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차 Jan 03. 2022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2008/스티븐 달드리)

발행하지 않고 서랍에만 두었던 영화 리뷰인데 얼마 전 뒤늦게 한글을 배워 책까지 발행하신 순천 할머니들의 책을 읽고 이 영화가 생각나서 다시 꺼내 보았다.


★스포일러 원치 않으시면 지나가셔야 합니다.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를 좋아하고, 일단 제목이 자극적이라 저장해 두었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니!)

여행을 갔는데 주룩주룩 비는 오고, 사전 지식 없이 보는 이상야릇한 영화와 맥주가 앞에 있으니 와.. 이래서 영화를 보는구나 싶 황홀했다.


대책 없이 저돌적인 첫사랑을 하다 (그 나이에는 당연하겠지만) 사랑의 열병을 심하게 앓는 소년, 수치스러운 비밀을 가지고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여성.  이 둘의 만남이 참 귀여웠고 무엇보다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는 장면은  굉장히 관능적이다.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여인이 오디세이, 죄와 벌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니 '일자무식'이라는 말이 과연 한나에게 어울리는 말일까.  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글도 쓸 줄 모르는 한나를 '무식한 사람'에서  '지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요즘 간간히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고 있는데 영화처럼 실제로 누군가가 내 옆에 누워서 책을 읽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영화가 수위가 높아서 그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왠지 부끄럽고 마치 나도 모르게 귀가 뜨거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영화는 나치 정권하의 수용소 직원들의 재판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툭 던지면서 개인의 이야기와 사회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섞다. 두 이야기 모두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사실 나는 재판 중에  한나가 내리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보면서 약간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모른다는 게 저렇게 인생을 걸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글을 모른 채로 평생을 살아오신 순천 할머니들이 쓰신 책을 읽고  그 처절한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본인들 잘못도 아닌데 평생을 죄인처럼 벌벌 떨면서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이 영화를 보신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재미있게 보았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케이트 윈슬렛과 랄프 파인즈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사실 주인공들의 복잡한 마음이 관객에게 와닿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주는 영화가 아니라서  관객들이 주인공들의 연기로 그들의 복잡한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가 똑똑한 사람이었다면 그 느낌을 잘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으니 그냥 이 영화는 많은 사람이 봐야 한다고 쓰는 수밖에.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영화 보는 중에 눈물이 흘러서 당황스러웠다. 벅차오르는 사랑을 몰라주는 여인의 마음이 야속하기만 한 어린 마이클이 불쌍해서 울고, 그녀를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친하게(?) 지낼 수도 없는 다 큰 마이클이 미친 듯이 책을 읽으며 녹음을 할 때도 울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 같은 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은 내 마음 한구석에 화석처럼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이클이 되어서 한나에게 뒤늦은 고백을 해본다. 으이그, 그게 뭐라고 잡은 손을 빼버리니.


나중에 여건이 되면 원작을 꼭 읽어보고 싶다.


*독일 배우 데이비드 크로스가 어린 마이클 역을 맡았는데, 캐스팅되었을 때 15세여서 베드신을 찍을 수 없어서 그가 18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도 대단하고 어린 나이에 소화하기 쉽지 않은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낸 배우도 정말 대단하다.


09/05/2021  변산반도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 미상 (Never Look Awa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