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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을 걷는 여자 Oct 15. 2020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글쎄,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가 다른가 보네'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이 된 이후부터 지금껏,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물음이 하나 있다. 

 

'어째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원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승무원이 된 건데, 너도 꽤나 열심히 준비했잖아."

 나는 친구들의 아리송한 표정을  훑으며 대답한다. "나는 승무원이 이런 건 줄 몰랐어."






 그래, 세상에는 겪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그랬다. 승무원 준비생 시절만 해도 예쁜 유니폼에 단정하게 쪽진 머리, 또각이는 구두를 신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승무원은 내게 엄청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늘이 직장이 된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인 말인가. 그렇게 승무원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 물고 취업 준비를 했고 결국 입사를 원했던 항공사의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승무원이 되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기도 전, 나는 생각했다.

 '승무원이 이런 직업이라고 단 한 명이라도 내게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과연 승무원이 되려고 했을까.'


 물론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흡족해하며 지금껏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이들도 많다. 나 역시 승무원으로서 행복했던 지난 추억들을 격하할 의도나 부정할 생각은 없다. 승무원이 된 덕에 사랑하는 동기들을 얻었고 바랬던 것처럼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이 일상이 되는 삶을 경험해봤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승무원 생활이 기존에 고수해오던 나의 삶을 상당 부분 뒤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역시나 부정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건대, 모든 것의 시작은 무지(無知)였다. 해당 직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는 상상의 공백을 피상적인 기대로 채웠다. 최소한 마음의 준비라도 되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냥 해맑기만 했던 어린 날의 나는 아무런 방어책도 없이 차가운 현실 앞에 연거푸 깨지고 넘어졌다. 꼬꾸라져 바닥을 짚고는 칠전팔기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는 와중에도 나는 늘 생각했다.

 '나처럼 무지(無知)에서 시작되는 시작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저 한 번 진-하게 아파봤으니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만큼은 무지의 안갯길에서 헤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난 2월, 코로나로 인해 모든 비행이 취소되었고 그대로 집 안에 발이 묶였다.

외출도 자제해야 되겠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하던 중 자격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게 바로 직업 상담사 자격증이었다. 직업을 소개하는 것과 관련해서 누군가에게 정확한 도움을 주고 싶다면 먼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선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하자 프로젝트 리스트에 < 직업 상담사 자격증 취득! >을 적어두고는 그 길로 방콕 독학을 시작했다.


 필기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던 지난 6월 중순까지 모든 일정과 약속을 정리하곤 달리는 코뿔소처럼 공부에 집중했다. 현장 강의는커녕 인터넷 강의도 반백수에겐 사치였기에 맨 땅의 헤딩이란 생각으로 주야장천 책을 팠다. 심리 상담이나 법 쪽에는 일가견이 없다 보니 엉뚱하게 헤맬 때도 있었지만 '공부는 꾸준함과 노력이다' 되뇌며 부지런히 시간을 쌓았다.





 약 4개월 후, 필기시험 합격을 확인했다. 채 기뻐할 겨를도 없이 한 달 뒤에 있을 실기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기내 5대 설비를 외울 때마냥 펜을 잡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개념을 쓰고 또 썼다. 스스로 쪽문제지를 만들어 화병에 담아두고는 매일 10문제 이상의 쪽지를 뽑아 답변을 해보았고 오답은 포스트잇에 정리해 벽에 붙였다. 그렇게 노력하는 와중에도 자꾸만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와 맘 편히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지만 '두 번 공부하지 말자'는 일념으로 꼬박 한 달을 채웠다.

 그렇게 한 달 후 맞이한 실기 시험 날, 그간의 노력을 답안지에 쏟아 내고는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고사장을 나섰다.

 



 필기는 자신이 푼 문제지를 가지고 나올 수 있기에 가답안을 통해 합격 여부를 미리 알 수 있었지만 채점자가 주관식 답안을 하나하나 평가해야 하는 실기는 그렇지 않았다. 합격자 발표일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다가온 9월 합격자 발표 날. '혹 떨어졌어도 괜찮아. 뭐, 이번이 아니면 한 번 더 하지', 지레 기대를 누르며 합격여부를 클릭했다. 몸에 긴장이 풀리며 쭉- 힘이 빠졌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진로의 갈래길에서 헤매고 있을 누군가의 길라잡이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공부가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물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에 비한다면 오늘의 합격은 아주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그 한 걸음을 스스로 떼어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고, 그렇게 계속 앞으로 걷다 보면 언젠가 오늘의 발자국이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게 되겠지.   







 직업상담사 자격증 취득 완료로 성공적으로 또 하나의 다하자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사실 당장 이 자격증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공부해 훗날, 진로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주변 사람들의 진로 선택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보려 한다.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기도 해 가면서 그래, 나는 이렇게 또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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