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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Sep 19. 2021

인 더 하우스(2012/프랑소와 오종)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노트 필기해야 하는 영화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단순히 왓차 기대평점이 높아서 보게 되었다. 유럽 영화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왓챠의 AI 가 찾아내서 평점이 높은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그런데! '글쓰기'가 소재라니! 당연히 영화 시작 5분 만에 사랑에 빠졌다.

내가 왜 이 영화에 이리 빠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려면 , 내가 어쩌다가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2년 전쯤이었나, 집안 정리를  잘하고 싶어서  인터넷 정리 카페에 가입을 했었다. 그 카페의 매니저가 마침 국문학을 전공하고 정리 관련 도서도 출판한 작가다.  그곳에서 지난 2월부터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호기심만으로 신청하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인생은 하게 흘러갔고 급기야 이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런치에서는 '작가'라는 말이 여기저기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지만,  사실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는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고등학생이나 다름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초등학교 3-4학년 그 어디쯤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런 속사정이 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게르만 선생과 클로드의 수업장면이 그때의 우리들을 떠올리게 했다.  때의 수업은 이 영화처럼 일대일 수업은 아니었지만, 나도 클로드처럼  글쓰기 선생님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선생님은 게르만 선생처럼 우리의 글에 광적으로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게르만 선생 못지않은 지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었다는 것 등이 떠오르면서 이 영화를 선생님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졌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어제 영화를 한 편 봤는데 보는 내내 '정리하는 글쓰기' 수업시간이 생각나서 이렇게 뜬금없이 편지를 씁니다.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인 게르망과 의 문학반 학생 클로드의 이야기인데요. 취미로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저는 클로드란 캐릭터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클로드의 첫 수업 주제는 '주말에 한일'이었죠.  그가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를 차분하면서도 다소 관능적으로 써서 제출을 합니다. 클로드는 글쓰기가 처음입니다.  저도 그죠.  클로드는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어요. 저도 그잖아요.

 그러니 저나 클로드 같은 사람들이 글을 쓸 때는 무엇으로 쓰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직접 겪은 일에서 시작하죠. 그 일이 글쓰기의 소재가 될 정도로 흥미진진해서도, 독자들에게 꼭 알려야만 되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도 아니지요. 안타깝지만 그냥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밑천의 전부이기 때문이죠.  그 소박한 밑천에 관심을 가지고 글쓰기를 계속 격려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클로드는 친구의 집에서 수학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주말을 보내는데요, 그가 자주 가는 그 집과 그 집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쓰게 돼요. 자연스럽게 저는 독자의 입장이 아니라 클로드, 즉 작자의 입장이 되어 그의 글을  따라서 그 집으로 들어갑니다.  게르망 선생님이 클로드의 글에 대한 조언을 할 때는요,  마치 그때 우리들의 수업 중 동기들과 합평을 한 후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의견을 듣는 그 떨리는 순간이 생각이 나서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갈등과 문제 해결은 장르에 상관없이 모든 글에 필요한 요소이다!'라고 게르 선생이 일침을 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썼던  짧은 이야기에 선생님이 '클라이맥스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었죠. 순간 프랑스인인 게르 선생과 한국인인 선생님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더라고요. 

'독자들도 다 알아서 이해하니 제발 좀 다 설명하지 말라'라고 할 때는 선생님이 제게 문단들의 내용이 중복되니 과감하게 둘 중 하나를 없애라고 했던 때가 생각났어요.  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학생에게 글쓰기에 눈을 뜨게 해주는 문학 교사의 열정, 뭐 이런 것이 주제인 잔잔한 영화 스토리 같지요? 하지만 영화는 이상하고 기이하게 흘러갑니다. 클로드의 글에  점점 집착하게 되는 게르만 선생님은  너무나도 멀쩡한 선생님과는 달리 조금씩 이성을 어가게 돼요.  '조용히 몰고 가다가 마지막에 확 불을 지르는 듯한 엔딩으로 가야 돼!' 라며 다소 무섭고 과격한 진행을 유도하기도 하고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는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은 죽임을 당했다 이야기를 클로드에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자의 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선생과 그것에 함께 휩쓸려가다가 후반부에 정신을 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수한 주인공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영화 같은가요? 글쎄요... 영화는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라 이쯤에서 영화 줄거리 소개는 그만할까 봐요. 그런데요, 선생님, 정말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가 게르만 선생이 클로드에게 글 쓰는 법을 지도하는 그 지도법 그대로 흘러간다는 점이에요.  영화의 후반부에서 게르망 선생은 클로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적 엔딩이란 말이지, '정말 의외의 결론이지만 다른 대안은 없다'는 느낌을 주어야 해".

 이 영화의 엔딩이 딱 그렇습니다. '진짜 의외인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긴 해'라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너무나도 슬프고 아름다운 전쟁 영화를 봤는데 엔딩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이 죽는 경우에 우리는 '아... 너무 충격적이고 슬프지만 이렇게 되는 게 사실 맞는 것이긴 해"라고 느끼는 것처럼요.


요즘 바쁘시겠지만 언제 꼭 시간 내셔서 이 영화 "인 더 하우스"  보시길 바라요.  그리고, 글쓰기 수업도 꼭 카페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계속하셨으면 좋겠어요.  클로드 같은 학생이 되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드릴게요. 뭐라고요? 클로드 같은 미소년을 제자로 두고 싶으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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