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 세상의 헛됨을 봤다
내가 열 살 즈음, 할아버지는 69세였고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병원 대신 집으로 모셔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하셨다.
처음엔 동네 의사께서 매일 집에 방문해 진통제를 놓아주셨지만, 시간이 지나며 아버지께 직접 주사 놓는 법을 배우게 하셨고, 그 후로는 아버지가 매일 할아버지께 진통제를 놓아드렸다.
처음엔 할아버지가 8시간 정도 주무셨지만, 점점 잠드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계신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오래 사실 것만 같았다. 주사를 맞으면 편히 주무셨기에, 나는 그 모습이 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어 있는 시간이 늘었고, 아버지는 점점 더 자주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계속 주사를 놓아야 했다.
그러던 중 큰아버지네 가족 네 명이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찾아왔다. 큰아버지는 군인이었고, 큰어머니는 산부인과 교수였다. 큰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할아버지는 진통제를 맞았지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숨을 멈추셨다. 아마도 큰집 식구들을 기다리셨던 것 같다. 그들을 보고 며칠 만에 마지막 숨을 거두신 것이다. 우리는 장례를 치렀고,
그 후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은 들일을 나가 계셨고, 나는 혼자 집에 남아 늘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던 자리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더없이 무심하게 느껴졌다. 새벽부터 일하고, 부모를 모시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부모님께 왜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몇 달 앞둔 시점에 우리 가족은 동생의 부고를 들었다. 집안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 집에서 살아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엄마는 현장에 갔고, 아버지는 나 때문에 가지 못했다. 내 앞에서는 눈물을 참으셨지만, 밤마다 조용히 우셨다.
나 역시 살아 있는 딸이라는 이유로, 죽은 아들인 동생을 대신했다는 죄책감에 밤마다 자신을 옭아매며 10년 넘게 살아왔다.
그런 날들이 이어졌고, 나는 결국 집을 나왔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졸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중국의 가장 남쪽, 광둥성에 있는 한국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저 집을 떠나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 사이 할머니와 외할머니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이 모든 사실은 나에게 세상이 너무나 허무하게 느껴지게 했다.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세상에 던져버렸다. 죽어도 한 줌의 흙, 살아도 아무런 의미 없는 세상. 나는 어린 나이에 세상의 헛됨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