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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Dec 15. 2021

작가 미상 (Never Look Away)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2018/독일

우연히 알게 된 영화인데 왜인지 독특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상 깊게 보았던 '타인의 삶'을 연출했던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 한다.  


아직 안 봤는데 볼까 말까 망설이시는 분들을 위한 정보

1. '타인의 삶'을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2. 예술가, 특히 미술작가들의 이야기나 시대극(2차 세계대전/독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

3. 러닝타임은 세 시간이며 청불입니다. 시대극이니 주말에 거실에서 귤 까먹으면서 봐야지 했다가는 난감하실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4. 게르하르트 리히터나 요셉 보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 


                        -잠깐! 영화 아직 안 보신 분들, 이 밑으로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무척 궁금해졌다.  일단 인생 스토리 자체가 매우 대단하다.  교사의 아들로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나치 정권과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서독으로 망명을 하는 리히터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경험일지 모르겠다. 어릴 때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사실 영화 같기는 마찬가지니까. 


일단 감독은 인터뷰에서 리히터의 스토리에서는 단지 영감을 얻었을 뿐이라고 밝혔고 리히터도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 자신의 이야기를  오용(abuse라고 표현)했다며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보니 영화적 재미와 완성도를 위해 감독이 많은 부분을 추가한 듯하다. 감독은 Jürgen Schreiber라는 독일의 저널리스트가 리히터의 장인과 이모의 비극에 대해서 쓴 'Family Drama'라는 책(사진-출처 아마존)을 읽고 흥미를 느껴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하는데 슈라이버의 기사를 직접 읽지 않았으니 궁금하지만 일단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저널리스트 슈라이버의 책 '게르하르트 리히터-Family Drama'


감독은 리히터의 예술가로서의 면을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흥미롭게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아무래도 리히터의 이모의 이야기 그리고 장인어른이었던 산부인과 의사의 악연으로 드러나는 비극적인 개인사가 관객의 마음을 더 무겁게 울린다고 본다.  나치의 우생학(Eugenics)에 대해서는 얼핏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불과 60여 년 전에 이런 일이 실제로 계획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행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섬뜩하다. 비밀스럽게 자행된 것도 아니고 계몽 포스터로도 만들어져서 사회적인 동의를 구했다는 사실 또한 무섭기 그지없다. 정신질환, 다운증후군, 선천적인 신체결함과 심지어는 인종까지 아우르는 이 미친 유전학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 사회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얼마나 깨어있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우울해지는 것 같다. 




해외 영화들의 경우 포스터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나라마다 영화 포스터가 다른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영화를 수입한 회사에서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제작사에서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영화를 다 본 후에 여러 종류의 포스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감동을 주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포스터 중에서 아래의 포스터들이 나는 제일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포스터인 듯 보이는 이것은 포스터 자체를 리히터의 유명한 사진 회화 기법으로 그린 듯 만들어서 눈에 띄었다.


밑의 포스터는 우리나라 포스터.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썼다. 역시 한국인의 정서는 이런 것인가?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세상만사의 이치를 깨닫고 집에 돌아와서 흥분하며 말하는 리히터의 모습이 나오는 바로 그 장면이다.  내용이 조금은 뜬금없긴 하지만 아무래도 감독은 메리엔 이모와 리히터와의 연결고리를 이렇게 이어주고 싶었다 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에 매력을 느낀 나 역시 영화를 다 본 후 온라인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리히터의 인생 스토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www.gerhard-richter.com에 가면 리히터에 대한 정보가 많이 나온다. 리히터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어서 궁금증이 조금 해소되었고 사이트 내의 time line에서 추가로 소개된 정보로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그의 최근의 행보를 더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리히터는 이모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여학생 마리엔(에마)과 결혼을 하지만 20년 정도의 결혼 생활 후에  그녀와 이혼을 하게 된다. 리히터는 그 이후에 두 번의 결혼을 했고, 2021년 현재 리히터는 89세이며 독일 쾰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 덕분에 리히터라는 예술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좋았다.  현대미술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의 전시회를 꼭 가보고 싶다. 


*영화 속에서 리히터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교수의 실제 모델은 작가 요셉 보이스라고 하는데 그의 스토리가 눈길을 끈다.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 이 말은 비단 예술가들에게만 적용되는 조언이 아니어서 앞으로도 종종 그의 작품들과 함께 생각 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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