀의 말처럼, 기실 시작의 동기는 복잡할 필요가 없다.
‘우연히라도 내 글을 읽게 될 모든 이들에게 소소한 일상의 뜨끈한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그래, 나는 애초에 그런 마음가짐으로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이었다.
글이 항상 흡족스러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아마) 늘 불만스러울 리도 없다. 이래나 저래나, 어차피 내 손 끝에서 태어난 내 자식에게는 100% 객관적일 수 없다. 웰 메이드 글이냐 아니냐를 놓고 풀리지 않을 고민을 하느니 이왕 마음먹은 거, 앞으로도 ‘뭐 어때?' 란 식의 두둑한 배짱으로 꾸준히 글을 써나가볼까 한다. 그게 죽이든, 밥이든 누군가의 빈 속을 따숩게 채워줄 수만 있다면 딱 고정도로도 내가 글을 계속 써 내려갈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작가가 되어간다.
p.s. 안녕하세요. 자타공인(?) 성장형 작가 하자입니다.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벌써 500분이 다 되어간다니 황송하고도 행복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기회의 장을 마련해준 브런치와 소중한 독자님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답할 수 있도록 튼튼한 작가로 자라나겠습니다. 아무쪼록 제 글 속에서 언제든 편히 쉬다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