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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Feb 04. 2021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을 사랑했었다

첫사랑 소녀를 사랑하고 완전히 마음에서 떠나보내기까지 7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소녀를 사랑하는 7년 동안 다른 여자들에게 눈이 돌아가고 가슴이 설레기도 다. 두 번째 사랑 아리따운꽃에 대한 새로운 짝사랑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때도 역시 중간중간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환승 이별이라는 말도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하다가 다른 사랑으로 공백 없이 갈아타는 것을 말한다. 3년을 아리따운꽃을 내 마음에 품었다고 하지만, 주말에 교회에서 멀찍이서나  수 있었던 것은 처음 1년뿐이었다. 아리따운꽃은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그 마음을 떠나보내지 못했고, 새로운 사랑이 겹쳐서 시작되었다. 2005년에 시작된 아리따운꽃에 대한 짝사랑은 2008년도에 끝이 났지만, 2006년도에 새로운 사랑이 오버랩되며 시작되어 천천히 잊히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랑했지만 사귄 것도 더 이상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사랑이 바로 아리따운꽃을 지 못했던 것은, 새로운 사랑이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 세 번째 운명적 사랑은 배우 한효주였다. 역시 짝사랑이었다. 팬심이 아니라 여자로서 사랑했다. 한효주 이전에는 여자의 마음의 중심 만을 보았다. 아니, 중심은 알 수 없었고 중심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에 혹했었다. 한효주 이후로 나의 이상형은 '예쁘고 착한 여자'가 되었다. 세상에 예쁘고 착한 여자는 BMW 탄 재벌 실장님에게 사랑한다. 짝사랑이었던 첫사랑이 상사병이 되고, 군대에서 조울증 걸려 개털 된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일찍이 자수성가하여 성공을 했거나,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었더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효주에게로 가는 길을 놓았을 것이다. 한효주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한효주와 CGV 한 관을 통으로 빌려 영화 한 편 보고 싶었다, 한효주와 청량리역에서 한밤  출발하는 정동진 해돋이 열차 막차 한 칸을 통으로 빌려 타고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 회전하는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다보고 싶었다.


한효주 이후 나의 이상형은 '예쁘고 착한 여자'가 되었다. '예쁘고 착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예쁘고 착한 여자'가 상사병과 조울증으로 인생 너덜너덜해진 나를 동정은 할지언정 사랑 할리가 없었다. 내 눈에는 '예쁘고 착한 여자'만 들어왔고, '예쁘고 착한 여자'는 나를 사랑지 않았다. 한효주'처럼' '예쁘고 착한 여자'가 이상형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날 TV 드라마에 내 이상형이 여주인공으로 나왔는데 그 여배우가 한효주였고, 나의 이상형 한효주는 예쁘고 착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장 15절)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연예인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떤 연예인의 도 아무었다. 서태지도, HOT도, 핑클도, 전지현도, 송혜교도, 김태희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독교 음악인 CCM을 좋아했다. 김명식 송정미 컨티넨털 싱어즈 힐송 등의 CCM을 좋아했다.


대학교에 와서 종교인에서 세속인이 되어 갔다. 술을 마시고 대중가요를 들었다. CCM은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딩시 최신가요를 좋아했었던 것도 아니다. 김광석, 유재하, 동물원, 봄 여름 가을 겨울, 윤종신, 이승철, 이문세, 신승훈, 이소라, 토이 유희열을 좋아했다. 오히려 지금은 아이유, BTS, 버스커버스커 등 젊은 가수들의 젊은 노래들을 듣는다. 그때는 자취방에서 이소라 유희열 윤도현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주로 음악을 접했고, 지금은 네이버 VIBE나 유튜브 뮤직 같은 음악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곡을 주로 듣기 때문이다.



