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함 Dec 14. 2020

아티제에 제수씨 생일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참여의 기회는 좋으나, 참여를 의무화하여 강요하지 말았으면

지난주 토요일 우리 집에서 제수씨 생일 파티를 했다. 원래는 그 전 주였는데 제수씨 가족들과 모였어서, 한 주 지난 토요일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우리끼리 생일 축하를 했으면 파리바게트에서 케이크를 샀을 텐데, 제수씨는 우리 생일 때 항상 아티제 케이크를 사다 주었다. 아티제 케이크가 비싸지만 맛있다. 케이크가 비싸고 맛있어봤자 케이크가 케이크이겠지만 말이다. 카페 아티제는 원래 호텔 신라에서 호텔 베이커리 카페 같은 프리미엄 베이커리 카페를 대중화한 콘셉트인데, 재벌이 카페와 베이커리를 한다고 정부가 압박하여, 대한제분으로 매각이 되었다. 나는 보통 케이크를 파리바게트에서 사지만, 우리 생일 때 항상 아티제 케이크를 사다 주는 제수씨에게 아티제 케이크로 축하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수원역 롯데몰에 가서 사 오려고 했는데, 내가 코감기가 걸렸다고 아버지께서 자가용으로 데려다주셨다.


롯데몰 1층 아티제에서 케이크를 사 가지고 내려오는데 전화가 왔다.

설문조사

스마트폰에 설문조사라고 떴다. 이걸 받아 말아 고민하다가 받았다. 휴대폰 판매나 보험 등등이라면 안 받았을 텐데, 설문조사라니까 고민이 되었다.


최다함씨 되시죠?


요즘에는 이름 생일 전화번호 정도는 보이스피싱 사기꾼들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라 개인정보라 할 수도 없지만,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나를 특정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작년에 ㅅㅎ 영농법인에서 귀농교육받으셨죠?


작년이 아니고 재작년이었을 것이다. 귀농 교육한 사람들이 귀농정착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문조사가 온 것이다. 교육받은 단체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직접 설문조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설문조사 기관에 외주를 준 것 같다. 설문조사하는 사람은 단답식의 주관식과 객관식 문항을 가지고 있고, 그 문항을 그대로 읽어주고 나의 답변을 듣는다. 한참 설문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설문조사원도 자기가 하는 질문이 무슨 질문인지 모르고 하는 것이다. 그냥 스크립트를 읽고, 내 대답을 기록하는 것뿐이다. 괜히 전화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바쁘다고 끊자고 했더니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한다. 아니면 나중에 다시 건다고 한다. 나는 작년에 귀농했다가, 올해는 다시 도시로 돌아와 귀농을 끝냈다고 했다. 그 정도로 답변하면 조사원이 알아서 답지에 체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사원은 별 의미도 없는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는 설문내용을 기계적으로 읊는다. 내가 답변할 마음이 없는데도 자기 일을 한다.


요즘에는 어떤 과정을 마치면, 특별히 일부라도 정부지원을 받았다면, 설문조사해달라고 연락이 온다. 보통은 문자로 와서 링크 타고 가서 체크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이런 식의 설문조사에 응답을 잘 안 할 테니,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하는 것 같다. 인터넷 설문조사도 구글 문서를 만들어 보내는 게 아니라, 설문조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에게 외주를 주는 것 같다. 통계와 데이터 분석까지 해줄 테니까 말이다.


내가 삐딱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이 관행이 되다 보니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설문조사를 하는데 돈을 쓰는 것이다. 교육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다음 교육과 정책에 반영을 하는 게 아니라, 일하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는데 돈을 쓰는 것이다. 이걸 하는 사람도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설문조사가 의무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강좌가 끝나면 반드시 강의평가를 해야 한다. 강의평가를 하지 않으면, 성적확인을 할 수 없다던지, 들어오기로 한 장학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던지 불이익이 있다. 강의평가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강의평가를 강제하느냐 하는 말이다. 강의를 들으면 꼭 교수를 학생이 평가해야 하나? 평가하고 싶은 사람만 평가하면 안 되나? 대중의 참여의 기회를 주는 것은 좋은데, 참여를 의무화하는 흐름이 나는 불편하다. 그냥 때론 그저 구경꾼 관객이 되면 안 되나?


나는 강의 평가지를 받으면 모든 문항에 최고점을 준다. 내가 그렇게 하면 옆에서 불편해하기도 한다. 냉정하게 평가를 하는 것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꾼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시민들에게 학생들에게 리더에 대한 교사에 대한 평가의 기회를 주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평가의 기회가 아닌 의무를 부여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조사원의 긴 질문에 답을 하고 차에 타니, 같은 교육을 함께 받으셨던 아버지도 같은 설문조사를 다른 조사원으로부터 받으셨다. 똑같은 질문 문항지를 가지고 설문조사를 하는 것 같았다.


다음번부터는 스팸 차단 앱에 '설문조사'가 뜨면 안 받을 것이다. 사는 것도 바쁜데 너무 귀찮다.

작가의 이전글 동생 일을 도와주러 방배동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