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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OHAN DADDY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환장의 나라 네버랜드

by 최다함


6월 3일 선거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투표하러 갔다. 삼성물산 직원인 제수씨 찬스로 일 년에 한두 번 에버랜드에 간다. 며칠 전 티켓을 얻고 첫 휴일인 선거일 요한이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기로 했다.


에버랜드가 아들 요한이에게나 환상의 나라지 사실 아내 에미마나 나에게는 환장의 나라다. 에미마에게 에버랜드가 환상의 나라였던 것은 네팔에서 결혼한 후 한국 결혼식을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한국에 초청해 모시고 처음 에버랜드에 갔던 그날 하루였을 것이다. 그 이후 에버랜드는 매년 한두 번 요한이와 함께인데 환장의 나라에서의 고난의 행군이다.


네 살 요한이는 이제 유모차를 안 탄다. 그래서 똥차 2012 올란도를 신차 2025 투싼으로 바꾸며 유모차도 창고로 쓰는 방에 쳐 박아 두었다. 사실 집에 있는지도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쳐 박아 두었다기보다 쳐 박혀 있었다. "오빠, 유모차 집에 있어?" 아내가 물었고, 그런 걸 버릴리는 없을 테니 "어딘가 있겠지." 대답했다. 유모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리의 달인 아내가 잘 두었을 것이고, 유모차가 있을 만한 딱 한 군데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이제 유모차를 안 타는 요한이지만, 에버랜드는 요한이가 걸어 다니기에 너무 넓은 세상이라는 게 엄마 에미마의 생각이었고, 나는 투싼 트렁크에 유모차를 실었다. 요한이보다 큰 애들도 에버랜드에서는 유모차를 타고 다녔다. 유모차는 그냥 가지 않는다. 부모가 번갈아 끌고 다닌다. 아이가 힘들어 보이면 아빠가 유모차를 밀고, 아이가 뛰어다니고 싶으면 엄마가 아이를 따라다니고 아빠는 뛰는 아이를 쫓아 뛰어다닌다. 아이의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는 부모의 환장의 나라 네버랜드다.


8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주차하고 정문에서 기다리다 10시 오픈에 맞추어 입장하는 게 오리지널 플랜이었다. 9시 20분이 넘어서야 출발했고, 10시 조금 넘어서야 도착했는데, 편의를 위해 돈 주고 대려던 정문 유료주차장의 만차로 밑에 차 대고 셔틀버스 타고 올라가니 10시 40분에야 입장했다. 입장을 하고, 요한이의 머리띠와 선글라스와 팝콘을 샀다.



요한이를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면 보통 기구를 타기보다 먼저 동물원 주토피아로 향한다. 이번에도 시작은 주토피아 판다월드로 시작했는데. 판다월드가 오전 타임에는 스마트줄서기로만 가능해서 건너뛰고 원숭이 침팬지와 새를 살짝살짝 보다가. 스카이웨이라고 스키장 리프트를 타고 위로 올라왔다. 유모차 타고 동물 구경하는 것은 요한이에게나 재미있고. 아내나 나는 리프트 타고 관광하는 게 즐겁다. 뭐든 재미있는 네 살 요한이는 동물 구경만큼 리프트도 재미있다.



리프트 타고 올라와 스카이크루즈라는 이름의 케이블카를 타고 장미원 방향으로 내려갔다. 회전목마를 타고, 거기서 요한이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차를 타고,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라리 담백한 한식집에 갔어야 했는데. 느끼한 중국집이 보였고 식사 후에야 한식집이 보였다.



제수씨 찬스로 다 커서 매년 에버랜드에 한두 번 가지만, 우리 식구끼리만 오는 건 또 처음이라. 몇 번 와 봤다고 미리 에버랜드 지리 공부를 안 하고 그냥 필 대로 다니니 때론 즐겁고 때론 짜증 난다. 대개 짜증은 배가 고픈데 식당을 찾기 어렵고, 어렵게 찾은 식당이 내키지 않아 다음엔 도시락 싸와야겠다 생각이 들 때 일어난다. 그 타이밍에 잘 놀던 애는 칭얼 대고 떼쓴다. 그래도 허기가 꺼지고, 배가 부풀어 오르면, 짜증도 이완된다. 점심 먹고 들어갈 때는 별로였던 중국집 문을 열고 나오니 바로 앞에 카니발 퍼레이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사실 요한이는 동물 기구보다 공연하고 노래하고 춤추면 구경하고 같이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흥이 많은 아이다.



퍼레이드 공연이 끝나고, 장미원 정원에서 사진 찍고, 요한이는 엄마를 졸라 기어코 타요 헬륨풍선을 사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다. 스타벅스에서 아내는 자몽에이드를 마시고, 나는 아아를 마시고, 요한이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었다. 아버지께서 생신선물로 받으신 카카오톡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주신 것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이 기념품을 위해 스타벅스 옆 레고샵에 들렸다. 요한이는 빨강 페라리 레고 자동차를 골랐다. 집에 와서 요한이의 감탄이 절로 나올만한 정교한 빨강 레고 페라리를 조립하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재미는 있는데 나는 아들이 아니면 절대 그런 거 만드는데 그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 아니다.



요한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착한 어린이였더라면 아간까지 놀다 왔을지도. 일찍 나왔다. 집에 오니 다섯 시가 조금 넘었다. 나는 요한이 빨강 레고 페라리 조립하는 동안, 요한이는 엄마에게 혼나고. 그리고 밖에 다시 나가 추어탕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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