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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Mar 27. 2020

시이-작! 은 언제나 가볍고 싶다

"시이-작!'


꺄르륵, 시작을 알리는 가벼운 외침과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봄 하늘에 퍼진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멍하니 바라본다.

찬란한 계절 앞에 나 홀로 웅크린 기분이란.


"좋겠다, 너희들은 시작이 참, 쉽네."


에잇, 찌질도 하다.





 시작이라.

과거에 대한 자의적 미화를 꼰대 거름망에 수십 번 걸러내어 감히 말하건대 내 인생에 시작이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철저한 과정 지상주의형 인간이었고, 실패에서 오는 고통이나 좌절에 몹시 둔감했다.(고통에 대한 역치가 높다고나 할까)

 덕분에 내 삶의 대부분의 경우 시작은 가벼웠고 나는 나의 가벼운 시작이 좋았다. ‘궁금한데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만으로도 앉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가벼운 엉덩이는 그 시작을 받쳐주는 절호의 무기였다.

 결과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해금, 한국무용, 기타, 에스페란토어 공부, 재봉 그 외 기타 등등, 갖은 시도 미수의 과제들이 과거에 족적을 남겼지만 별 상관없었다.    

 나의 시작은 뛰노는 어린아이들이 외치는 "시-이작", 그래 딱 그만큼 걱정 고민 없이 당장에 충실한 무엇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전직 승무원이셨던 대학 교수님께서 너는 키가 작으니 승무직은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말씀이시는 것을 듣고도 "고민보다 GO!"를 외치던 천둥벌거숭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되레 승무원이 된 후, 낯선 안정 속에서 서서히 시작을 잊어 갔다.  

 찾아온 변화는 그뿐만 아니었다. 피터팬처럼 언제든 네버랜드로 떠날 수 있으리라 자부했던 나의 발목에도 어느새 세월의 추가 달렸다. 이 괘씸한 녀석들은 고양이 목의 방울마냥, 사회적인 통념이나 안정에서 벗어날라치면 호들갑스럽게 경종을 울렸다. '그 나이면-' 이라든지 '굳이 뭘-'로 시작되는 타협은 사실 꽤나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다. 삶과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되는 걸까.

.

.

.

.

.

.

하며 과연 내가 고분고분 단념했을까.

그럴 리가. 잠시 침묵했을 뿐, 이 몸은 모태 천둥벌거숭이라고.

 시린 봄, 벼락같이 나타난 불청객에 예상에 없던 여유시간이 생기자 본능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짱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적다 보니 티끌이 태산이 되었고 그게 빵! 터져 하자 프로젝트가 되었다.

 지나온 세월이 갑작스레 무게를 잃은 것도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자는 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 사실 그 어떤 타협도 필요치 않았다. 다만 이전과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였다.

 시작과 도전.

 무게가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하여 나의 소극적인 태도를 고리타분한 명분들로 합리화했던 건 마음의 여유를 잃어 눈이 가려진 탓이었다. 코로나라는 세계적 빌런 덕에 시작한 강제 칩거생활이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으로 침잠할 시간을 벌어주었고 오해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가히 진흙 속에서 피어난 꽃이 따로 없다. 나조차도 나를 몰라 평생을 퇴고하듯 살아가는구나, 토닥토닥.



 뭐 어찌 됐건, 내 결론은 그거다.

시작은 앞으로도 쭉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것.

네버랜드로 날아가는 피터팬까지는 못 되더라도 하고 싶은 걸 어쭙잖은 이유들과 맞바꿔가며 포기하지는 말자는 거다.

 커다란 결정 앞에서 한없이 가벼워지라고 등 떠미는 게 아니라 충분히 가벼울 수 있는 일들에 괜히 무게 잡고 살지 말자는 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시작을 해봐야 당신이 가진 그 작은 가능성의 쌀알들이 죽이 될 수도, 또 밥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생각은 조금 줄이고 엉덩이는 좀 더 가볍게 해서 뭐든 “시-이작!'들 해보자고.

 

Glow 첫 번째 주제 -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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