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차 Nov 24. 2021

고흐가 알아준 내 겨울

내 인생 첫 예술가


살면서 딱히 특정한 것을 대놓고 싫어한 적은 없다. 

어떤 이는 어렸을 때 개에 물린 기억이 있어서 개를 싫어한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어릴적  알약을 삼키는 것을 시도하다 토한 적이 있어서 어른이 되어서도 약 삼키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는데 나는 딱히 그런 것은 없다. 굳이 하나 꼽자면 바퀴벌레 정도?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몸서리치게 싫은 것이 있다. 바로 겨울이다. 


스키와 스노우보딩 등의 겨울 스포츠가 좋아 일 년 중 눈이 오는 이 계절만 기다린다는 사람도 있고,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므로 12월만 되면 가슴이 뛴다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 이전 시절만 해도 송년회를 핑계로 한 달 내내 지인들과 술마실 수 있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시기도 바로 그 12월이었다. 오히려 12월에 송년회 때문에 거의 매일 바쁜 사람들은 사교적이고 인맥이 좋은 사람이라는 검증되지 않는 인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겨울 중 12월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1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후회스러운 지난해를 아쉬움 가득한 마음과 함께 과거로 보내고 새해의 계획을 세운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데 벌써 새해가 밝았다고 요란을 떨면서도 한껏 들떠서 올해 목표를 세우고, 운동을 시작하고,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이러니 연말연시가 있는 겨울은 흥미롭고 다양한 일들이 많아 덥고 끈적하여 불쾌지수만 높은 여름보다 훨씬 인기가 많은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옆구리가 시리도록 찬바람이 부는 겨울에 커플들의 탄생이 많아지고, 무더위로 아무것도 안 해도 짜증만 늘어나는 여름에 많은 커플들이 헤어진다는 것도 분명 정확한 통계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목도리를 선물해주고 그 사람의 얼어버린 손을 잡아 내 코트 주머니에 넣어서 따뜻하게 녹여 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겨울. 겨울은 사람들을 센치하게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게 만들며, 따뜻한 군고구마나 호빵을 사서 가족들과 나누어 먹고 싶게 만드는, 무척 정이 많은 계절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한 8년쯤 되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매력 있는 겨울이 유독 나에게만은 평생의 네메시스(이길 수 없는 적:숙적)가 된 것이. 처음에는 몰랐다. 추위를 많이 타니 그냥 날이 추우면 따뜻한 실내에만 있고 싶은 줄 알았고, 겨울 스포츠를 즐기지 않으니 겨울이 지루한 줄만 알았다. 크리스마스 때는 선물을 많이 받는 아이들이 들떠있는 날이고 12월 31일은 삼삼오오 모여서 술 마시는 젊은 사람들이 들떠 있는 날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뭇잎들이 떨어지면서 앙상한 가지가 더 많이 보이는 황량한 11월 중순쯤부터 시작되는 나의 괴로움은 단지 날씨가 추워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귀찮아졌고 집안에만 있고 싶었다. 마치 온몸과 마음이 물에 푹 젖어버린 솜뭉치 같은 그런 상태가 겨울 내내 지속되었다. 몇 해 전 유난히 구름이 많이 끼고 흐렸던 12월의 어느날에는 방바닥에 덩그러니 누워 '아... 어서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잘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짧은 곡을 만들어 '겨울은 개나 줘버려'라는 제목을 짓고는 어딘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낄낄거리기도 했다. 


심리상담을 전공한 친구에게 겨울에 일어나는 이런 나의 상황을 털어놓았더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면서 계절성 우울증 SAD(seasonal affective disorder)이란 질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겨울 우울증이라고도 하는 이 질환은 사실 겨울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사람에 따라 봄이나 여름에 느끼기도 한다고. 나의 경우는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무기력증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이 질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일상생활을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겨울이 되면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부족하니 오히려 이것저것 일을 벌이지 않아서 매일의 일상이 다소 단조로워졌고 그것은 나에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시간이 많아져서 신앙생활이나 가족들을 돌보는 일은 더 충실히 할 수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봄이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시 활기차게 살아나서 여기저기 약속을 잡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4월부터 6월이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바빠져 오히려 더 피곤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3년 전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우쭐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나도 반 고흐 박물관은 꼭 가보아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엄포를 했고 그렇게 들렀던 박물관에서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박물관 투어를 하다 보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작품들의 양에 결국 지루해져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감흥이 무뎌지기 마련이다. 나 또한 연이어 출현하는 반 고흐의 작품과 편지들에 무뎌지고 지루해져 가던 중 이 그림을 보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된 이 그림의 제목은 '겨울정원'이었다. 

어쩌다 술을 많이 마신 날 갑자기 취해서는 주변의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면서 입술을 깨물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적이 있는가? 내가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느낀 느낌이 바로 그랬다. 차이가 있다면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입술에 감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일 뿐. 말싸움할 때 정곡을 찔리면 한동안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듯이, 나는 그렇게 그 그림 앞에 취한 듯 서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너의 겨울을 그렸어'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래. 알아'


아마도 그때였던 듯 싶다. 이것이 예술이다 하며 예술작품에 열광하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멋모르고 합류한 것이. 고흐가 실제로 그 그림을 그릴 때 겨울마다 느끼는 나의 황량함을 느꼈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그저 나는 겨울이 되면 힘들고 고독한데 고흐의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를 이해하는 우주의 어느 작은 외계인과 소통하고 있는 기분이 들고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겨울이 싫고, 이 작은 외계인도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고, 그것이 나에게 엄청난 위로가 된다는 것. 


그 외계인이 빈센트 반 고흐인지 그림 속의 여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나에겐 이것이 예술이고 이것이 예술의 전부이다. 나의 마음을 나 이외의 누군가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로 인해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슬픔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며, 그가 대신 표현한 내 마음을 보면서 우주보다도 더 큰 위로를 받는 것. 음악을 듣고 위로를 받으며, 그림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며, 지루한 회의 시간 동안 친구가 어설프게 그려준 만화로 순간 깔깔 웃었다면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예술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게 내 인생 첫 예술가가 되었다.

                                                       

                                                          고흐의 겨울정원

                                                       출처: walmart.com



작가의 이전글 내가 왜 이러는 것 같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