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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Jan 22. 2024

기본적으로 내 잘못인데 나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은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추웠고 눈발이 날렸다. 2023-2024 이번 겨울은 따뜻했다 추웠다 따뜻했다 다시 추웠다 한다.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겨울의 삼한사온과는 또 결이 다르다. 날씨가 미쳤다.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려 스무 해 가까이 방황했던 조울러로서 이번 겨울은 조울증에 걸린 조울러 같다. 눈발만 내리다 말아 그렇지 날이 추워 눈이 계속 왔으면 눈이 쌓였을 것이고 녹지 않고 결빙되어 미끄러운 빙판길이 되었을 것이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나는 차량운행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운행 시간에 맞추어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다. 오전 운행을 하는 나는 7시 50분에 출근하여 4시 50분에 퇴근한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잠이 부족해 출근길 버스에서 졸기가 일상이지만 저녁이 있는 삶은 좋다.


운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르신들 출석을 체크하여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숫자를 주방에 전달한다. 주방이 있는 층에 사무실도 있고 대표님과 센터장님도 계신다. 식수를 주방 칠판에 적으러 올라갔더니 대표님께서 "선생님 저 좀 보세요." 부르신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브런치에 글 쓰는 것을 들켰나, 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아침 운행 중 스마트폰을 들고 운전을 했고, 누가 그걸 보고 차에 적혀 있는 센터 대표전화로 전화해서 운전자가 어쨌느니 저쨌느니 컴플레인을 걸었나 보다. 회사에서는 운전자가 운행 중 어르신 내려오시라고 전화를 하거나 센터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카톡을 하는 상황을 잘 아는데, 우리에게 잘못이 있는 민원에 대해서는 납작 엎드려 사과하고, 교통법규는 절대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 CCTV보다 사람 눈이 무섭다.


기본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다만 그럴만한 사정은 있었다. 내가 모시는 어르신이 지난주부터 1주일간 평소 계시던 댁이 아니라 다른 따님댁에서 다니셨다. 그러니 나는 직원 카톡으로 어디서 모시는지 확인을 해야 했고, 그에 대한 대답을 기다려야 했다. 운행 코스 중 마지막으로 모시는 어르신이지만, 빨리 파악이 되어야 그에 맞게 운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다 조바심이다.


센터차량은 기관명과 대표번호를 붙이고 돌아다니니 운전자가 내가 아니더라도 온갖 민원이 들어온다고. 민원전화로 물고 뜯고 씹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 있나 싶기도. 기본적으로 오늘 일은 내 잘못이다. 내일부터는 스마트폰 거치대에 꽂아 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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