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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Mar 14. 2020

동방항공 승무원입니다, 안 괜찮습니다.


 꽥,  꽥, 꽤액-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이 녀석, 온종일 부지런히도 울어댄다. 가족, 친구, 사촌에 팔촌, 그 외에도 무수한 사람들에게서 "너, 괜찮아? 그, 동방항공 해고 기사...."로 시작되는 안부 전화를 받았다.  

 뭐, 크게 걱정 마시라, 나는 해당 기수가 아니다. 나는 괜찮다. 괜찮아, 괜찮고말고. 괜찮을 거야. 휴, 이게 괜찮은 건가?

 사실은, 솔직한 마음으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다. 그렇다, 나는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73명의 후배를 잃었다.



 

 우리 회사는 비공개 단톡 방이 있다. 이름과 사진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단톡 방에서는 기수를 떠나 사내 문제나 궁금한 점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계약 해지 통보 이틀 전, 본인이 14기임을 밝힌 한 후배님이 오랜만에 단톡 방을 깨웠다. 현재 모든 14기분들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어플에 접속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관리자 분에게 문의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단순한 오류가 아닐까요? 종종 발생하던 일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스템 상의 문제일 거예요.'


  해당 톡에 대한 답변이었다. 모두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럴 만도 했다. '엥? 뭐야????!' 하고 호들갑 떨기에 동방항공 어플 오류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시도를 해보니 접속이 되었더라는, 14기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한 마디로 어플 접속 불가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그것이 사측의 해고 통보를 위한 시그널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73명의 후배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충격에 휩싸였다. 고장 난 녹음기처럼 ‘말도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선배님들 도와주세요...



 단톡 방 안의 익명의 누군가가 말했다.

순간,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로 마음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톡을 본 모두가 그랬으리라.

 도움을 청한 그 또한 아마 선배들이 무언가 크게 변화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진 않았을 거다. 답답한 현실에, 그저 어디로든 손을 뻗어보고 싶었으리라.

 좌절스러웠다. 거대한 대기업 앞에 선 개인은 한 없이 나약할 뿐이었다.


 나는 평소 후배님들에게 커다란 애정을 쏟던 사람은 아니다. 나는 공과 사를 철저히 분리하는 사람이고 회사는 나에게 어디까지나 공의 영역이었으니. 하지만 공과 사를 떠나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쫓겨난 그들은, 바로 어제까지도 나의 동료였다.


 회사는 통보 후 몹시 애석하단 태도로 일관했고 말 마따라 몹시도 애석한 이 사건은 단순히 73명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이는 현재 동방항공에 근무하는 한국 승무원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었고 부끄럽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현 위치였다. 동료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힘내세요' 정도의 피상적인 말 뿐이라는 게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어차피 당장 할 수 있는 게 말 뿐이라면 그 말, 어디 한 번 조금 더 해보련다.


  



   

 사측에서 전한 해고 사유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영난'이었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였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휘청대는 비상 상황이 아닌가. 회사는 시국이 시국인만큼 해고 사유로 코로나만큼 내세우기에 좋은 게 없겠다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당찬 막내 기수들을 속이기에 회사는 다소 허술했다. 후배들은 해고 통지를 받은 즉시 같은 시기에 들어온 외국인 승무원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일본 승무원과 그 외 국적의 외국 승무원들은 정상적으로 재계약을 마쳤다는, 기가 찬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어려워진 항공업계의 사정 때문에 '한국인 승무원'만 쳐내겠다니? 어불성설이었다.



 한국인 승무원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사측의 차별 대우에 꾸준히 시정을 요구해왔다. 그것이 전면적으로 드러난 계기가 바로 코로나 19 였을 뿐이다.

 ‘한국 승무원에게만 한정된 중국 국내 비행’과 같은 차별의 단면이 코로나 19의 창궐과 함께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밝혀졌다.

 애초에 적당히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한국인 승무원들의 의견을 한사코 무시해오던 동방항공을 향해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동방항공은 성난 여론을 달래고자 급급히 모든 한국 승무원을 대상으로 유급 휴가 결정을 내렸다. 사측에서는 (개인적으로는 원래도 뛰어났는지 아리송한 입장이나) 항공사 이미지를 실추시킨 한국인들이 아마 눈엣가시 같았겠지.


 참고로 경영난으로 애를 먹고 있다는 동방항공의 규모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동방항공은 2016년 기준 51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직원은 6만 명을 육박했다. 2009년 기준으로, 자산 총액은 16조 7천억 원에 이른다. 이게 2009년 기준의 자산이니 지금은 훨씬 많겠지. 빠른 이해를 위해 우리나라의 가장 큰 항공사와 비교해보자. 대한항공은 2018년을 기준으로 166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동방항공은 이미 2016년부터 대한항공의 3배가량의 항공기를 세계 곳곳으로 돌려대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분명 항공업계가 힘든 것은 사실이나 동방항공이 당장 73명의 임직원을  감당할 수 없어 흔들릴 정도의 기업은 아닐거란 뜻이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무급 휴직을 선택 사항으로 내놓았을지언정 임직원을 해고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그럴 거면 대한항공을 가지 그랬냐 이런 소리는 부디 자제해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린다. 본인만 해도 중국어를 전공했고 따라서 중국어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는 항공사에 취업하고 싶었다. 객관적인 수치로만 보면 동방항공은 나름 굴지의 기업임을 절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마주할 현실이 이렇게 흘러가게 될 줄 난들 알았을까.)    


나도 몰랐다, 마냥 반짝일줄 알았다고.


  간간히 닥쳐오는 부정적인 현실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고 그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글에서 회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글을 작성해본 적 없다. 그 어떤 회사든 장단이 있는 법이니 적어도 나만은 내 선택을, 내 인생을 긍정적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하자, 아닌  아닌 거다. 



 동방항공에 묻고 싶다. 무엇이 동방항공에 경영난을 안겨주었는가. 코로나 19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로 퍼진 그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중국 우한이다. 국가 간의 국경 봉쇄, 항공업계의 위기, WHO의 펜데믹 선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서 2020년의 봄을 앗아간 그 코로나의 시작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대들의 조국이 아니던가.


 한국인에 대한 사측의 차별 대우가 공공연하게 밝혀진 지금, 더이상 개인이 코로나 19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부탁이니 그쯤 하시라. 거짓은 결국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크게 봐야지. 이랬다 저랬다 하는 회사를 누가 믿어주겠어. 사람과의 관계, 신뢰를 잃으면 끝장인 거라고.

-이태원 클라쓰


 부디 중국 동방항공이 73명의 한국인 승무원에 대한 계약 해지를 철회하고 한 발 늦은 지금이라도 대기업으로서의 책임의식을 보여주길 바란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껏 그래 왔듯, 당신들이 내게 자랑스러운 동방항공으로 남아주길 소망한다.

 동방항공은 부디 내 후배들을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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