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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Aug 02. 2019

같은 서비스직들끼리 이러지 맙시다

당신의 하루를 생각하듯, 나의 하루를 생각해주세요

 *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말씀 드리자면 승무원은 사실 서비스직보다 항공 안전 관리직에 가깝습니다!=) 고객 유치를 위한 항공업계의 경쟁으로 인해 (특히 국내 항공사의 경우) 안전업무보다 서비스 방면에 좀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공중에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승무원의 제1 임무입니다. 물론 서비스 업무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승객이 두고 내린 유실물을 찾았다. 목베개였다.


 승객이 유실물을 두고 내리면 승무원은 좌석 번호, 물품 등 몇 가지 사항을 체크한 뒤, 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지상직원에게 인수인계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간 유실품은 해당 공항 유실물 센터로 전달되어 승객들 품으로 돌아간다. 여권 심사대를 통과하기 전 다시 비행기로 돌아와 물품을 찾아가는 승객들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물품은 결국 유실물 센터로 보내진다.


그날의 유실물은 비즈니스 15A 좌석에서 발견되었다. 금발의 백인 여성분이 앉아있던 자리였다. 해당 좌석 근처에 서서 유실물 서류를 작성했다. 평소와 달리 유실물 서류 작성이 끝나도록 지상 직원이 오지 않았다. 캐빈 매니저님에게 물어보니 직접 유실물 센터에 가져다줘도 된단다. 알겠다 대답한 후 물건을 챙겨 비행기에서 내렸다.




장거리 비행 후 몰려오는 고단함을 눌러가며 유실물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자리에 앉아 계셨다.


- 您好,我捡到个遗留物品,是在这边交接的吗?

(안녕하세요, 제가 유실물을 찾았는데 여기에 인수인계하면 되나요?)


-不是这边!干嘛来这边说哈?

(여기 아니야! 왜 여기에 와서 얘기하는 거야?)


어라, 뭐지? 아주머니가 다짜고짜 나를 향해 소리를 내지르시는 게 아닌가. 내가 화를 냈던가, 욕을 했던가? 왜 소리를 지르시지?

분명 예의 갖춰 모르는 것을 물어봤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큰 소리가 돌아왔다. 갑작스레 펼쳐진 상황에 화가 나기보단 어안이 벙벙했다. 2초간 정적.

‘내가 다시 친절하게 이야기해보자. 혹시 내 말투에서 먼저 피곤이 묻어났을 수 있어.’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那您知道在哪儿能交接吗?

(그럼 혹시 어디서 인수인계가 가능한 지 아시나요?)


-去你们航空公司遗留物品台呀!

(너희 항공사 유실품 센터로 가!)



아니, 이렇게 끝까지 성질을 내신다고?

피곤함에 덮여있던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我生你的气了吗?你一定要这么说吗?

(제가 화를 냈나요? 말을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하나요?)


 전과 달리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직원은 잠깐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화를 내버린 걸 어떡하겠는가.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사과 대신 고개를 팩 돌리며 태도를 일관했다.


‘알량한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군요.’


 생각 어린 직원의 사과를 더는 받아내고 싶지 않아 등을 돌려 유실물 센터를 찾아 걸었다.

 

 물론, 나도 안다. 그녀의 하루가 고단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화가 날만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무례한 고객이 그녀의 기분을 망쳐놓았을 수도 있다. 혹자는 직업 특성상 요구되는 ‘친절’이 이미 하루 사용 가능량을 초과했을 수도 있다.

하. 지. 만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고단한 하루를 상대방에게 풀어도 되는 것인가. 심지어 서로의 업무 특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내가 당신을 이해하듯 당신도 나의 오늘이 쉽지만은 않았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 않은가.

 꾹 눌러 넣은 마음 틈새로 속상함이 퐁퐁 올라왔다. 휴, 끝까지 쉽지 않은 하루구나.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면 새삼스럽지만,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구나 깨닫게 된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저마다의 가치관을 키워왔을 그네들의 삶을, 나는 존중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순 없다. 욕심이다. 내 생각이 항상 맞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당신들의 하루가 소중한만큼 상대방의 하루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아주 잠시만이라도 생각해준다면 직업군이 같고 다르고를 떠나 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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