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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시골집에 왕대추를 따러 왔다

by 최다함


논산 시골집에서 왕대추를 따고 있다. 1년 농사 수확은 10월 한 달이다.


부모님께서 귀농하셔서 왕대추농장을 하고 계신다. 논산 시골집은 할아버지께서 평생 농사를 지시며 사신 곳이고, 아버지의 고향집이다. 부모님 왕대추 농사 수확을 도우러 왔다.


원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 시작하신 농장이다.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 하셨다. 백석대 신학대학원에서 야간에 공부하셔서 개척교회도 하셨다. 투잡은 아니셨고, 초등학교 교사가 경제활동을 하는 직업이셨고, 목회는 일과 후 사역으로 봉사하셨다.


정년퇴직을 하신 아버지의 꿈은 나를 돕는 일이셨다.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려 오랜 방황으로 경력이 단절되어 별 일 없이 사는 나를 위해서 건강한 평생직장을 만들어 주고 싶으셨다. 나를 데리고 다니시며 함께 귀농교육을 받고 왕대추농장을 시작하셨다.


400여 시간의 귀농교육을 아버지와 함께 이수했고, 반년 정도 같이 농사를 했다.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이미 나는 내 인생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글 쓰는 작가로 사는 것이다.


나는 다시 도시로 올라왔다. 출판편집디자인을 배웠다. 그쪽으로 취업은 하지 못했지만, 동생 회사에서 2년 반을 일하며, 익힌 기술을 유용하게 썼다.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가족의 고마움을 잘 아는데, 동생 회사에서 일하기에도 내가 버티기가 어려웠다. 퇴사하고 1년이 지났다. 퇴사할 때는 더 이상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며 살리라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글이 돈이 되고 업이 되지는 못했다.


마냥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가진 자격 중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경험으로 3개월 일했다. 기관의 경영악화로 정규직으로 계약 연장이 불발되었다. 그 이후도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구직활동은 계속 하고 있다. 면접까지도 많이 갔는데, 될 것처럼 말한 곳도 몇 있었는데, 안 되었다.


솔직히, 열심히 성실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하고 싶지 않다. 해야 하는 것 같아서 의무감으로 구직전선을 뛰고는 있다. 나는 책 한 권 써서 빵 뜨고 싶을 뿐이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이지만, 작가로 살기 힘든 시대이지만, 책 한 권이 백만 권 팔리는 작가도 있다. 그런 작가가 되면 되니까.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으면, 경쟁자를 제치고 출판사에 취업할 역량은 없어도, 책을 만드는 기술은 있으니까. 인쇄는 내가 못 하지만, 최종 파일까지는 내가 만들 수 있다. 클라이언트의 결제를 받는 것까지는 내 능력 밖이지만, 소비자가 보기에 책 같은 책을 만들 기술은 있다.


여하튼 나는 스스로 작가라 생각하지만, 아직 글이 돈이 되지 않으니 백수다. 그 사이 아내 에미마는 한국에 사는 네팔인에게 네팔 반찬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시작했고, 요리학원에 가서 여러 과정을 이수하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시험 봐서 따고, 노인복지관에서 조리사로 취업했다. 미안한 일이다.


왕대추를 따러 온 것도, 부모님께서는 수확 때 와서 알바하러 오라고 하셨고, 아내는 돈 절대 받지 말고 부모님 도와 드리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왕대추 따고 남는 여유 시간에 그동안 쓴 글을 정리해 책 한 권 만들어야지 생각은 하는데.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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