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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공부 더 하자

by 최다함

스무 살에 조울증에 걸리고,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조울증을 극복했다.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의미가, 약을 끊고 치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조울증의 세계에 그런 달달한 것은 없다. 두 주에 한 번 꾸준히 병원에 다니며, 매일 밤 몇 알의 약을 먹으며, 조절과 관리를 하며 별일 없이 산다. 아내 에미마를 만나 결혼했고, 아들 요한이가 태어나 네 살이 되었다.


조울증에 걸려 스무 해 가까이 방황했다지만, 그 세월 동안 항상 정신상태가 메롱했던 것은 아니다. 약 먹을 때는 괜찮고, 약 끊고 3개월 즈음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할 상태가 된다. 조금 안 좋아질 때 약을 조금 증량해서 기운을 눌러주면 되는데, 대개 안 좋을 때 약을 끊는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한다.


조울증 환자라고 다 집에서 노는 것은 아닌데, 나는 사회생활의 공백이 길고, 경력단절로 지금도 어려움이 있다. 아무것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카페 바리스타도 하고, 초등학교 기간제 영어교사도 하고, 귀농도 하고, 사회복지사도 하고. 동생 회사에서 2년 반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1년 반 놀았다. 작가가 되고 싶은데,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다. 그 사이에도 아무 일이나 해 보려 했는데, 마흔다섯에 경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 경력은 조울증뿐이니. 내가 작가가 되려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에 있다. 조울증 라이프에 대한 글 쓰는 것으로 시작하면 내 인생도 풀리지 않을까?

그러다 올해 새해벽두부터 쿠팡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나가자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일요일과 개인 스케줄이 있는 날 빼고 매일 신청하여 나오라는 날 나간다. 오늘도 나가려 했는데 반려되어 집에 있었다.



아내 에미마의 부업을 돕고, 어제 박스에 집어넣었던 웅진 스마트올 키즈를 꺼내어 아들 요한이가 내 가랑이 사이에 앉아 하루 종일 스마트 학습지와 노는 시간을 함께 했다. 아들 요한이는 패드 학습지를 컴퓨터라 부르고, 놀자고도 안 하고 컴퓨터 하자고 안 하고, "아빠, 공부하자." 그런다. 내 아들이지만 머리 굴리는 것 보면 비상하고 스마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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