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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10년, 나의 브런치 5년

브런치와 함께하는 작가의 꿈

by 최다함

브런치 10년, 나의 브런치도 10월이면 5년이니, 나도 브런치 10년의 절반을 함께 했다. 12번 떨어지고 13번째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2019년 12월 3일 첫 불합격 메일을 받고, 2020년 10월 5일 합격 메일을 받았으니, 도전 10개월 만이다. 내 메일함에 기록으로 쌓여 있어, 어쩌다 한 번씩 들춰 본다.


학교에서 일기를 쓰고, 작문을 하고, 백일장에 나갔지만, 나의 첫 자발적인 글쓰기는 짝사랑으로 끝난 소녀에게 소수의 보낸 편지와 다수의 보내지 못한 편지였다.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려 6개월도 채 안 되어 의병 전역했던 그해 여름 시를 썼다. 지금까지 내 마흔다섯 인생의 첫 시이지 유일한 시다.


학교에서 일기를 쓰고 작문을 하고 백일장에 나갔지만, 나의 첫 자발적 글쓰기는 짝사랑으로 끝난 소녀에게 소수의 보낸 편지와 다수의 보내지 못한 편지였다. 스무 살 군대에서 조울증에 걸려 군입대 6개월도 채 안 되어 조울증에 걸렸던 그해 여름 시를 썼다. 지금까지 내 마흔다섯 인생의 첫 시이자 유일한 시다.


조울증으로 방황하다 13년 반만에 대학을 졸업했는데. 9년째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영어교육과인 내가 국어국문학과의 시창작 소설창작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순수문학을 꿈꾸는 문학청년이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조울증이 재발해 정신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다시 회복되었고, 13년 반 만에 대학을 졸업했고, 초등학교에서 영어회화전문강사를 했다. 작가의 꿈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러다 조울증이 다시 재발했다. 근무했던 초등학교 1학년 여선생님이 예뻤다. 내가 조울증이 처음 발병했을 때 그리고 재발했을 때 내 눈에 보이는 한 여자가 예뻤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했다. 다른 일을 하며 내 나이에 걸맞는 성취를 이루며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도 나름의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사랑 때문에 실패한 내 이야기를 쓰는 에세이 작가로 성공하기로 했다. 2015년 봄이었다. 처음 에세이 작가가 되기로 했을 때는 티스토리에 쓰기로 했었다. 생각만으로 그쳤다. 글 써서 작가가 되어야지 각성을 하고 한동안 나만의 생각을 노트에 끄적거림이 전부였다. 2019년 여름 블로그에 본격적으로 글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연합뉴스TV 작가에게 연락이 왔고 아내와 다큐에 출연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블로그 포스팅 이벤트에 1등을 해 현금 아닌 포인트 200만 원을 받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브런치 플랫폼이 나의 글쓰기의 최선의 공간이라 생각했다.


나도 벌써 5년차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발행글 1000개를 넘겼다. 아직 첫 책을 내지는 못했다. 아내 에미마를 만났고, 아들 요한이가 태어나 네 살이 되었고, 조울증을 극복했다. 조울증을 극복했다는 것이, 병원에 발걸음을 끊고, 약을 끊고, 완치가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울증의 세계에 그런 달달한 것은 없다. 두 주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약을 타와 매일 밤 몇 알의 약을 털어 넣으며 기분을 조절하여 별일 없이 산다. 지금은 쿠팡 물류센터에 다니며 브런치에 글 쓴다.


책 읽고, 글 쓰고, 여행 다니는, 작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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