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가족의 고마움을 잘 아는데, 동생 회사에서 일하기에도 내가 버티기가 어려웠다. 퇴사하고 1년이 지났다. 퇴사할 때는 더 이상 다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며 살리라 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글이 돈이 되고 업이 되지는 못했다.
마냥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가진 자격 중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경험으로 3개월 일했다. 기관의 경영악화로 정규직으로 계약 연장이 불발되었다. 그 이후도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하는 것 같아서, 구직활동은 계속 하고 있다. 면접까지도 많이 갔는데, 될 것처럼 말한 곳도 몇 있었는데, 안 되었다.
솔직히, 열심히 성실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 마음은 하고 싶지 않다. 해야 하는 것 같아서 의무감으로 구직전선을 뛰고는 있다. 나는 책 한 권 써서 빵 뜨고 싶을 뿐이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이지만, 작가로 살기 힘든 시대이지만, 책 한 권이 백만 권 팔리는 작가도 있다. 그런 작가가 되면 되니까.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으면, 경쟁자를 제치고 출판사에 취업할 역량은 없어도, 책을 만드는 기술은 있으니까. 인쇄는 내가 못 하지만, 최종 파일까지는 내가 만들 수 있다. 클라이언트의 결제를 받는 것까지는 내 능력 밖이지만, 소비자가 보기에 책 같은 책을 만들 기술은 있다.
여하튼 나는 스스로 작가라 생각하지만, 아직 글이 돈이 되지 않으니 백수다. 그 사이 아내 에미마는 한국에 사는 네팔인에게 네팔 반찬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시작했고, 요리학원에 가서 여러 과정을 이수하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시험 봐서 따고, 노인복지관에서 조리사로 취업했다. 미안한 일이다.
왕대추를 따러 온 것도, 부모님께서는 수확 때 와서 알바하러 오라고 하셨고, 아내는 돈 절대 받지 말고 부모님 도와 드리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왕대추 따고 남는 여유 시간에 그동안 쓴 글을 정리해 책 한 권 만들어야지 생각은 하는데.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