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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 Mar 09. 2020

자연을 두 가지 색으로 분류하기

3월 9일 월요일 일기


이 사진을 촬영하고 나서 하늘을 보면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매일 올려다보고 살아왔지만, 안정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라 이따금 당혹스럽다.


친구와 내가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에서 벗어나 태안으로 여행을 간 날이었다. 먹구름 가득한 바다를 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몹시 침울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날이 좋았다. 장사항에 도착해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자마자 친구에게 모델이 되어주길 부탁했다. 내가 신호를 보내자 친구는 바다와 땅이 맞닿은 곳으로 터벅터벅(정말 그런 소리가 났다) 걸어갔다. 친구의 발걸음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느렸으므로, 친구는 내 목소리를 따라 자신이 서 있는 땅의 끝이자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뛰어가야 했다.


친구가 포즈를 잡고, 나는 셔터 위에 손가락을 댄 채로 기다렸다. 이 날 항구에는 수많은 새가 있었지만, 좀처럼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긴 기다림 끝에 우리는 이 사진을 건졌다. 하늘과 바다, 땅, 사람과 새를 한 프레임에 담아낸 것이다.


대단한 사진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사진에서 특별함을 느끼는 건, 이 사진을 통해 칸트가 정의한 숭고라는 거창한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사진을 보면서 불안함을 느꼈다. 어금니 사이에 질긴 고기조각이 끼었을 때 ‘이대로 고기조각이 빠지지 않아서 치과에 가야 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정도이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괜스레 쿵덕대는 것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나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나면 원인을 찾기 위해 맨 먼저 문을 열고 첫 장면에서 죽는 공포영화의 조연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진이 주는 불안감을 극복하고 싶었다. 언제까지 불안해 할 건데?라고, 슬그머니 싹이 돋아난 참이었다.


3개월의 시간을 가진 끝에, 사진에서 느꼈던 불안감이 점차 흐릿해졌다. 이후 나는 이 사진 한정이지만, 쓸데없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끊임없이 걱정하거나 타인이 겪은 일을 언젠가 내가 겪겠다는 생각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그 곳을 지나갔을 뿐이고, 어떤 곳도 나를 침범하거나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전까지 나는 자연을 두 가지 색으로 분류했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정서를 유발하는 초록빛과 차갑고 위협적인 느낌의 회색에 가까운 푸른빛으로. 두 색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초록빛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자연을 벗 삼아 가는 모습이 연상된다면, 푸른빛은 거대한 배를 두 동강 내는 해일 같은 느낌이다.


나는 종종 시야가 푸른빛으로 덮이는 것 같다고 느꼈다. 불안할 때마다 그랬다. 피부에 좋은 온천수라고 해도 시야가 어두컴컴한 온천동굴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며, 바람을 일으키는 거대한 풍력발전소를 보곤 온 몸을 떨며 차 안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알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 내 몸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도무지 가질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것이 조금이나마 극복해서 기쁘다. 피부미용에 좋은 온천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해피엔딩이니까. 


Editor by 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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