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기를 쓰고 작문을 하고 백일장에 나갔지만, 나의 마음에서 우러난 첫 자발적인 글쓰기는 짝사랑으로 끝난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 소녀를 향한 소수의 보낸 다수의 보내지 못한 편지였다.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린 스무 살 여름 나의 첫 시이자 지금까지 마흔다섯 내 인생의 유일한 한 편의 시 <나의 마음에 어느 고을엔>을 썼다.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 소녀가 내 마음에서 떠나가고. 사랑이 지나가면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고. 두 번째 사랑 아리따운꽃도 짝사랑이었다. 사랑의 기술에 서툴렀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애초에 되지 않는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에 미쳤고, 끝내 정신병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사랑은 짝사랑일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서른여덟에 아내 에미마를 만나 서른아홉이 되기 며칠 전 결혼하기 전까지 그랬다.
두 번째 사랑 아리따운꽃이 내 마음을 떠나가기 전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되었는데. 사랑해서는 안 되는 여신이었다. 나는 TV에서 여신을 보았다. 2006 KBS 드라마 <봄의 왈츠>에서였다. 배우 한효주였다. 조증 기운 때문이었으리라. 사랑 때문에 인생 조져 거지가 된 내가 여신을 만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작가의 길이라 생각했다. 대다수의 작가는 여신을 만날 수 없지만, 작가 중 작가가 된다면. 여신과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CGV에서 영화를 보고, 청량리에서 정동진 해돋이 열차를 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고를 전문용어로 망상이라 한다. 작가가 되어야겠다 생각했던 첫 모티브가 그랬다는 것이지. 그 모티브는 아주 잠깐 작동했다. 그런 종류의 모티브는 애초에 오래갈 수 없다.
그리고 3년 후 2009년 (조울증 때문에 나는 13년 반 동안 대학을 다녔다), 영어교육과 생인 내가 타과 국어국문과에 가서 시창작과 소설창작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순수문학을 동경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문학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몰랐다. 문인이 되고 싶었지만, 문학 수업은 들었고 학점은 잘 땄지만,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학의 정석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혼자만의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그해 말 나는 조울증이 재발했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3년 즈음 흘러 정신도 돌아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작가의 꿈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렇게 잘 살다가, 삐끗했고, 조울증이 재발했고,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조울증이 발병하거나 재발했을 때, 내 주변에 한 여자가 미치게 예뻤고, 나는 미쳤다. 그러다 명상센터에 갔고, 작가가 되기로 했다. 사랑 때문에 빛을 잃은 내가 빛나는 인생이 되어 사랑받는 길은, 평범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평범치 않은 내 이야기를 쓰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때가 2015년이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네이버 블로그였고, 2020년 10월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이제 5년 차 브런치작가가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면, 지금 여전히 살아있는 내 가슴의 불타는 작가의 꿈이 10년이 되었다는 것.
그 사이 나는 사랑을 잃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사랑이 중요하지 않았다. 가당치 않은 헛된 꿈이었다. 내 인생에 사랑과 결혼을 포기했다. 근데 부모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사랑이 나를 살릴 것이라 믿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알아보셨다. 아내 에미마를 국제결혼 업체를 통해 만난 것은 아니다. 지인 소개로 만났다. 둘째 고모의 절친이 네팔 선교사님이었고, 아내 에미마는 네팔 선교사님을 이모라 부르며 어머니처럼 따르는 사이다. 에미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기도를 하고,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이야기는 이글에서 하지 않겠다. 길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다.
내가 가난할 때, 백수였을 때, 아내는 나를 사랑했고, 나와 결혼했다. 내가 백수이고 싶어서 백수였던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랑 귀농해서 농사도 하고, 동생 사업장에서 알바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나도 뭐가 돼 보려고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어렵게 일을 찾아 새 인생을 시작해도, 그 일을 이어 가는 게 모든 사람에게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이 아들 요한이가 태어났고 벌써 네 살이다. 세상에 귀엽다. 아내와 결혼하고, 조울증을 극복했고, 아들도 생겼고, 직장도 생기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가. 이번에는 누구의 선의가 아니라 나의 자발적 의지와 눈높이를 낮춤으로 다시 일을 하고 있다. 쿠팡 물류센터에 다닌다. 내가 백수일 때 아내는 나를 사랑했고, 나와 결혼을 했다.
작가를 꿈꾸며 나의 첫 책의 첫 제목은 『︎다함스토리』였다. 같은 주제 같은 내용을 다른 제목 『︎사랑 때문에 조울증』︎으로 다시 썼다. 얼마 전 멤버십이 오픈하여 『︎마흔다섯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멤버십으로 써 왔다. 누가 돈 내고 읽을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이를 위해 쓴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썼다. 근데 이 멤버십 연재는 여기까지다. 마지막 10화를 올해 중 언젠가 쓸 것이다. 올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를 마치고, 이 브런치북의 마지막 화를 종결 지을 것이다. 이 브런치북은 애초에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10년간 써온 내 글을 정리해 다시『︎다함스토리』︎제목의 브런치북으로 발행하여 올해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