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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May 08. 2020

[나도 작가다] 소소하고 거창한 모든 시작들의 시작

지금까지 이런 시작은 없었다, 다하자 프로젝트

방구석에서 봄볕을 쬐던 지난 3월이었을까요, 제가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야 '다하자 프로젝트'입니다.

버킷리스트라 하기엔 조금 가볍고 To-Do 리스트라 하기엔 다소 묵직한, 일상과 가까운 목표들을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프로젝트죠.


 그간 달성한 리스트를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볼게요.  

다하자 프로젝트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의 무논리를 깨닫는 것에부터 시작됐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요?

일단 제 이야기를 해볼게요.


 인생은 새옹지마라고들 하잖아요. 저는 선현들의 말씀을 인생 길목길목에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원하던 업계의 전문가와 일하게 되어 인생이 쉽게 풀리려나 했더니 창업 멤버들에게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구요, 얼얼한 뒤통수를 감싸 쥐고 뒷걸음치다 전화위복으로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단기간에 취업에 성공하고 이번에야말로 한 숨 돌리는가 했더니 아뿔싸, 예상과 다른 혹독한 직업 현실 앞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죠.

바스러진 자존감을 그러담지도 못한 채 웃음 가면 뒤로 숨었는데 감사하게도, 소중한 이들이 고집스럽게 곁을 지켜주며 제 진짜 표정을 알려주었습니다.

소중한 인연에 감사를 느끼며 벅찬 나날을 보내던 바로 그때, 오랜 시간 함께해 가족 같던 친구가 갑작스레 우정을 져버리고 맙니다.

이에 칠전팔기 정신으로 감정적 시련을 극복해내고 비행의 즐거움을 깨달아갈 때 즈음,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리적 시련이 다가옵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었죠. 그대로 병원에 발이 묶였고 비행은커녕 온전한 일상마저 사치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제는 컨디션이 좀 돌아왔다 했더니 코로나 19가 전세계를 순식간에 집어삼켜버렸네요. 길흉화복은 운수소관이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듯 합니다.

 

 순풍을 타고 학생 시기를 지나 어느덧 스스로를 책임질 나이가 되고 나니 인생이란 배가 온전히 키를 잡은 선장의 의지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불어오는 바람과 넘실대는 파도와 각양각색의 크루들까지,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은 인생의 항로에 늘 도사리고 있었고 매일같이 완벽한 항해를 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인생의 냉탕과 온탕을 실컷 오가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비워지더라는 거예요. 심지어는 인생의 변수들에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종 잡을 수 없는 다음 전개를 지켜보는 게 꽤나 흥미롭더라구요.

 하. 지. 만 그렇다고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허무주의, 한탕 주의자나 방관자로 남고 싶진 않았거든요. 내 인생의 주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니까요. 그래서 구상하게 된 것이 바로 다하자 프로젝트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태도로 삶을 경영해나가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제가 찾은 세 가지 답은 이러합니다.


1. 오늘의 행복을 내일에 양보하지 않을 것

2. 소중한 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더 자주 사랑을 표현할 것

3. 종국에 맞이할 죽음 앞에 후회 없도록 행동할 것


 그리고 그 답을 이 프로젝트에 담았습니다. 수만 가지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소소하고도 거창한 시작들에 대한 도전이었죠.   


사진출처 instagram haley_p0717


'그래서 다하자 프로젝트가 뭐지?’라 생각하실 독자분들을 위해 지난 리스트를 읊어보자면 유년시절 단짝과 오해 풀기, 연대하는 글쓰기, 부끄러운 잘못 바로잡기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가지를 이야기해볼게요.


 다하자 프로젝트의 첫 시작은 '십수 년 전 단짝과 오해 풀기'였습니다. 제 숙원이기도 했죠. 제게는 아주 절친했지만, 작은 오해로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진 단짝이 있었습니다. 함께한 날들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유독 그 친구와의 추억만큼은 세월의 풍화로도 흩어지지 않았어요, 덕분에 저는 오래도록 그 친구를 그리워했습니다.

  다하자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리스트를 작성하던 중이었을까요, 문득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모른 척을 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리운 건 사실이었지만 십수 년 전의 일을 굳이 지금 바로잡아야할까 싶었죠. 하지만 제가 정한 세 번째 구호가 ‘죽음 앞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었죠? ‘죽음'이라는 무거운 두 글자 앞에서 저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죽기 전 침대에 누워 '아, 그 친구랑 이야기나 제대로 해볼걸, 예전에 참 좋았는데' 하고 후회하고 있을 제 모습이 눈에 선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이렇게 심플하게 결정을 하고 나니 외려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옅어졌습니다.

  그 길로 친구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고 저는 십수 년 만에 옛 단짝과 재회하게 됩니다. 과거의 오해를 풀고 옛 추억을 나누는 감동적인 장면이 눈 앞에 그려지시나요? 저조차 '그리하여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하고 엔딩이 나겠거니 생각했지만 아이고, 이 짧은 만남에조차 변수가 숨어있었습니다. 골 때리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다하자 프로젝트에 더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예측 불가능할지언정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시도해보는 게 꽤나 의미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오늘까지도 조금씩 조금씩 리스트를 수행해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작곡에 도전하고 있어요. 승무원이란 직업의 애환을 담아 나만의 곡을 써보고 싶다 늘 생각했거든요.

 재밌는 건, 제가 이런 다하자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 놀랍다는 반응이 돌아온다는 겁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라나요. 그만큼 금전, 시간, 적성 혹은 용기부족을 구실로 내일을 위해 당장의 행복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소소한 행복을 위해 일상에 작은 공간을 내어주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닌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오늘이 행복해야 수많은 오늘의 합으로 만들어질 인생이 온전히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이게 하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당장 커다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로 다하자 프로젝트의 시작이 제 인생의 커다란 흐름을 바꿔놓지도 않았고요. 다만 분명한 건 제가 이전보다 좀 더 홀가분해지고 행복해졌다는 겁니다. 저는 부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지면 좋겠어요.

 





 인생이란 결국 매 순간 펼쳐지는 운명의 초연입니다. 애석하게도 다음 씬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주인공마저도 알 수 없죠. 혹, 그 어떤 인생의 변수에도 양보할 수 없는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 들고 있는 각본에 가볍게 각주를 달아두세요. 그리곤 오늘, 여기, 눈 앞의 장면에 다시 몰입해보세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나만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우리네 새옹지마 인생에 멋들어지게 대적할 수 있는 최적의 방어책이란 걸 당신 또한 알게되길 한 걸음 뒤에서 응원할게요.

 

요새 나를 특히나 행복하게 하는 것들



* 다하자 프로젝트가 궁금하다면 :

십 수년 전의 단짝과 오해를 풀었다

문우(文友)와 함께 글쓰기를 시작했다

찌질했던 과거로 타임리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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