좋아했던 여자 연예인이 있었다면 피아니스트 노영심이었다. 이화여대 피아노과에서 클래식을 전공하고, 변진섭활동을 하기도  피아니스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노영심의 <이야기 피아노> 공연을 보러 혼자 티켓을 끊어 갔다. 같은 과 여자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노영심 콘서트를 돈 내고 갈 또래는 없었다. 무료 초대권이 있어도 안 갔을 것이다. 서태지나 HOT 소녀시대 원더걸스 콘서트도 아니고 말이다.


노영심이 나보다 13년 연상이다. 내 나이 스무 살 13살 연상이면 한창 아름다운 나이였다. 노영심이 부른 노래 중 《그리움만 쌓이네》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다. 노영심이 변진섭의 《희망사항》의 작사가 작곡자였다. 변진섭의 《희망사항》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이런 가사의 노래였다. 그 시대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던 유행가였다. 변진섭이랑 같이 다녀서  둘이 연인 또는 부부로 오해받았는데, 둘 다 그런 사이는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한효주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다. KBS 드라마 《봄의 왈츠》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어느 날 내 이상형을 TV 스크린에서 보았다. 처음으로 한효주를 본 순간이었다. 미스 빙그레로 데뷔하여, 논스톱 5에 단역으로 나왔다가 주목을 받아 고정 출연으로 눌러앉았고, 영화 투사부일체에 조연으로 나왔는데, 그때는 몰랐다.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 한효주를 처음 보았다.  《봄의 왈츠》는 윤석호 PD의 사계절 시리즈 《겨울연가》 《가을동화》 《여름향기》의 마지막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시청률이 저조했던 망작이었으나, 해외 8개국에 판권을 선판매하여 윤석호 PD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스토리와 캐스팅 자체로는 좋았으나, 남녀 주인공 모두 인지도 없는 신인이었다. 드라마 뒤로 갈수록 신파가 되었다. 남자 주인공 서도영이 잘 생긴 배우고 연기도 괜찮지만, 한효주도 신인이었기 때문에, 남자 배우를 톱스타로 캐스팅했더라면 국내 흥행도 성공했을 것이다. 국내 시청률 만으로는 《봄의 왈츠》는 망작이었지만, 나에게는 인생 드라마였다.


한효주가 이상형이라고 하니, 춘천교대 뒤 교회에서 나중에 다른 교회로 옮겨간 소양강변 교회의 청년부 자매님이 자신이 한효주와 같은 미인대회 출신이니 연결시켜 줄까 하였다. 그냥 한 이야기인진담이었는지는 모른다. 한효주는 신인이어서 지금 정도의 위상은 아니었지만, 내가 넘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한효주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이었다. 한효주를 사랑했지만,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편지를 보내거나, 생일선물을 보내거나, 소속사나 집 근처를 기웃거리거나, 한효주 소속사에 입사를 도모하거나,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본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평생 사랑할 단 하나의 인연을 찾아 끊임없이 수많은 여자들에게 직진했던 내가, 유일하게 그 어떤 작업도 걸지 않은 여자는 한효주뿐이었다. 작업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효주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까이 갔을 것이다. 한효주를 향한 사랑을 이루기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다른 사랑처럼 마음이 애타지도 않았다. 그 사랑으로 상사병조울증이 재발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니,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을 사랑했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면도 깨끗이 하고, 젤로 머리 잘 세우고, 단정하지만 멋진 옷을 입고, 백화점에 가서 은은하면서도 매혹적인 남성 페로몬 향수 사서 뿌리고, 한효주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오빠 동생 사이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노골적인 작업이 아닌, 그냥 교회 오빠로 곁에 있어주는 은은한 작업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티 나는 고백하지 말고, 예쁜 디자인의 하드커버로 된 사랑시집 한 권을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선물하고, 시집의 시 가운데 내 마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시집에 기록된 그대로 읽어줄 것이다. 여신 아프로디테의 교회 오빠가 되어 곁을 지켜주며 시를 읽어주며, 여신 아프로디테를 사랑해도 되는 남신 중 남신 제우스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을 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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